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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남,부산

(등산 240봉) 천성산 제2봉(비로봉), (등산 135봉) 제1봉(원효봉)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봄같이 포근한 날

 

장안사 숲길에서 아직 남은 가을을 만나다

 

셀 수 없이 다녔던 천성산이지만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영산대코스로 향한다. 양산에서 내려 영산대행 버스를 타야 되는데 금방 떠나 버렸다. 마침 학생들을 태우고 가는 스쿨버스가 왔는데 혹시나 싶어 물어 보니 학생들 타고 자리가 남으면 타라고 하신다. 다행히 자리가 몇 개 남아 뒷자리에 앉는다. 감사한 아저씨에게 커피값이라고 권하니 절대로 안 받으신다. 마음만 감사하게 받고 누군가를 위해 갚기로 한다.

버스가 내려준 곳을 조금 올라가니 천성산으로 가는 길이다. 등산로를 내어 주는 학교가 고맙다. 그리고 아직 가을을 품고 있는 가로수의 단풍이 고맙다.

 

 

 

 

 

 

가을이 끝났나 싶은데 서너그루의 단풍나무가 마지막 빛을 발한다. 단풍빛은 힘을 잃었지만 주위를 밝히기에는 아직 찬란하다. 계속 오르막이지만 단풍때문에 기운이 돋는다. 연리지나무도 한 몫을 한다. 연결된 줄기가 곡선의 원형을 이뤄 오묘한 모양을 이룬다.

 

 

 

 

 

 

낙동정맥이 지나는 능선을 만나면 오르락내리락 쉬면서 갈 수 있는 길이다. 2봉까지는 거의 오르막이지만 군데군데 평평한 길이 있어 쉬면서 걸을 수 있다. 군데군데 탈출로도 만나고 몇 개의 오르막을 더 오르면 한 군의 바위를 만난다. 우회로를 지나지 않고 바위로 올라 본다.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천성산의 골격이 훤히 드러난다. 겨울산의 묘미다. 그리고 나목 사이로 하늘이 들어와 훨씬 가까워 보인다. 바위를 넘고 조금 더 가면 다시 바위로 뭉쳐진 2봉이다.  

 

 

 

 

 

 

 

 

2봉에 오른 기억은 가물가물, 바람불던 겨울 정상석 아래 따뜻한 양지에서 대나무술과 점심 먹었던 것만 생각난다. 주로 공룡능선으로 올라 집북재에서 성불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다니거나 내원사 뒷길로 올랐다 중간에서 계곡으로 탈출하는 코스만 다녔으니,,,정상석 본 지는 정말 오랫만이다. 그래서 2봉의 정상석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어쨌던 서 있기도 어렵게 최고의 꼭대기에 올려 놓은 2봉석, 그래도 최고의 위치를 택한 것 같다. 이름은 흔한 두루 빛을 비추는 자, 비로봉이다.. 막힌 곳이 없어 정상석 자체가 빛이 나고 그 옆에 서니 하늘 아래서 함께 빛이 나는 듯 하다. 저 멀리 원효봉이 보이는 양지바른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는다. 바람이 불지 않고 내리는 햇볕이 좋아 따뜻하게 점심을 먹는다. 최고의 전망에서 최고의 한 끼다.

 

 

 

 

 

 

 

 

 

 

2봉을 넘으면 기분좋은 흙길이다. 따뜻한 햇살에 철없는 철쭉이 꽃을 피웠고 억새는 씨앗을 붙들고 여유롭게 너울거린다. 길목을 비추는 이런 풍경들에 그저 감사한다. 내가 수고로이 걸어서 보는 모습이라 나에게도 감사한다.

서서히 화엄벌의 억새들과 만나는 시간. 한껏 푸르렀을 여름과 최고로 빛났던 가을을 지났기에 지금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 되는 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으로 치면 내 나이쯤의 중년에 해당될 것 같은 억새의 모습에서 그래도 억새처럼 꼿꼿이 아름답게 버텨 낼 것 같은 위안을 받는다.

