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2~14일 금,토,일요일(무박1일) 일교차 심한 가을 날씨
오매불망 그리던 설악의 공룡에 닿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며 저 멀리 보이던 기암괴석위를 얼마나 걷고 싶었는지 모른다. 늘 마음에 두고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가게 된 공룡능선.
어렵게만 생각했던 설악 산행이 경험많은 언니 덕분으로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심야 버스 타고 가기.
드뎌 금요일, 항상 차편이 있더라는 언니의 조언대로 예매도 하지 않고 노포동으로 갔는데 매진이다. 다행히 강릉가는 11시 20분 임시 버스가 있어 무조건 탔는데 11시 50분 속초행 버스가 바로 뒤따라 와서 강릉가서 받아 타면 된단다.
숙면을 취하고 강릉에 내리니 캄캄한 새벽 5시, 초겨울바람같은 찬 바람이 분다. 토요일 내려 가는 표 예매를 하려고 시외버스주차장으로 들어 갔지만 아무도 없다.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나서 달려 나가니 11시 50분 버스가 도착해 있는데 언니는 택시를 잡고 있다. 얼떨결에 택시를 타니 소공원까지 40000원 정도에 해 준다고 했단다.
차없는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재미도 있는데 택시는 말과는 다르게 미터기를 켜는데 어느 순간 돈이 갑자기 올라 가더니 70000원이 넘게 나오기 시작한다.
언니의 불만섞인 이야기에 기사님은 7만원에 해 준다고 했지만 처음 말과 달라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쨌던 6시 정도된 컴컴한 소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전국에서 올라온 산악회 버스들이 주차장을 꽉 메우고 있는데 사람들은 얼마 보이지 않으니 벌써 다 올라간 모양이다.
신흥사 통일대불은 아련한 형체만 보이는데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은다.
시멘트길을 올라가며 서서히 날이 밝아 오고 비선대에 도착했을 땐 어둠의 기운이 싹 사라진 터다.
비선대를 지난 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며 나타나는 바위는 아침 햇살 아래 명암이 뚜렷하다. 가깝고 먼 바위들이 꿈꾸던 내 시야에 그림인 듯 다가온다. 바위 사이 단풍들은 이미 가을빛을 잃고 스러져 있지만 하얀 바위의 위엄은 가히 압도적이다.
단풍빛에 실망할 때쯤 한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고래 울음소리를 내게 해 준다. 난 단풍보다 바위에 취해 있다. 그러나 과거 가슴뛰며 염원하던 그리움은 아니다. 아마 피츠로이와 또레스델파이네의 여운이 너무 강렬해 그 기운에 묻혀 버린 듯 하다. 순서가 바뀌어 트레킹을 했더라면 공룡의 감격을 더 깊이 간직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시야를 따라 내내 따라온다.
거대한 바위 사이로 난 바윗길에 다다랐는데 과거 마등령 안내판이 서 있던 자리란다. 마등령은 원래 자리를 찾아간 모양으로 쇠난간만 남아 있었으니 이 곳 풍치는 가히 압권이라 여기에서 처음으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바위 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이 가을 바람같지 않게 써늘하고 강한 편이다. 그늘이라 살짝 춥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냥 쉴 수도 없어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어선다.
마지막 잎새같은 끈질긴 몇몇의 잎이 가을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난다. 그 잎 뒤로 일출의 그늘로 윤곽이 불분명한 바위들이 배경이 된다. 불분명한 배경은 마지막 잎새들을 더욱 밝게 비쳐 준다. 햇살의 힘이다.
드디어 마등령삼거리,,,,이제부터 공룡능선 시작이다.
마등령에서 휴식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우린 그냥 주변 풍경만 감상하고 바로 공룡능선으로 향한다.
고개를 넘으니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아침부터 벌써 서너번 들었던 듯한데 이번엔 아주 가까이에서 들린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헬기가 떠 있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산악회에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와서 아침에도 노인 한 분이 실려 갔다며 안전 문제를 이야기한다. 무척 공감한다.
헬기를 가까이서 볼려고 잰 걸음으로 가다 현장 장면을 어슴푸레하게 목격한다. 걷다가 폴짝 뛰었는데 발목이 부러졌단다. 골다공증이 염려되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발걸음에 더욱 조심을 한다.
