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경남,부산

(등산 334봉) 울산 울주 육각정봉, (등산 335봉) 신불산 서봉

2021년 9월 11일 토요일

 

 

신불산 거북바위에서 남도부의 절규를 엿보다

 

 

 

 

등산코스 : 베네치아팬션 - 육각정봉(갈산고지, 태봉산, 팔각정봉) - 파래소폭포 - 거북바위 - 두꺼비바위 - 신불산 서봉 - 간월재 - 죽림굴 - 신불산자연휴양림상단 - 자연휴양림 하단 - 베네치아펜션

 

 

하준수를 알게 된 건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에서다.

진주중학교에서 일본 교사를 폭행해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유학했는데 무술이 뛰어나고 지도력이 있어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학생이었다. 징용을 피해 괘관산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지리산으로 옮기고 소문듣고 찾아온 청년들을 모아 '널리 나라의 빛이 되자'는 보광당을 조직해 경찰을 습격하는 등 일제 투항 활동을 한다. 「지리산」에서는 보광당의 활동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극중 하준규(하준수의 소설 이름)는 작가 이병주와는 진주중학교 친구였단다.

 

지리산을 읽을 당시엔 하준수에 대해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는데 빨치산에 대해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그의 위치가 대단했음을 알게 되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한 곳이 신불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가 활동한 곳을 뒤늦게나마 찾아 나서게 되었다. 

 

신불산 남도부 사령부 지휘소 갈산고지, 995 격전지, 취사장, 야전병원...

빨치산의 생활이야 남쪽 그 어디나 비슷했을 터,,,,

「태백산맥」에서의 빨치산 상황이 신불산에도 그대로 적용됐을 터,,,그래도 사자평 넓은 평원에서 소도 키웠다니까 잠깐이나마 평온한 시간이 있었을까? 

 

오늘 갈려는 육각정봉은 681 갈산고지인지 인근 봉우리인지 헷갈린다. 육각정봉은 722m로 표기되어 갈산고지와 그 높이가 달라 따로 갈산고지가 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숙제로 남겨 둔다. 3층 전망대가 있는 육각정봉은 태봉산으로 불렸단다.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가는 출발점은 베네치아펜션 내 인공폭포옆에서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내내 숲길이다. 아직 여름의 습기가 남아 있어 모기와 날파리가 성가시게 달라 붙는다. 빼곡한 숲이고 제법 경사있는 오르막이라 천천히 숨을 고르며 땅만 보고 걷는다. 잠깐 숲 사이로 빛이 들어온 구간은 백련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숲 구간.

그러다 툭, 3층 세멘트 육각정이 있는 봉우리다. 

공비 토벌을 기념해서 세웠다는데 다른 안내판같은 건 볼 수가 없고 육각정위에는 풀들이 자라 지붕을 어지럽히고 있다. 벌레소리조차 숨죽인 전망대 3층은 바람만이 지나고 사방의 영축산, 신불산, 천황산 등 천 미터 급 산들의 중심에 있는 듯하다. 가까이 식수원이었던 파래소가 있고 각 봉우리와 연락도 될 것 같아 사령부로는 적격이었을 듯 하다.  

태봉산, 육각정봉, 728 팔각정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가운데가 만길능선
가야할 신불산 서봉

 

전망대에서 파래소폭포 방향으로 향한다. 신불산휴양림, 파래소폭포와 연결되어 있어 길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쾌적하다. 

고장난 모노레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길을 따라 파래소폭포로 향한다.

깔때기무당버섯

 

빨치산의 취사장 역할을 했다는데 굳이 파래소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신불산 구석구석의 계곡물은 그들의 식수 역할을 톡톡히 했을 듯하며 갈산고지에 있던 사람들의 식수원은 이곳 파래소였을 것이다.

파래소폭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숲이 우거져 폭포위 계곡의 모습이 가려져 아쉽지만 폭포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데크를 내려가면 파래소폭포. 몇 명의 사람들이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폭포 앞으로 난 계단을 따르다 휴양림가는 상단 길에서 신불산서릉으로 가는 길을 향한다. 내내 숲속 길로 가다 임도 공사길과 만나고 다시 숲속 길로 접어 든다.

 

유독 버섯이 많은 길이다. 전망이 없는 길이니 눈은 땅으로만 향하고 여러 버섯 중 유독 큰 버섯이 눈길을 더 끈다.

무당버섯
무당버섯
접시껄껄이그물버섯

 

만길능선 넘어 영축라인이 눈에 들어오면 내내 시원한 전망이다.

그러다 영축산을 향한 호기스린 거북바위를 만난다.

하준수가 서서 신불산 구석구석 부대원들의 동태와 토벌대들의 상황을 살폈을 것 같은 곳.

식량은 바닥나고 토벌대는 밀려들고 부하들과 자신은 죽음밖에 택할 수 없는데, 지휘관으로서의 고충은 어떠했을까? 거북바위위에서 그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육각정봉이 저 아래 훤한데 수기나 연기로 신호를 하면서 작전을 짰을 것이다.

 

거북바위 옆에 세워져 있었던 공비지휘소 안내석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안타까운 것도 역사고 아픈 것도 역사인데,,,뿌리깊은 진영 논리의 잣대가 안타깝다.

층꽃나무
거북바위 코 앞이 갈산고지 삼층전망대
흰자주쓴풀

 

간월산, 간월재,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축의 아름다운 라인을 감상하며

능선에 핀 9월의 꽃들을 감상하며

동계대토벌때의 안타까운 빨치산들의 삶과 양쪽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주민들의 삶을 떠올리며

역사의 아픈 현장을 오롯이 지켜낸 신불산서릉을 걷는다.

