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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북,대구,울산

(등산 175봉) 경북 문경 황장산(1,077m)

* 때 :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 위치 :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명전리

* 역사, 유래 : 황장산은 월악산국립공원 동남단에 있는 산으로, 조선 말기까지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렀고, 《대동지지(大東地志)》 '예천군읍지' 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皇廷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지만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다. 그것은 황장목이 많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 황장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성(鵲城)과 봉산(封山) 표석이 있는 산이며, 울창한 계곡과 암릉에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안생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황장산을 오르는 코스는 정리가 덜 된 원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군데군데 계단 공사를 위한 자재들을 갖다 놓은 걸 보면 이렇게 자연적인 길을 걷는 것에 차라리 감사한 마음이다.

산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계속 계곡을 따라 오르막길이다. 등산로 주변의 단풍은 찬란한 최후를 빨갛게 불태우고 있다.

단풍에 취해 발을 옮길 수 없다. 계속 오르막이라 단풍을 핑계삼아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인 편이다.

단풍의 유혹에 빠져 느릿느릿 마지막 숨고르기를 할 때쯤 계단이 나타나면 이제 능선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능선에 다다른다. 백두대간 코스이나 2017년 2월까지 출입금지구역으로 펜스가 처져 있다. 지금도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있을텐데, 그 사람들은 법 위반자가 되어야 하나? 자연보호와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잠깐 생각해 본다. 여기부터 능선길, 이제 황장산의 본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고 배열한 주변의 산들도 조망할 수 있다. 얼마 오르지 않아 황장산 정상이다. 나무에 가려져 조망권은 없다.

정상을 조금 지나니 묏등바위다. 철제 난간과 데크로 안전 장치를 해 놓았다. 전망은 여기가 압권이다. 황장산의 이름에 걸맞게 기품있는 자태의 소나무도 경치를 더한다. 바위 틈을 뚫고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기개가 놀랍다.

와인동굴쪽으로 나 있는 하산길은 길이 편안하다. 생강나무, 참나무 등의 잎들이 노랗게 주변을 밝히고 있다. 

와인동굴은 개인이 운영하나 보다. 구경하는 곳이 아니고 마시는 곳이라고 해서 통과했다. 

황장산이라 아름드리 소나무를 기대했지만 그것보다 단풍이 압권이었다. 무릎은 생각한다면 와인동굴보다는 안생달 마을에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말무덤, 봉산 표지석도 찾고 싶었으나 함께 간 사람들의 시간 때문에 들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3시간 30분의 황장산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했다.


 <자료조사>

1984년 12월 월악산공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2016년 5월 1일 개방했으니 31년만의 개방 코스다.

산림청이 정한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백두대간 코스에 속해 있다.


황장목이 유명하여 조선 숙종때 봉산으로 정해졌으며 황장봉산으로 이름 불려 지기도 했고 여기에서 황장산이 유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예천군 읍지에는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서 황장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으로 부른다고 하나, 일제 시대를 거치며 이름이 굳혀진 것으로 보여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개방된 코스는 문경시 동로면 안생달리에서 황장산 정상을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안생달에서 와인동굴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황장산으로 바로 올라가 멧등바위, 작은차갓재, 와인양조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적당할 것 같다.


<주변 볼거리>
봉산표석(封山標石)

지방문화재 제227호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벌천계곡하류 합류지점에 위치. 조선숙종(1680)때 이 산에서의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장산에서 생산되는 황장목은 목재의 균열이 적고 단단해 임금의 관(棺)이나 대궐을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 
()무덤
소재지 :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965번지

예로부터 무송대 또는 말무덤이라 부르는 이 곳은 풍수설(연주패옥형세의 명당)과 관련된 전설로 알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원군한 부장 두사충(杜思忠)은 당시 명성높은 풍수지리 학자로서 조선에 귀화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땅 명당들을 모두 살펴 보았는데, 조선의 팔대명당(八大名堂)중 하나라고 전하는 연주패옥(蓮珠佩玉)을 이곳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서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벽제관(碧蹄館) 전투의 패전으로 문책을 당하게 되었으나 약포(藥圃) 정탁(鄭琢) 대감이 상주(上奏)하여 목숨을 구하게 되었으며 은혜를 입은 대가로 연주패옥을 정탁대감의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 있을 때 미리 잡아두는 묘자리)로 잡아 두었다. 두사충이 명당 자리를 알려줄 때 약포 대감은 연로하였기에 그의 종을 데리고 가서 자리를 알려 주고 명나라로 떠났는데 나중에 약포가 죽은 뒤, 약포의 아들이 그 종을 데리고 위 적성리 부근에 가서 종에게 명당 자리가 어디냐고 묻자 그 순간에 말이 갑자기 놀라 발길질을 하자 구종이 말에 치여 즉사하고 명당 자리를 알려주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약포의 야들이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었고 다른 지관들을 동원해 명당 자리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어 이웃 동네인 현재 예천군 호명면 본리 뒷산 위라곡에 묘를 썼다고 한다. 말의 시체는 주민들이 그 곳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주어 지금 마총과 조그마한 비석이 남아 있다. 그 후 현재까지 지관들이 황장산 일대에서 연주패옥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직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 황장약수

동로면 소재지에서 충북방향으로 가려면 벌재를 넘어야 하는데 벌재를 넘어서면서 좌측에 약수터가 있다.

작성(鵲城, 까치성)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소재이나 올라가는 길은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이다. 조령 관문성들이 임진왜란 이후에 축성된 것에 비하면 '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예천현조에 이미 폐성(廢城)으로 소개되어 있어 그 이전 것으로 추정하며 고구려성으로 보기도 한다.


연주패옥(連珠佩玉) : 선녀인 옥녀가 화장을 하기 위하여 거울을 보며 목걸이(연주패옥)를 벗어놓은 형세를 가진 명당으로 이곳에 산소를 쓰면 벼슬한 사람이 많이 태어나서 금관자 서 말, 옥관자량이 각각 서 말이 나온다고 전한다. 금관자, 옥관자란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망건 끈에 다는 관자로 결국 3품 벼슬 이상을 할 후손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