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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북,대구,울산

(등산108봉) 경주 금오산, (등산 105봉)경주 고위봉

2018년 12월 1일 토요일, 아직 늦가을같은 포근한 날씨

 

네 번째로 올랐지만 완전 새로운 


▶코스 : 삼릉 → 바둑바위 → 금오산 → 이영재 → 칠불암 → 백운재 → 고위봉→ 이무기능선 → 천우사 → 용장골 → 버스타고 삼릉, 사진찍으며 7시간


처음 남산을 찾은 건 30대 후반쯤일까?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목부러진 불상과 칠불암의 불상들만 강렬하게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 뒤로 포석정에서 오르고, 통일전에서 올랐으니 삼릉은 거의 20년이나 지나 찾은 셈. 네 번째지만 거의 처음인 것처럼 새로운 기분이었다.

배병우 작가의 사진이나 블로거 사진작가님들의 사진에서 삼릉소나무는 너무나 익숙해진 곳.

그래서 나도 작품하나 남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리 카메라를 들이밀어 봐도 도무지 구도가 잡히지 않는다. 역시 전문가들이다. 퍼뜩 포기하고 삼릉으로 접어 든다.


삼릉엔 신라8대 아달라이사금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다. 세 사람의 세대가 너무 차이 나 인터넷을 뒤져 역사 공부를 해 본다. 복잡한 신라의 왕족, 박씨, 석씨, 김씨

어쨌던 8대 아달라왕이 박씨고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헌강왕의 사위 신덕왕, 그의 아들 경명왕이 모두 박씨이자 8대 아달라왕의 직계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한 곳에 모신 것 같다.

아름드리 소나무숲에 세 기의 곡선이 평화롭다.




소나무숲은 각각의 곡선들이 배치되어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잘 관리되어 앞으로도 계속 이 모습이 보존되길 진심으로 염원하는 사이 남산의 진정한 자랑, 불상들의 전시가 시작된다. 제일 처음 계곡에 흩어져 있는 목없는 불상을 시작으로 환조, 부조 등 다양한 불상을 만난다. 불교의 나라에서 불심으로 살아 갔을 민초들의 염원이 돌마다 오롯이 새겨져 있다. 너무 세련되지 않았기에 더욱 더 백성들 곁에 있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삼삼오오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기에 몰입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도 마치 불교에 귀의한 듯 경견하다.








단모리로 이어지는 스님의 불경 소리가 정겹다. 예닐곱의 젊은 외국인 중 한 남자애는 스님의 불경 소리에 몸을 흔든다. 경쾌한 리듬이 신나게 들렸나 보다. 법당 앞 평상에 앉은 젊은 여인도 목탁 소리에 발끝을 맞춘다. 단모리의 장단과 스님의 불경, 법당 앞 여행객의 몸짓들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살짝 법당안을 들여다 보니 스님은 여행객은 아랑곳없이 불경암송에 몰입하고 있다. 부처님 세 분이 편안히 앉아 계신다. 불자가 아니라도 경건해지는 순간이다. 이 절이 상선암, 정말 소박하다. 평상에 커피 천 원. 보태줄 것이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아 애써 커피 한 잔을 타 마신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상선암 커피는 믹서라도 맛이 다르다. 상선암을 돌아 나오는데 바위 위에 돌탑을 얹어 놓았다. 세 개의 바위에 세 개의 돌탑. 누군가의 바램이든 지나가는 길손의 장난이든 보는 사람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 개의 돌탑은 곡선의 배 모양을 얹어 놓았다. 금방이라도 흔들릴 것 같은 위태함이 있지만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돌길을 걸어 능선에 오르면 경주 들판이 훤히 보이는 전망바위에 다다른다. 바둑바위란다. 앉아서 바둑을 둬도 될 정도로 넓고 평평해서 지어졌는지 실제로 바둑을 둬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여튼 외국인 예닐곱명, 우리 팀, 또 다른 등산객 등 십 수명의 사람들이 있었어도 빈 공간이 많을 만큼 넓직하다. 상선암에서의 그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논다. 역시 경주라 외국인들이 보이고 거리낌없는 그들의 모습이 좋다. 우리도 경주 들판을 내려다보며 훤한 시야를 즐긴다. 한 나라의 수도로 정해진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물이 흐르고 들이 넓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정말 생각보다 들이 넓었고 농사가 끝난 자리엔 하연 타조알같은 벼뭉치들이 놓여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능선길은 바윗길이다. 바위길을 걷기도 하고, 길 옆 바위로 오르기도 한다. 바위 모양은 금정산 바위를 닮았다. 뾰족뾰족한 직선보다 둥글둥글 선이 고운 곡선의 바위들이 많지만 간혹 우람한 바위들이 앞을 막아서 감탄을 주기도 한다. 미처 들러지 못했던 거대한 부조의 부처님을 능선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남산에서 2번째로 큰 불상으로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조금 가니 금송정터. 옥보고가 앉았을 그 자리를 찾아 보고 바람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을 가야금 소리를 상상한다. 선으로 그려낸 부처님의 지워진 선을 애써 찾아 보기도 하고 산에 가면 항상 있는 이야기, 아이를 잘 낳게 해 준다는 바위를 찾아 보기도 한다.