공룡능선의 바윗길에 흥이 난다. 하얀 색 몸을 드러내고 가까이 다가오기도 멀리 사라지기도 하고 바위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의 좋은 점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손발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 보이던 바위가 내 손과 발에 직접 닿았을 때의 쾌감은 즐거움을 넘어 짜릿하다. 좁은 바위길에선 병목 현상이 나타난다. 한 쪽에서 열 명씩 넘어 오고 넘어 오다를 하는데 가끔 빨리 넘어가지 못하니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유머를 담긴 말을 하며 기다리는 것도 즐기는 표정이다.
서너번의 기다림이 있은 후 넘어 오니 대청봉에서 넘어 오는 줄은 가히 100m가 넘어 보인다. 가을 설악산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좋은 추억거리로 이야기되겠지
몇몇이 바위 위에 있다. 내려오는 폼이 아슬아슬하지만 가만히 올려다 보니 길이 있다. 순옥이랑 둘만 올라갔다. 내려오는 아저씨가 장갑벗고 바위 틈을 잘 잡고 올라 가라고 알려 준다. 약간의 가슴짜릿한 스릴을 경험하며 올라간 곳. 그 곳에서 바라보니 설악의 골들은 더 깊이 패이고 바위들은 더 장엄했다. 울산바위, 동해바다도 가깝게 다가온다. 꼭대기에 올라 앉으니 도저히 내려가고픈 생각이 없다. 아래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할 수 없이 내려가는데 웬걸 내려가는 게 더 쉽다. 숏다리의 아픔을 유연함으로 극복하고 아래로 내려서니 아저씨 한 분이 올라갔다 왔느냐고 1275봉이라고 설악산에 와서 여기 안 가면 설악산 온 게 아니라고 너스레를 떤다. 가다가 노인봉도 올라가라는 안내까지 잊지 않는다. 내려 오며 1275봉을 뒤돌아서 보니 더 웅장하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노인봉이 앞에 보이는데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들어갈 용기가 없다. 몇몇의 사람이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잠깐 갈등하다 그냥 지나친다. 노인봉에서 보는 1275봉의 모습이 멋있다 했는데,,,
걸으며 계속 뒤돌아본다. 1275봉과 노인봉 그리고 주변 봉우리들의 품 속에서 기분은 한껏 고조된다.
설악 속에서 노니는 시간이 그저 감탄 그 자체다.
1275봉이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주변의 봉우리와 어울리는 모습들이 달라진다.
암봉들이 어깨를 마주하며 늘어서있는 능선, 그 능선이 하나가 아니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천화대의 운치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한 바탕 설악의 바위와 사랑에 빠지다 무너미고개에서 희운각대피소에 들르지 않고 바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선다. 설악의 단풍이 이 곳에 몰려와 꽃을 피우고 있다. 연방 감탄사를 연발하며 발걸음이 춤추듯 가볍다. 단풍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양폭대피소엔 사람의 물결이다. 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우린 어둡기 전에 가자며 쉬지도 않고 잰 걸음을 내딛는다. V자 협곡의 웅장한 바위들과 그 사이 물든 단풍은 흰색에 대비되어 그 빛이 더욱 화려하다. 협곡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 온다. 비선대를 지나면서 거의 깜깜해져 결국 렌턴을 켜고 내려왔다.
컴컴한 새벽 어슴푸레 보이는 통일대불을 또 다시 컴컴하게 만났다. 13시간 30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 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주차장엔 그 많던 대형버스들은 한 대도 없다. 속초 나가는 버스는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표부터 끊는데 감사하게도 딱 우리 네 명 것이 남았다.
11시 20분까지,,,여유있는 시간
옥남 언니의 조언대로 터미널 주변 모텔을 돌며 목욕을 할까 했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방이 없단다. 간단하게 동태탕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택시를 타고 해수탕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나니 그야말로 날아갈 듯 하다.
부산 도착하니 전철 첫 차 가는 시간이다. 흐미 이렇게 좋을 수가,,,,
어렵게만 생각했던 설악산을 너무 쉽게 갈 수 있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는 팁을 얻어 더욱 좋았던 여행이었다. 몇 번의 설악산행이 더 이뤄질지 모르지만 앞 뒤 옆으로 보이던 능선을 또 다시 걷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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