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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남,광주

(등산 184봉) 전남 곡성 동악산(735m)

♥ 때 :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 위치 : 전남 곡성군 곡성읍
♥ 코스 : 도림사입구 ~ 청류동계곡 ~ 동악산 ~ 배넘어재 ~ 청류동계곡(원점회귀) 11.1km
♥ 시간 : 5시간
동악산,,,'악'자가 '즐거울 락'자이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률에 맞춰 춤을 추다 오늘날의 산세를 갖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단다.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청류동계곡의 맑은 소리는 가히 춤출 만 하다.
주말이면 추워 진다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무척 포근하다. 겨울 산 답지않게 청류동 물도 풍부해 흐르는 소리와 함께 흐르는 줄기도 수려하다. 계곡을 지나니 엊그제 눈이 왔는지 댓잎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초록에 흰색 가루,,그 자체가 그림이다. 계곡의 끝 지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배넘어재, 형제봉, 오른쪽은 동악산, 조금 험하다는 오른쪽 길, 동악산으로 오른다. 고도가 높고 돌들이 삐죽빼죽이 나와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정상부의 눈덮힌 능선을 간간히 조망할 수 있어 눈요기는 호사롭다. 정상부 가까이에 다다르니 상고대가 펼쳐졌다. 700고지 정상부에 상고대라,,,기대하지 않았기에 감동이 더하다.
재미있는 '돼지의 꿈'님의 안내 장소마다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겨울 나목의 맵시를 그대로 드러낸 채 살포시 내려앉은 상고대라 위치에 따라 본래의 나무색이 드러나 색의 조화는 더 예술적이다. 
정상엔  돌탑을 쌓아 그 앞에 표지석을 놓았다. 그 누군가의 정성스런 돌탑에 앙증맞은 표지석,,,
전라도 사람들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정상부를 지나니 또 상고대,,,이렇게 중간 중간 상고대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3~4번,,,배넘어재로 내려섰다.
길은 너무 편안하다. 올라갈 때 선택의 기로에 섰었는데 이 쪽으로 하산하길 너무 잘 했다.
형제봉의 우뚝한 모습은 다음 산행을 기약해 본다.
등산 할 때는 몰랐는데 정리를 하며 마치 석골사 오른쪽으로 운문산을 왼쪽으로 억산이 있는 산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해토요산악회와 함께 한 첫 산행, 사람도 산도 모두 만족한 나들이였다.
   - 이 사진은 김해토요산악회 돼지의 꿈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























♥ 주변 : 도림사는 원효대사 창건, 도선국사, 서산대사 사명대사고 공부했던 사찰로 '깨친 자가 숲을 이룬 절'이란 뜻이다. 도림사 앞을 지나는 계곡이 청류계곡인데 구한말 선비 하정 조병순과 춘기 정순태가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은 청류계곡 굽이마다 구곡이라 이름을 붙이고 글을 새겨 놓았는데 사곡(四谷)이 단심대(丹心臺)다. 단심대는 일편단심을 다짐하는 반석이다. 그 옆에는 서산강론(西山講論)이라는 큰 글자 아래 모두 9명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병순을 비롯해 당시 단심대에서 회합을 했던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박병선은 의병이었고 정봉태는 훗날 연희전문학교에 7대를 모아온 가문(家門) 장서 묵용재 1만 권을 기증한 사람이다.
새긴 날짜는 정사년 오월 병신일이다. 1917년 음력 5월이다. 장성 출신 위정척사파 의병장 노사 기정진과 손자 송사 기우만이 즐겨 찾던 곳이다. 조병순 또한 독립운동가였다. 서산강론 4년 뒤 조병순은 곡성경찰서에 끌려가 고문 끝에 죽었다. 1921년 그가 죽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장지연이 곡성까지 찾아가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장지연은 그 한 달 뒤 죽었다. 2011년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서훈을 박탈당하기도 한 장지연은, 죽을 때까지 지사(志士)의 죽음을 슬퍼한 우국지사였다. 진짜 변절자라면 조병순 유족들이 왜 도끼로 그를 처단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맞았겠는가.
청류계곡 바위에는 이런 글들이 우글우글하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우국지사들 단심(丹心)을 읽지 않으면 도림사 청류계곡은 절반도 보이지 않는다. 경치 속에 숨은 역사와 문화까지 즐거운 입체적인 풍경, 문화산수(文化山水)다.

    * 도림사 계곡과 단심대 설명 : 박종인의 땅의 역사, 섬진강 안개 속에는 골짜기도 많고 전설도 많아라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