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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등산 275봉) 서울 북한산 동장대(시단봉)

2019년 10월 25일 금요일


북한산 종주 3. 보국문에서 동장대, 백운대까지. 만산홍엽속 추억과 함께 걷기



등산코스 : 정릉탐방지원센터 - 보국문 - 대동문 - 동장대 - 용암사지 - 북한산대피소 - 용암문 - 백운봉암문 - 백운대 - 백운산장 - 인수암 - 백운대탐방지원센터 - 소귀천계곡입구 


무릎이 아파 하루를 쉬었는데 별로 차도가 없다. 쉬느니 다시 가자.

동생의 걱정을 뒤로 하고 정릉탐방지원센터로 간다.

나름의 걷기 노하우을 활용해 살랑살랑 걸으니 그리 힘들진 않게 오를 수 있다.




산길 주변은 내려올 때보다 올라갈 때 더 자세히 보인다.

주능선길이 만산홍엽의 붉은 세상이라면 이 길은 노란 상큼함의 길이다.

레몬향이 나는 듯한 주변 풍경에 마음은 밝아지고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단풍이 다시 나타날 때쯤 바위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한다.

힘들어서라기 보단 단풍아래서의 호사를 즐기고 싶다.

빛에 반사된 단풍잎, 바람에 어쩌다 떨어지는 낙엽, 바위를 안고 마지막 열정을 태우는 담쟁이넝쿨,

거기에 따뜻한 커피믹스까지 더하니 세상사 부러울 게 없다.






보국문을 들어서자 다시 흐드러진 단풍 세상

도저히 차분할 수 없는 붉은 색이 주는 흥분의 대잔치

단풍숲이 쭉 이어지고 내내 단풍이지만 색깔이 조금 더 다르면 또 다시 흥분의 도가니,,,

혼자서 완전히 신이 났다.





산성위에 떨어진 낙엽도 새로운 그림을 선사한다.

아저씨 한 분이 선홍빛 단풍을 담고 계신다.

나도 한 컷 담고 싶어 기다리니 제일 예쁜 단풍이라며 사진을 찍어 주신다.

바쁘다며 본인 사진은 마다하고 부리나케 뛰다시피 가는 아저씨,,

칠십은 넘어 보이는데 발걸음은 날다람쥐다.

내 소원이 칠십까지 산에 다니는 건데 무릎 유지 비결을 물어 봐야 되는데,,,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산악회 회원들이 점심 먹으며 떠드는 소린가 했더니 대동문 앞에서 아저씨 두 분이 열을 내어 싸우고 있고 아저씨 세 분은 말리고 있고.

주변에서 쉬는 분들이 많아 구경꾼들도 많고.

오십 대로 보이는 작달막한 아저씨와 키가 큰 70대 정도 아저씨.

70대 아저씨는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며 열을 올리는데 말씀인즉슨 대동문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점심을 먹고 있어서 나름 조심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젊은 놈이 욕을 하더라는 말씀.

그 젊은 놈(?)도 양보하지 않고 한 판 붙겠다며 넓은 곳으로 나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경꾼으로 있으니 멈추기도 애매한 상황인 셈.


무척 흥분한 상태고 말리는 아저씨들 말도 듣지 않고 젊은 아저씨도 그만두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로 70대 아저씨와 말리는 사람들이 밀려 온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나서서 싸움을 말린다.

70대 아저씨 팔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참으세요. 참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했는데 헉,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한다.

"아까 그 아주머니네. 내가 바빠서 사진도 안 찍고 간다 했지요? 그래서 사진만 찍고 갈려고 했는데 저 새끼가 욕을,,,,"

목소리가 워낙 크니 갑자기 민망해지는 상황.

"참으세요 아저씨,,, 저 사람 말로 해봤자 안되겠어요."

몇 번 더 이야기하자 아저씨 목소리가 조금씩 가라앉고 주위를 둘러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떠난다.

나도 대동문을 벗어난다.


뭇 사람의 헤프닝쯤이야 단풍 속에서 금방 사라진다.

보통 계곡 주변에 단풍이 많은데 북한산은 계곡이 아닌데도 숲을 이룬다.

많은 산을 다닌 건 아니지만 단풍군락이 이렇게 넓게 분포한 것은 내가 본 곳 중 최고다.

대동문을 지나서도 단풍숲은 내내 이어지고 바람이 불면 단풍잎도 날리니 나는 분위기에 젖은 가을사람이 된다.






한바탕 단풍숲의 화려함을 지나니 산성과 함께 걷는 산성길.

산성길 주위에는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주를 이뤄 갈색군.

가을의 전령사 억새가 나타나더니 동장대가 나타난다.

2층 망루엔 올라갈 수 없어 사진만 한 장 찍는데 올려다보이는 곡선의 처마가 아름답다.
















단풍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물들었을 때쯤 용암사지에 닿는다.

단아한 한 채의 절이 있었을 자리엔 풀만 무성하고 위에 자리잡은 대피소엔 한 분이 라면을 끓이고 계신다.