말징버섯
까실쑥부쟁이

 

육각정 봉우리 너머로 향로산, 그 뒤로 천황산일 것이다.

1000m급 깊은 산 속에서 쫓고 쫓기는 사람들의 삶

그래도 숲이 짙은 이맘때의 시기는 먹을 것도 있고 추위도 없으니 지내기는 괜찮았을터,,,

 

서봉이 가까워지는 능선은 암릉이다. 암릉 사이사이 가을꽃들이 주위를 밝히면 바위 사이로 오똑하니 머리를 곧추세운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난다.

산오이풀
까실쑥부쟁이
구절초

 

머리는 영축산을 향하고 오른쪽 귀부분은 육각정봉 방향이다.

금방이라도 엉금엉금 걸음을 내디딜 것 같은 힘찬 두꺼비다.

 

서봉엔 따로 정상석은 없다. 

평평한 바위위에 돌탑이 세워져 있고 세찬 바람이 지나간다.

서봉 아래로 붉은 마가목 열매가 지천이다.

한 무리의 등산객이 마가목 열매를 채취한다. 왜 따냐고 물으니 술 담는다고,,,무릎에 좋단다. 이럴 땐 모르는 게 약이다.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 날은 서너명이었는데 다른 날 또 있을테지.

간월산, 간월재, 신불산, 신불재, 영축산, 함박등, 죽바우등으로 이어지는 영알능선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다.

마가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앉아 쉰다. 간월재의 억새 능선이 장관이다. 

영축산 단조성을 보고 갈려는 계획을 바꿔 죽림굴로 하산하기로 한다.

죽림굴은 빨치산의 야전병원터.

신불산을 향해 걷는 길에 제철 억새가 바람에 흐느낀다.

 

간월재로 향하는 암릉길

시원한 전망 간월재와 간월산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절경이다.

신불, 간월 공룡능선을 보며 겨울 오기 전에 찾아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간월재로 향하는 나무 계단끝에서 자전거 매고 오는 아저씨를 만났다. 

간월재부터 매고 오는 중이란다. 가는 데까지 매고 가 본다고, 안 되면 다시 내려 오겠다고,,,,하여튼 박수를 보낸다.

 

억새가 잘 관리되고 있다. 

다른 산의 억새 군락지에는 잡목들이 함께 자라 순수 억새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여긴 관리가 잘 된 듯 하다.

그냥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나름 관리를 해서 인공적으로라도 정리를 해야 하는지,,,,잘 모르겠다.

하여튼 부산 승학산도, 창녕 화왕산도, 양산 천성산도,,,,과거의 모습은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간월재휴게소의 컵라면 맛이 일품이라 여길 찾는 사람은 컵라면은 꼭 먹고 가는 듯 하다.

오늘도 데크 곳곳에서 청춘 남녀들의 컵라면 먹는 풍경이 연출된다.

각자 나름의 가을을 즐기고 있다. 

꿩의 비름
간월산 사면 억새
죽림굴로 향하는 임도에서 본 억새

 

죽림굴로 향하는 길은 잘 닦여진 임도다. 죽림굴도 1986년경 임도 개설공사하며 발견했단다.

임도 가장자리로는 햇볕을 잘 받고 자라는 가을꽃이 지천이다. 하얀 궁궁이가 대세고 간간히 산오이풀, 꿩의 비름이 자리를 잡았다. 

산 아래 왕방골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왕방골은 빨치산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은신처가 되었을 터다. 

미리 단풍든 사람주나무의 붉은 색에 시선이 꽃히면 죽림굴 안내석이 보인다.

궁궁이
오이풀
꿩의 비름
궁궁이
사람주나무

 

임도 바로 옆에 있어 쉽게 갈 수 있다. 안내판에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은둔한 곳으로 천주교 성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도는 천주교 순례길이다. 어느 곳에도 빨치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 보니 앞쪽 굴에도 신도들이 가져다 놓은 성모마리아상이 있고 더 안에 더 큰 굴이 있는데 너무 깜깜해 넓이를 짐작할 수 없다. 사람이 150명 정도 쉴 수 있다니 그 넓이가 짐작되나 너무 깜깜해 살짝 겁이 나 들어가 보진 못했다.

군인토벌대에게 쫓기다 상처입은 빨치산들의 야전병원터로는 정말 천혜의 장소다. 

 

왕방골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봄 여름 꽃을 피웠던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있다.

가을이 익어 한 해를 갈무리하고 있다. 

눈에 띄는 나무들을 스치듯 지나며 도착한 신불산자연휴양림상단

마당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태봉산 육각정, 서서히 해가 넘어가고 있다.

층층나무
누리장나무
서양등골나물
낭아초
참취
비목나무

 

임도길이라 어둠이 내려도 걷는데 별 무리는 없다.

최대한 눈에 불을 켜고 걸어 내려온다.

자연휴양림하단에 도착할 때엔 완전히 어둠이 내렸지만 주변의 불빛으로 후레시는 켜지 않는다.

 

이 골짝 저 골짝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생존의 현장에서

이쪽이던 저쪽이던 다른 이념으로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의 피맺힌 절규가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자기 목숨보다 부하들의 목숨까지 지켜내야 하는 지휘관의 고충은 더 컸을 터...

어떤 이는 자살하고 어떤 이는 사살되고 어떤 이는 체포되고...

살아난 사람들의 피맺힌 증언으로 역사의 일부가 그나마 남아 있어

잠시나마 시대를 잘못 만나 죽어간 그들의 영령에 고개숙일 시간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남도부는 감자를 좋아했다니 다음 신불산행때는 감자라도 삶아 가서 막걸리 한 잔 올리며 넋이라도 위로하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