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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제주도

(등산 1봉) 제주 한라산 백록담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눈 없는 겨울의 한라산, 그 속살 속에서 걷기 


▶ 전체 일정 : 28일 저녁 7시 배로 부산 출발 ~ 29일 아침 7시 제주 도착해서 등산 ~ 29일 저녁 7시 배로 제주 출발 ~ 30일 아침 7시 부산 도착

▶ 등산 코스 : 성판악 → 속밭 → 사라오름 → 진달래밭 → 각우목재 → 백록담 → 용진각 관음사   

 

등산한 산을 기록하겠다고 하고 제일 먼저 등록한 한라산, 그 시작은 풋풋한 대학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물도 없이 올라간 산에서 지나가던 아저씨가 건넨 생명수같던 맥주 한 모금의 추억을 시작으로 직장 동료들과 산악회 회원들과 다섯 차례 오르고 이번이 여섯 번째 산행이 된다.


이번 산행은 한길로팀에서 속닥하게 다섯 명이 산행을 나섰다.

수리를 마친 배가 할인까지 해 주는 기회를 가져 부산에서 편하게 배로 갔다 배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간단한 저녁 요기거리를 사 들고 배에 탔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이마트도 들어와 있고 식당 음식도 먹을 만하다. 새로 리모델링해서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쾌적하다.

여자 4명은 2층 침대가 있는 4인실을 이용했고 화장실, 샤워 등은 공동으로 사용했으나 불편함은 별로 없었다.

저녁 7시에 출항한 배는 7시 조금 못 미쳐 제주항에 도착했다.

제주항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성판악휴게소에 도착, 눈이 없어 스틱만 준비하고 바로 출발한다.

작년 1월, 눈이 많이 와 길을 만들며 올라갔던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눈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눈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라산의 자연을 온전히 즐기며 왔다. 

속살이 드러난 나목에 눈을 얹은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조금은 낯선 겨울 나무의 본 모습을 보는 색다른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등산로의 현무암이 발바닥 전체로 느껴져 새로운 기분이다.

 

 

사라오름 가는 길의 나무들은 그 자체가 그림이다.

굵고 가는 줄기들의 곡선이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연이 만들어준 완벽한 작품에 감탄하며 가는 사라오름길, 길맛이 너무 좋다.

얼마 안 가 텅 빈 공간, 사라오름의 분화구가 나타난다.

눈이 없는 황토색의 운동장같은 넓은 공간이다. 

푸른 물이 담긴 호수였다면 하는 얼마나 좋을까? 잠깐 아쉬운 마음을 내려 놓는다.

 

 


곧바로 사라오름 전망대, 제주도 시내까지 볼 수 있는 맑은 날로 오름의 모습도 한라산 정상의 모습도 시원하게 담긴다.

언제가 오름 순례를 시작할 날을 기대하며 설레임으로 오름의 모습도 새긴다.

한라산 까마귀들의 맹랑함을 잠깐 즐기다 다시 분화구, 나목의 그림을 즐기며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한다.

  

  

 

잠깐 앉은 자리에는 까마귀의 눈치짓에 재미가 난다. 

눈치 100단인 까마귀들은 옆걸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와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물고는 또 잽싸게 나른다. 내가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는데도 반경 2m 정도 이내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자연을 떠나 이미 사람에게 기대버린 까마귀에게 차라리 먹거리를 주고 가는게 낫나? 잠깐 갈등이 생긴다.

 

 

구상나무 군락이다. 맘껏 생명의 나래를 펴는 초록의 나무 옆으로 생명을 다 한 나목의 자태가 꿋꿋하다.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닌 나목은 사람들의 눈에서 카메라의 셔터 속에서 다시 새 생명으로 부활하고 있다.

구상나무 지대를 벗어나면 넓은 정상부의 데크길이 나타나고 한라산 정상을 조망하며 오른다.

 

 

 

 

데크길 옆으론 화산의 흔적인 현무암 지대로 검은 돌들의 틈 사이엔 그들을 붙잡고 자라는 키 작은 식물들이 온 힘을 다해 붙어 있다.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데크를 벗어난 사람들의 사진놀음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나 자제를 하는 게 좋을 듯 한데, 그들의 행동엔 거침이 없다.


