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경북,대구,울산

(등산 234봉) 포항 운제산, (등산 235봉) 포항 시루봉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평년 기온 찾아 포근한 가을 날

 

노란 세상, 환한 세상에서 놀다.


포항에 있는 산을 가 보자 생각했다. 내연산은 이미 서너 번 다녀 온 터라 어디를 가 볼까 생각하다 삼십여년도 더 전에 산꼭대기 절이 멋있었던 것 같은 오어사란 곳이 생각났다. 검색을 해 보니 등산 시간도 적당하고 오어지의 단풍도 절정일 거라 해 오어사가 있는 운제산으로 향했다.

국제신문 코스로 5시간 정도,,,

지도를 다운 받고 기분좋게 출발,,, 고속도로로 새로 개통되어 가는 시간도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9시가 안 되어 도착했더니 오어사는 한적하다. 오어사 바로 앞까지 올라 갔는데 주차장에 빈 자리도 있다.

주차장 바로 앞 오어지는 단풍이 내려 앉았고 출렁다리 위엔 가을빛을 담으러 온 몇몇의 사람들이 즐겁게 건너고 있다. 사람들 북적이기 전에 얼른 인증샷 한 장 남기고 오어사를 지나니 산 위 암자가 눈에 들어 온다. 내 기억속엔 저기가 오어산데 오어사는 평지에 있고 위에 있는 것이 자장암이다. 그래도 산 위의 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을 찍은 곳에서 다리를 건너니 원효암인데 지도와 비교하니 하산을 이 쪽으로 하면 되겠다 싶어 오어사를 돌아 나가 자장암으로 향한다. 






자장암은 출렁다리 입구 맞은편 언덕으로 오른다. 바로 가파른 계단길이지만 높지 않아 금방 오를 수 있다. 자장암에서 내려다 보는 맞은 편 산들의 능선이 정겹다. 등산로는 오어사 뒤편으로 난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임도를 지나니 걷기 좋은 산행로가 연결되고 길가 곳곳엔 해병대 훈련터를 알리는 리본과 해병대를 상징하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누구나 행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와 같은 문구들이 붙어 있다. 아들한테 전화해서 물어 보니 자기들은 다른 곳에서 훈련했단다.

깔딱재, 바윗재 등의 이름도 붙여 놓았는데 사실 다른 곳에 비하면 이런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데 그런 귀여운(?) 이름들 때문에 웃으며 올랐다.









운제산은 도토리 나무로 불리는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종류가 많았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마르지 않고 연한 노랑이나 연갈색을 띄는 나무들이 많았다. 덕분에 걷는 내내 환한 느낌의 노란 세상이 자주 나타났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인 가곡 중 '아무도 모르라고'를 흥얼거린다. 가사 내용과 별로 관계없지만 '떡갈나무 숲 속에~~'로 시작되는 첫 부분 때문이다.

숲 속 길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자가 나타나고 특이하게도 정자 아래층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정말 폼은 나지 않는다. 옆에 바위도 있던데 그 위에라도 세웠으면 좋았을걸 정자 아래 컴컴한 곳에 정상석이라니,,,




정상을 지나니 기분좋은 낙엽길이다. 항상 나무 위쪽에 리본을 다는 맨발산악회 리본도 보이고 그 옆에 준희리본도 보인다. 일면식은 없지만 산에 가면 종종 만나게 되는 리본이라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걷는 길 주변엔 도토리과 나무들이 마르지 않고 노랑에서 주황, 약간의 연갈색을 띄고 생강나무, 비목나무들처럼 노랗게 물드는 나무가 많아 환한 노란빛이다. 등잔봉에서도 이렇게 노랬었다. '노랗다'는 한 개의 사실이 연관된 다른 기억을 불러 와 걷는 길은 다시 추억의 길이 된다. 노랑색이 햇빛을 받아 반사되니 주위는 더욱 밝고 환해진다. 길맛도 좋은데 주변이 밝으니 더욱 즐겁게 걷는 길이 된다.










운제산만 갔다 오기엔 산행 거리가 짧아 시루봉까지 가기로 한다. 별로 높지 않은 봉우리인데다 낙엽까지 깔려 있어 오르락내리락 걷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다. 시루봉을 1km 남겨 놓고 간단하게 막걸리로 요기를 한다. 세상에서 최고의 맛이 걷고 난 후 마시는 막걸리다. 근데 금정산막걸리는 조금 오래 되어 신맛이 강해졌고 생탁은 단맛이 받힌다. 그래도 두 잔은 개운하게 마셔진다.

시루봉은 나무들이 둘러서 있어 전망은 없다. 인증샷만 간단히 남기고 무장봉 방향을 향한다. 근데 원효암이나 오어사 가는 안내판이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고 무장봉 안내판만 보인다. 일단 무장봉 쪽으로 가면 있겠지 싶어 가는데 안내판은 없다. 혼자 올라오는 아저씨가 계셔 물어 보니 굼벵이마을에서 올라 왔다며 가는 길을 알려 준다. 아저씨가 알려준 세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는데 길은 있지만 약간 희미하다. 중간 중간 길이 사라지고 길을 잘못 찾아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긴 너무 먼 것 같아 아래쪽으로만 가는데 이젠 길도 보이지 않는다. 대충 계곡 쪽으로 난 길을 헤집고 나간다. 그나마 나뭇잎이 없으니 주변은 잘 보이는 것 같다.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물이 보이니 반가워 발부터 담가 본다. 발이 시려 금방 꺼내지만 개운하긴하다. 계곡길을 따라 가니 트럭이 보이고 아저씨 한 분이 터닦이작업을 하고 계신다. 사유지로 들어 온 셈이다.





돌아나가는 길을 설명하는데 복잡하다. 돌다 보니 다시 아저씨랑 만나고,,,결국 사유지를 한 바퀴 다 돌아 나 가니 등산로와 연결된다. 등산로를 따라 가니 굼벵이사육장이 나타나는데 마을이라기보다는 이 건물이 전부인 곳이다. 








굼벵이 농장 옆으로 난 개울길을 따른다. 여기도 군데군데 길은 사라진다. 그래도 개울가의 단풍 때문에 걷는 길은 즐겁다. 위에선 보지 못했던 단풍나무들이 제법 나타나 만추의 기분을 만끽하게 해 준다. 조금씩 길이 또렷해지고 나무들은 정갈해진다. 멀리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 터억 호수가 나타난다. 오어지다.












오어지 주변의 숲은 그늘이 져서 그런지 아직 한여름의 푸른 싱싱함을 갖고 있다. 노랗고 빨간 세상에서 만나는 초록빛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오어지 둘레길에선 오어지를 찾은 많은 사람들을 지나친다. 단풍이 좋은 곳 어디에나 만날 수 있는 인파들이다. 오어사에선 보이지 않는 뒤편 호수인데 한참을 돌아 내려 가니 원효암가는 길이 나타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걸었는가?

지도를 보고 대강 짐작해 보니 댓골로 내려온 듯 하다. 5시간을 예상했는데 8시간이 걸렸다. 워낙 걷기 좋은 길이라 기분좋은 길이었지만 또 헤맨 것에 대해선 약간의 찜찜함이 남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해지는 저녁 놀을 만난다. 늦은 가을산을 만나고 가는 길은 어떤 길이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운제산, 시루봉, 맑은 댓골의 물까지 만나고 가는 길이니 저녁 놀만큼 환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