겨울엔 제대로 역할을 할 듯한데 산꾼들은 대피소 바깥 의자에서 북한산 가을을 즐기고 있다.





보국문과 비슷한 루가 없는 암문인 용암문을 지난다.

외국인 한 사람이 안내문을 읽곤 왔다 갔다 길을 찾더니 백운대 방향으로 향한다. 

자연의 미가 훨씬 풍기는 길이다.

백운대를 오르는 마지막 단풍길,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울창한 붉은 숲이다.

노적봉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알아보지 않고 지나쳐 온 게 안타깝다.

조금 더 알아 보고 올라갈 수 있다면 다음 기회로 미룬다. 













백운봉암문, 이제부터 본격 바윗길이다.

산행 기초 지식도 없는 겨울 어느 날, 아이젠도 없이 오르다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뭇가지를 감싼 얼음은 투명한 빛을 발하고 바윗길은 온통 얼어 미끄럽기 그지 없고 백운대 태극기도 꽁꽁 얼어 붙었는데 쭉쭉 미끄러지는 바윗길에 쇠난간 부여잡고 얼마나 매달렸던지,,,,

참 무모했던 순간이었다.

추억을 되새기며 기분좋게 오르는 길, 북한산 최고의 명당에서 주변을 살핀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을 두고 떠나는 김상헌의 피끓는 심정이 녹아 있는 삼각산의 정상에 앉아 지금은 그저 즐거운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 본다.

인수봉에선 오늘도 릿지 산행꾼의 묘기가 이어지고 만경대 주변엔 가을빛이 저물어 간다.










이젠 인증샷은 무조건 줄서기다.

뒤에 선 아저씨에게 폰을 넘기고 부탁을 했더니 너무 열심히 찍어 주시는데,,,헐,,,모조리 얼굴만 클로즈업 되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줄을 서서 정상 사진을 찍고 그대로 찍어 달라 부탁했다.

사진 찍고 내려오는데 네모로 막아 놓은 나무 막대 안 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이 보인다.

사람이 많아 일단 사진만 찍었는데 글씨는 마모되었지만 기미년 이월 십일 기미독립선언,,,이라는 글씨는 선명하다.




멀고 가까운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정기를 얻고 결기를 세우고 하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을 터, 뜻을 품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졌을테다.

백운대는 오늘도 묵묵히 이 자리를 지키며 서울 수도의 상징, 대한민국의 심장으로 영원히 자리할 것이다.

괜히 의기충천,,, 백운대에서의 여유를 뒤로 하고 하산길로 접어 든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한다.

서울환종주길과 연결하기 위해서다.

여긴 하산길도 온통 단풍숲이다. 이번에 걸은 하산길에서 가장 화려한 길이다.

딱 하루 단풍만 즐기려면 오늘 코스로 걸으면 될 것 같다.

바위들이 많아 다소 거칠 긴 했지만 제대로의 산행길이다.






산장에서 하산 막걸리라도 한 잔 했으면 끝내줄텐데,,,

백운대로 올라가는 코스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산장 마당 탁자에는 하산의 홀가분함을 이야기로, 먹거리로 풀어 내고 있다





홀산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걷는 내내 인수봉과 함께 한다.

오리 모양의 인수봉이 모습을 나타날 때 쯤 아담한 인수암이 모습을 나타낸다.

낙엽이 흩날리는 인수암 뒷마당엔 비구니스님의 무예연습이 한창이다.














영봉 갈림길에서 잠깐 망설인다.

환종주를 할려면 육모정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우이령 입구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지도상엔 육모정에서 도봉산으로 바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지도엔 산행로가 표시되지 않았다.

0.5km에 있는 영봉을 가고 싶은데 조금 늦은 시간이다.

할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한다.







단풍색이 옅어질 때 쯤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도착한다.

하산할 때 발이 아파 절둑거리는 여자외국인에게 내려가면 셔틀버스가 있다고 친절히 알려 주던 소리를 귀동냥으로 들은 터라 나도 그걸 이용해야지 했는데 버스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일단 걸어 내려간다.

한참을 걸어 가도 표지판도 버스도 보이지 않고 어두워져 버렸다.

1시간을 넘게 포장길을 걸은 터라 무릎의 통증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버스 탈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자기들은 걸어 다녔단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렇게 깜깜해질 때까지 걸어 내려간 곳이 소귀천계곡입구인가 보다.

동생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무릎은 평지를 걸어도 아프니 치료받고 당분간 산행은 쉬어야겠다.

마음은 매일 산에 들고 싶은데 무릎 때문에 낭패다.

어떻게든 살살 달래서 오래오래 산에 들기를 소원, 소망, 기원,,,해 본다.

최고의 시간을 선물해 준 북한산 종주길, 언제 어느 시간에 다시 찾을 지 모르겠지만 이번 산행의 즐거움을 다시 만나게 될까? 

산을 좋아해서 산을 찾는 나에게 오늘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