 

 

 

 

마지막 힘을 다해 현무암을 오르면 정상부가 나타나는데 백록담을 보는 것 보다 급한 것이 있다.

인증샷 촬영.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늘어선 줄을 보면 선뜻 백록담으로 갈 수가 없다.

관리인은 시간이 늦었다고 빨리 정상을 떠나라고 성화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결국 줄은 포기하고 한 쪽 옆에서 인증샷 남기고 백록담을 감상한다.

 

 

 

백록담 분화구엔 그나마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어 겨울산임을 느끼게 해 준다.

이름이 무색하게 물이 사라진 곳, 자연의 조화겠지만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래도 현무암의 울퉁불퉁 돌들 사이를 지나며 바라보는 백록담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거대한 웅덩이에서 피어 올랐을 붉디 붉은 화산의 그 날을 생각하면 평화로운 지금의 백록담이 얼마나 감사한지,,,

관리인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다.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데크에 앉아 라면과 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아직도 인증샷 줄은 이어지고 있다.

 

 

 

관음사코스로 하산을 한다. 멀리 바다까지 탁 트인 시야로 마음까지 밝아진다.

등로 주변의 구상나무 수형이 아름다워 걷는 길이 즐겁다.

눈도 제법 많이 쌓여 있어 겨울 산행의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관음사 코스 하산길에 내내 장구목 능선과 함께 한다.

늘씬한 장구의 몸체와 흡사하고 능선 아래로 펼쳐지는 바위병풍의 위엄이 힘있게 다가온다.

가까이의 구상나무 나목, 멀리는 장구목,,,걷는 길이 내내 즐겁다.

 

 

 

 

 

 

 

 

 

태풍 '나리'로 손실되었다는 용진각대피소에 닿는다.

잠시 목을 축일 겸 앉아서 주변을 둘러 본다.

경사가 급한 편이라 오르긴 힘들겠지만 다음엔 이 코스로 올라 보기로 생각한다.

장구목의 완만한 능선길을 걸어도 참 평화스러울 것 같단 생각도 해 본다.

 

 

 

탐라계곡을 지나는 현수교를 오른다.

현무암 지대에 현수교라면 계곡이 물이 넘칠 때가 있단 건데,,

그러고 보니 여름에 지리산 온 게 딱 한 번 뿐이었네.

그 날도 비가 와서 정상까지 오르진 못 했고,,,

여름에 또 한라산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이리 저리 한라산 찾을 꺼리가 생겨 난다.

'아, 나는 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

 

 

 

등산로 주변의 바위를 감상하며 삼각봉 대피소를 만난다.

삼각봉 뒤로 넘어가는 해의 실루엣이 힘차다. 

후광을 업은 삼각봉의 모습이 내내 눈길을 사로잡아 고개를 연신 돌리며 내려 온다.

길은 곧 순해지고 탐라계곡대피소, 탐라계곡 나무다리를 지나 어느덧 숯가마터까지 단숨에 내려온 듯하다.

 

 

 

 

 

 

 

 

 

용암의 흔적이 남은 물결 바위, 한 때 석빙고의 역할을 했다던 구린굴도 지나 관음사휴게소까지 도착했는데

배 타는 시간이 촉박하단다.

도로 옆 주차된 택시를 순번대로 타니 젊은 아저씨다.

시간이 촉박하다니 요리조리 교통 위반 하나 안 하고 너무나 잘 달린다.

고마워서 1만원을 더 팁(?)으로 얹어 드리고 편안하니 다시 배로 돌아 온다.


한라산 산행만을 위해 배로 갔다 배로 돌아오는 일정은 처음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선상에서의 시간도 즐기고 싶다면 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번 산행은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코스로 오르고픈 생각을 갖게 했다.

철쭉, 여름 계곡, 가을 단풍, 다른 코스, 오름까지,,,

몇 번이 될 지 모르겠지만 한라산을 찾을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그러기 위해 계속 건강을 유지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