삼릉길은 불교의 자비를 새기며 자연히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그래서 삼릉길은 사색의 길이 된다.







금오산 정상이다. 금오산의 금오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금오와 똑같은 한자를 쓴다. 김시습이 용장사에 들어 스님이 되고 금오신화를 지었기에 거기에서 따온걸까? 금오산의 글자도 금오신화와 관련지어 예술적으로 썼나? 모든 게 금오신화와 연결되어지는데 그냥 마구 내 생각이다. 

금오산 정상엔 국립공원 직원 두 분이 계셨다. 칠불암 들렀다 고위봉을 갈 거라니까 친절하게 갈 길을 알려 주신다. 아저씨께서 일러 주시는 대로 두 번째 갈림길에서 이영재로 들어선다. 가는 길에 바위 능선이 보이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멋진 길이란 생각을 했는데 그 길이 칠불암 가는 길이다. 오롯이 바위로 이루어진 길이고 바위 사이사이를 뿌리가 안고 있다. 생명력이 넘쳐 나는 길이다. 칠불암 가는 길은 재미있는 길이자 장엄한 길이다.




칠불암의 칠불을 먼저 만난다. 처음 왔을 때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은데 기억에 비해 소박하다. 처음의 기억이 그만큼 강렬했었다 보다. 부처님의 자비를 천지사방에 알리고자 무심의 돌에 생명을 불어 넣었을 터,,,불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정신과 정성에 합장예배를 올린다.

법당이 있을 위치에 스님의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 안을 둘러 보니 벽안의 스님이시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너무 선하다.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칠불암의 부처님으로 대신한단다. 인사를 올리니 차 한 잔을 권하는데 동행한 사람들이 차 마시기를 원치 않는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선뜻 그렇게 하라 하신다. 다음에 칠불암을 찾으면 이 스님 때문에 가게 될 것 같다.







다시 바위 능선을 올라 고위봉으로 향하는데 그 길이 백운재다. 걷기 좋은 흙길이다. 중간 중간 소나무 뿌리가 길을 감싼다. 뿌리에서 느껴지는 위대한 생명력. 뿌리를 밟을 때마다 미안하면서 감사해지는 마음이다. 그러다 고위봉에 이른다. 조금 늦어선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영재에서 바라보이던 이무기능선의 암릉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내려가는 길이 애매하다. 이리저리 둘러 보고 이무기능선을 찾고 있는데 마침 두 분이 올라오신다. 그 분의 안내에 따라 두 말 않고 이무기능선으로 내딛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 바위에 기대 사는 소나무들의 생명력과 함께 소나무들의 생김생김이 과히 예술적이다. 그저 감탄과 감사를 쏟아낸다.













걸으면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태봉능선도 역시 아름답다. 태봉에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데 다음엔 저 능선을 기 보리라. 제법 가파른 길이 이어지다 용장마을이 조망되고 조그만 암자가 드러난다. 살림집이 법당을 가리고 있어 자칫 지나칠 뻔 했는데 마당앞에 서 있는 보살님의 뒷태에 끌려 방향을 튼다. 법당이 뒤쪽에 있어 들어가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 나온다. 마당 끝에 천우사 간판이 있어 일부러 들어오지 않았으면 이름도 모를 뻔 했다. 천우사 길을 따라 내려가니 군데군데 미나리재배 하우스가 보이고 얼마 안 가 용장마을이다.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살기좋은 따뜻한 곳이다. 따지 않은 모과가 하늘에 조롱조롱 매달렸다. 모과가 너무 예쁘다는 데 주인 할머니는 그저 무심하게 집안일 중이다. 편안한 오후 풍경이다.





어디 안 좋은 산이 있겠냐만 남산은 어느 계절, 어느 코스나 다 좋은 것 같다. 서출지의 연꽃이 한창이던 여름도 좋았다. 미나리향 그윽하던 2월의 어느 날 포석정 코스도 좋았다. 이번엔 삼릉의 유적들과 함께 하고 이무기능선의 바위를 탔기에 더욱 즐겁고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다음엔 어느 코스로 올라오더라도 태봉능선은 들러봐야 할 것임을 또 숙제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