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이틀 동안 코감기로 후각 기능을 잃은 상태에서 집에 박혀 드라마만 봤더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제일 좋은 처방전,,,산으로~~~
친구에게 S0S를 날려 얼마 전 산불이 났다는 삼각산으로 간다.
이른 아침이라 장안사는 한적하다. 주차장에서 대충 눈으로만 등산로를 확인한다.
장안사계곡을 따라 가다 갈림길에서 계곡쪽으로 걷는다.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남녘산엔 잎 떨어진 앙상한 나무와 발밑에 쌓인 나뭇잎의 소리만 들린다. 고요와 적막의 숲으로 들어간다.
안내판에서 보았던 대나무밭이 나타난다. 여기서도 갈림길, 방향을 어림잡아 왼쪽 길로 접어 드니 물은 말랐지만 또 다른 계곡길이다. 계곡이 끝날 때쯤 길도 끝났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길이었던지 낙엽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 봐도 허사,,,,포기하고 갈림길까지 돌아 나온다.
다시 대나무밭에서 다른 방향으로 오른다. 여기서도 길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어느덧 낙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요즘 등산리본 안 매기 운동하던데, 여기선 정말 리본이 절실히 그립다.
이제 돌아갈 수도 없고 나무가 조금 없는 곳으로 능선 쪽을 향해 올라 본다. 겨울 산의 묘미,,,어쨌던 산의 형태는 볼 수 있으니 짐작으로도 갈 수 있는 것.
짐작대로 능선에 다다르니 작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짐작한 방향으로 왼쪽행.
한참을 가니 나무에 짐승 사체가 걸려 있는데 너무 오래 되어 말라 있다. 직접 올라 가진 않았을 터, 죽어 있는 걸 누가 저기에 올려 놓았나 보다. 청도 남산 산행할 때 얼어 죽은 고라니 매고 내려 오던 아저씨 생각도 났다. 어쨌던 한 생명의 마지막을 보게 되어 안타깝다.
능선을 빠져 나오니 툭 트인 임도다. 석은덤, 불광산 표지석이 보인다. 이렇게 큰 길이 있는 산이었는데 아래서 헤맨 것 생각하니 약간 허탈하다. 어쨌던 벌써 3시간이 지나고 있다. 따뜻한 양지에 앉아 점심을 먹고 석은덤 방향으로 간다. 석은덤을 지나면 삼각산이 있을 것 같은 짐작으로,,,,
해운대CC가 오른쪽 방향으로 조금 멀리 보인다. 임도엔 길을 가로 질러 출입통제 팬스가 처져 있다. 다시 나타난 안내판에 검은 매직으로 삼각산 방향이 반대로 표시되어 있다. 갈등,,,포기하고 석은덤만 갔다 가느냐? 삼각산까지 돌아갈 것이냐? 결정을 못하고 석은덤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산행꾼들이 나타난다. 삼각산을 물으니 저 멀리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산이란다. 일단 석은덤에 오른다. '덤'이라는 글은 바위라는 뜻이라는데 '석은'의 뜻은 불분명하고 굳이 풀이하자면 '석은이라는 이름의 바위 덩어리'라는 곳인데 이곳이 워낙 육산이라 아래에서 보면 이 바위가 눈에 들어 온 모양이다. 기장군지에 큰덤산, 대둔산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는데 옛날 마을 사람 눈엔 큰 바위로 보였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석은덤을 내려 와 왔던 길을 다시 간다. 오른쪽 앞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또렷이 보인다. 그러나 산에 대한 안내판은 없다. 대강 짐작하고 장안사 안내를 보고 방향을 튼다. 얼마 전 불이 난 곳으로 오니 아직 매캐한 연기 냄새가 가득하다. 그래도 나무 밑둥 부분만 탄 나무들이 많은데 면적은 꽤 넓은 편이다. 삼각산 봉우리 일대가 다 화재 현장이다.
인터넷 기사를 살펴 보니 밤 9시가 넘어서 산불이 났다 한다. 화재 원인은 등산객, 무속인, 풍등 등 여러 가지가 예상되나 확실한 건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등산객이 밤9시나 되어 삼각산을 올랐을 리 없고, 육산이라 딱히 무속인들이 기도할 만한 기도처도 보이지 않는 곳. 정월 초하루라 해안에서 풍등을 날리는 행사를 했고 한 개가 삼각산 방향으로 갔다 하고 화재도 8부 능선쯤에서 났다 하니 풍등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어쨌던 많은 나무들이 타 버린 화재 현장을 보니 조심 조심 불조심해야겠다.
첫 번째 고개는 경사가 심하다. 연결되는 봉우리의 하나 였기에 1봉 또는 하봉의 표지석 정도는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다시 내려와 올라 선 봉우리에도 표지석은 없고 잔불제거할 때 쓴 것 같은 물통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리고 주변엔 유독 펫트병들이 널려 있다. 잔불 제거하고 물 마시고 물통은 버려 둔 것 같은 짐작이 들면서 의식 수준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드디어 삼각산 정상석이 나타난다. 466.7m 봉우리에 자유산악회에서 설치했다. 안타깝게도 아래 부분이 흔들려 조만간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무로 둘러싸여 갑갑했지만 어쨌던 감사한 마음으로 인증샷 남기고 바로 출발, 다음 봉우리에는 화강석으로 469m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고 어울림산악회 이름이 어지럽게 적혀 있다. 이건 아닌데,,,,지자체에서 정리가 필요할 듯,,, 높이로 보면 두 번째가 정상석일 것 같은데,,,,
세 번째 봉우리도 표지석이 있은 듯 했지만 부서지고 좌대만 남아 있다. 그나마 세 번째는 전망이 탁 트여 저 멀리 대운산, 또 저 멀리 동해까지 조망된다.
여기부터 하산,,,그런데 고도가 장난 아니다. 서서히 무릎도 아파온다. 대강 대강 올라온 걸 무지 후회하며 내려 온다. 이렇게 가파른 길을 내려 가려니 스틱도 걸리고 테이핑 안 하고 온 무릎도 신경 쓰이고,,,
바위도 지나고 돌길도 지나고 로프도 지나고 드디어 장안사가 보이는 전망바위에 앉는다.
정말 준비없는 산행,,,,막걸리 한 잔이 아쉽다. 딱 한 잔이면 되는데,,,,
날머리는 장안사 다리 옆 화장실 뒤로 나 있다.
다시 온다면 꼭 이 길로 가야할 터,,,,
기어 오르고 잡고 오르고 했으면 얼마나 즐겁게 올랐을까?
생각지 않게 일타쌍피 두 개의 봉우리에 오른 것에 만족하고 여유 있는 날 다시 천천히 오르기를 기대한다.
카메라,,,카메라,,,카메라부터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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