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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남,광주

(등산 145봉) 전남 벌교 제석산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의 주산  

 

 

등산코스 : 홍교주차장 - 태백산맥문학관 삼거리 - 약수터 - 대치재 - 남끝봉 - 신선대 - 남봉 - 제석산 - 헬기장 - 태백산맥문학관 삼거리 - 태백산맥문학관 - 홍교주차장

 

처음 태백산맥을 읽고 벌교로 갔었다. 그 땐 제석산 올랐다 중도들판으로 벌교읍 중심으로 돌아봤었다.

제석산을 오르며 벌교 사람들 -염상진, 외서댁, 김범우 등-의 심정을 느껴보려 했었다.

8월의 더위 속 제석산을 걸으며 길 곳곳에 있던 무덤만 보였었다.

 

두 번째 태백산맥을 읽고 백아산을 이어 다시 제석산을 찾는다.

산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고 싶어 홍교에서 출발한다. 주차장에서 산으로 연결된 골목길을 따르면 등산로와 연결된다. 오밀조밀 낮은 돌담이 정겹다. 저 담장 넘어 동네 아낙들의 걱정 근심이 넘나들었을 터,,,,,오늘은 그저 적막하다. 부지런한 주민이 심었을 싱싱한 파의 향이 싸하다.

 

진달래가 피었다. 이즈음은 추위를 견뎌내고 자연이 준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산사람들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시기.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진달래. 염상진이었던가? 우리 아이들은 진달래로 배고픔을 채우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고...

'배 곯게 하진 말아야지, 배 곯게 하진 말아야지'

분홍빛 진달래가 오늘은 처연하다. 

 

산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높지 않은 산이라 금방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올라오는 삼거리길이다. 

처음 산행할 때와 다른 산행길이라 그런지 무덤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삼거리 부근의 잘 손질된 무덤이 진달래 호위를 받으며 따뜻한 햇볕을 받는다.

봉긋한 봉분이 미적이다. 그저 흙으로만 단장된 것이라 단정하면서도 아름답다.  

 

봄볕 따사로운 제석산에 동백도 피었다. 이제 막 피어나는 터라 그 빛이 생생하다. 떨어지는 꽃은 몸 전체가 툭, 열정적으로 살다 간 님들과 닮았다. 

누군가의 생명수가 되었을 약수터는 이제 필요가 없어져서인지 물이 말랐다.

진달래에 동백에 미소지었을 님들의 웃음이 함께 피어난다. 

 

제법 가파른 바위를 지난다. 바위 사이로 길을 잡아 본다. 바랜 밧줄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음을 알린다. 올라갈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 우회로를 따른다.

출입금지 푯말앞에 섰다.

괜히 망설여진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전망 끝내준다고 가 보란다.

바위 끝에 서너사람은 앉을 만한 편편한 공간이 있다. 저 멀리 첨산과 벌교 읍내, 걸어왔던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사람들의 훌륭한 조망터가 되었을 거다.

여기가 신선대, 그 앞이 남끝봉인 것 같은데 굳이 따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이 한 몸으로 봐도 좋을 정도다.

남쪽으로 여자만 사이사이로 고흥반도 여수반도의 섬들이 아스름하다. 

낙안들? 지금은 제 이름 가진 제 땅에 오롯이 제 것을 수확하고 있을 터. 

70여 년. 산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은 빨리 먹고 살기가 나아진거겠지.

제석산 허리를 빙빙 감아도는 임도를 보며 다음엔 저 길을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중도들판으로 율어로 외서면으로,,,

 

다시 한 번 바위있는 남봉을 만나고 그 다음 봉우리가 정상이다.

바위 위에 오똑하니 정상석에 힘이 서렸다.

헬기장에서 다시 돌아올 거라 길 좋은 산길을 따라 헬기장까지 간다. 멀리 조계산이 보인다. 주 거점 산이기도 한 조계산까지 밤을 이용해 걸어다녔을 터, 아득한 저 곳이 더 멀어 보인다.

제석산은 사방이 조망되나 산이 얕아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율어해방구를 빼앗기고 백아산을 빼앗기고 백운산으로 다시 지리산으로 그들은 말없이 걸으며 죽음 곁으로 장엄하게 그렇게 걸어 들어갔다.

먼 산의 모습은 미세먼지가 삼켰다.

 

헬기장은 또 다른 정상석이 놓여 있다.

산의 높이에 어울리는 아담한 사이즈라 정겹다.

바위 위에 있는 건 아니지만 백아산 마당바위위와 비슷한 느낌이다.

간단하게 목을 축이고 잠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정상 인증 사진은 염상진대장의 포스로,,,,

장엄하게 장중하게 오롯이 인민을 향할 그들의 마음을 되짚어본다.

염상진의 무덤에 몰래 나타난 하대치 일행의 다짐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 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해 평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민중의 삶에 헌신하는 사람들, 그들이 이들의 뜻을 따라 살고 있고 또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뜨겁고 따뜻한 피를 가지고 민중의 삶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수많은 그들의 영령이 도리천에서 제석천의 보살핌 속에 영면하시라. 

 

시간이 없어 태백산맥문학관, 김범우집, 예배당, 소화집, 소화다리,,,등등 소설 속 장소는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항시 아쉬움.

 

코로나사태에도 그나마 벌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은 편이다. 

문학관 건립을 반대하던 그 사람들은 지금은 어떤 생각일까?

이념은 무섭고 바뀌길 거부한다. 반성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고 도리어 적반하장이다.

 

멀지 않은 언제쯤 벌교에 한 일주일쯤 머물며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지내보길 기대한다. 

생각하면 이루어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