 

 

 

 

 

 

 

 

 

 

화엄벌 능선은 S자 데크로 부드러움과 곡선미를 강조했다. 밋밋한 직선을 볼 때보다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살풋 돌아가는 길이 보이게 사진도 찍어 보고 보이지 않는 길의 끝에 궁금증도 담아 본다. 내가 오지 않는 사이 화엄벌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완전 봉쇄했다. 정말 잘한 일.

과거 정상석이 있었던 자리에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화엄벌 사이로 내원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막혀 있다. 이것도 잘 된 일. 억새 사이로 난 나무에 걸린 준희의 시그널이 반갑다.

 

군부대가 있던 꼭대기를 지나 새로 조성된 1봉 정상으로 간다. 군부대의 지뢰 때문에 흉물스런 쇠철망이 군데군데 시야를 어지럽힌다.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시바삐 걷어내지기를 소망해본다.

새로 조성된 1봉은 제법 넓은 공터에 조망권도 좋아 저번보다 훨씬 위치가 좋은 것 같다. 넓게 주변을 정리했고 조망권도 최고다. 양산시에서 이건 정말 잘 한 것 같다. 1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엄벌이 눈에 꽉 차게 들어 온다.

옆에 작은 글씨로 원효봉이라고 적어 놓았다. 원래 있던 원효산에서 따온 것 같은데 원효대사가 천 명 대중을 득도케 한 천성의 이름이 너무 커 원효산의 이름은 갖지 못하나 보다.

 

 

 

 

 

 

 

 

 

 

 

 

 

 

 

 

 

 

 

 

하산은 원효암으로 가기로 한다. 한참 돌길을 지나는데 길이 끝이 나지 않는다. 원효암이 나왔어도 벌써 나왔어야 할 시간. 옛날 이 길로 왔던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며 홍룡사로 가는 길임을 직감한다. 이젠 돌아가기도 힘든 시간. 그냥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길을 찾아 가며 홍룡사로 내려 온다. 계곡 바위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라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조금씩 남아 있는 단풍을 만나게 되니 새로운 기운이 돋는다. 길을 잃는 곳에 새로움이 있다. 길을 잘못 찾은 게 더 잘된 일이 되었다.

 

 

 

 

 

 

 

 

홍룡사가 나타났지만 들르지 않고 너른 등산로를 따른다. 위의 길과 다르게 너무 좋은 길이다. 아직 노랗고 누런 잎들이 주변을 밝힌다. 이것이 올해 마지막 단풍이구나. 벌써 몇 번째 마지막 단풍타령을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기에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해가 조금씩 기울며 노란 단풍위를 비춘다. 햇빛과 만난 잎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주변이 온통 환한 노란 세상이다. 빛이 나는 황금 세상으로 들어 간다.

계곡이 도로와 만나는 곳에 다다르니 황금빛은 폭죽처럼 퍼져 나온다. 도로에 올라서면 황금 세상이 끝날 것 같아 계곡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어쩔 수 없이 도로에 오르니 깨끗하게 조성된 대석주차장이다. 정자엔 몇몇의 사람들이 노란 물감에 쌓여 이야기에 빠져 있다.

 

 

 

 

 

 

 

 

 

 

 

 

 

 

 

 

 

 

 

 

 

 

 

 

차도를 따라 걷는다. 황금 세상이 끝나가고 차도의 걷기도 밋밋해진다. 싱싱 우리 옆을 지나는 차들이 무심하게 보일 때 용기를 내 순옥이가 손을 든다. 고마운 분이 차를 세운다. 주변 산책을 다녀 오는 부부다. 용기를 내면 이런 행운이 찾아 온다.

버스 정류장까지 정말 잘 타고 왔다. 이 분들께 감사의 인사외엔 달리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으로 보답하기로 한다.

마지막 단풍과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걸은 천성산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