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0일 토요일 봄같이 포근한 날
장안사 숲길에서 아직 남은 가을을 만나다
새싹이 돋아나는 4월에 항상 찾는 산이 대운산이었다. 유독 대운산의 새잎들은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4,5년을 봄마다 찾다 한 두 해 연달래를 찾다 그러고 몇 년을 가 보지 못했었는데 옥남 언니가 마지막 단풍을 보러 대운산에 가자고 한다. 흔쾌히 따라 나선다.
부전역에서 동해남부선을 타고 남창에 내려 택시를 타고 상대주차장까지 갔다.
오지 못한 몇 년 동안 너무 많이 변했다. 입구에 있던 가게들은 보이지 않고 주차장과 도로로 공사가 한창이다. 주차장 입구에 인공 폭포도 만들어 놓았다. 삼 사년 오지 못한 것 같은데 상전벽해다.
바로 대운산 제2봉으로 가는 능선을 타고 오른다. 이미 가을은 지난 모습이라 말라 있는 상수리잎을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즐긴다. 내원암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새로이 돌탑도 만들어 놓았다. 저번에 못 보던 것이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선 구비구비 산 줄기의 가을이 눈에 들어 온다. 가을의 마지막을 붙들고 길게 이별을 고하고 있다. 몇 년 전의 기억이 생각나는 장소도 있고 생소한 곳도 있다. 추억과 새로움과 함께 걷는 길이 된다. 길은 능선을 따르지 않아 계속 오르막이다. 괜히 겨울채비를 하고 나온 터라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린다. 옛날엔 흐르지 않던 땀이다. 할 수 없이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막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제2봉, 새롭게 만나는 표지석이다.
쉬지 않고 바로 대운산 정상으로 향한다. 군데군데 힘잃은 억새들의 마지막 노래가 가냘프다. 이별을 앞둔 억새 씨앗은 안간힘을 다하여 줄기를 안고 있다.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더욱 감사한 모습이다.
데크가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등으로 내려 오는 햇살이 포근하다. 간단하게 각자 반찬 한 두 가지 가져온 점심이지만 산 위에서의 식사는 항상 최고이다.
옆에는 아저씨 세 명이 고기를 굽고 상추에 쌈장에 소주까지 곁들인 호화판 식사를 하고 있지만 결코 부럽지가 않다. 간단한 것 같지만 식사에 과일에 커피까지 풀코스로 마쳤으니 세상 아무도 부러울 게 없다.
점심을 먹었던 데크 위로 상대봉 안내판이 있다.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보아 새로 표지판을 만든 듯 하다. 별 특징없는 봉긋한 봉우리지만 새로 표지석을 만들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리본이 보인다. 상대봉이 맨발시그널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는데 6000회 산행을 기념하며 준.희, 산새들의 합창 등 재야산악인들이 참석해서 기념비를 세웠단다. 표지석 뒷면의 글을 보기도 했는데 무심하게 지나쳤다. 전문산악인 카리스마님의 댓글 아니었으면 이런 중요한 정보를 모를 뻔 했다. 모두 감사한 분들이다.
상대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연결되지 않고 점심 먹었던 데크로 다시 내려 온다. 세상에 그렇게 다녀 왔는데 아직도 세 아저씨들은 식사를 하고 있다. 너무 많은지 먹고 가란다. 쩝,,,이건 예의가 아니다. 패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오르락내리락 힘들지 않다. 봄, 연한 분홍으로 주변을 밝혔을 연달래 나무를 보며 그 봄 그 색들을 떠올린다. 마지막 오르막 약간의 깔딱고개를 지나니 정상이다. 데크도 새로 한 것 같고 정상석도 다시 세운 것 같다. 도대체 얼마만에 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안 온 지 십 년은 넘은 것 아냐?'
정상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끌고 올라 오시는 아저씨가 계신다. 임도를 타고 왔단다. 사진 한 장을 찍어 주고 자전거를 빌려 사기샷(?)을 남긴다. 언젠가 자전거 타고 와서 찍어 보리란 생각을 해 보며,,,
대운산에서 불광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보드라운 흙길이다. 능선도 부드러워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별로 없다. 금방 불광산 정상을 만난다. 경쟁하듯 크게 만든 정상석이 아니라 산에 어울리는 아담한 정상석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장안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가을을 만난다. 대운산보다 남쪽이라 그런가 알록달록 가을이 남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이라 더 감사한 마음으로 단풍을 즐긴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듯 하다 어느듯 온전한 가을이다. 마지막 단풍을 주심에 모든 신께 감사한다. 덕분에 장안사까지 가는 길은 환희에 찬 길이 되었다. 감탄과 탄성이 걸음걸음에 밟혔다.
장안사를 내려 오니 어둑어둑 어둠이 찾아 온다. 버스는 30분이 더 있어야 온단다. 어둠이 내려앉는 장안사길엔 들어오는 차는 보이지 않고 나가는 차만 한 두 대, 식당도 문을 닫고 있다. 겨울이 찾아 오는 절동네는 일찍 스산해진다.
버스가 왔고 서창으로 나가 지하철을 타고 다시 부전역으로 갔다.
주차비는 30%할인해서 10500원이라는 주차권만 붙어 있고 온라인 납부하면 된단다. 참 좋은 세상이다.
부전역앞에서 산꼼장어구이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룰루랄라 집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산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산을 갈 수 있는 힘있는 다리가 있고 살짝 살짝 아프지만 아직은 잘 견뎌주는 무릎이 있어 너무 감사한 날이다. 모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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