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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북

(등산 336봉) 전북 고창 선운산 천마봉

2021년 9월 16일 토요일

 

 

선홍색 꽃무릇보다 장쾌한 천상봉-쥐바위 능선에 혼을 뺏기다 

 

 

 

 

 

등산코스 : 선운사 주차장 - 선운사 - 다솔암 - 다솔암내원궁 - 용문굴 - 천마봉 - 천상봉 - 다솔암 - 선운사 주차장

 

김해에도 시내 몇몇 곳에 꽃무릇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갑자기 꽃무릇의 성지로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금요일은 항시 늦게 자는 터라 새벽에 출발하지 못했고 운전 중 잠이 쏟아져 중간 중간 잠을 보충하며 가다보니 무려 5시간이 걸려, 선운사에 도착했을 땐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곳까지만 가 보기로 하고 한여름 선운사를 찾았을 때의 기억을 안고 선운사로 향한다.

 

꽃무릇 규모가 대단하다.

다른 꽃은 범접하지 못하는 오롯한 꽃무릇 대공원이다.

붉디 붉은 순수 선홍빛이다.

여유로운 사람들은 천천히 걸으며 꽃무릇 속을 걷고 사진을 찍고 웃음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은 바빠 여유롭게 꽃무릇을 즐기진 못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셧터를 누른다. 

구석구석 누비지 못하고 산행길 위주에서 본 모습만 찍는대도 꽃무릇 때문에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선홍색 담요를 깐 초록의 나무는 그야말로 생기로 넘친다.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꽃무릇은 여기서도 끝이 없이 이어진다. 

냇가에 핀 꽃무릇은 흘러가는 물에 비쳐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붉은 기운은 마음을 들뜨이게 할 터인데 선운사 스님들의 마음은 온유할까?

 

선운사에 발을 들였으나 입구에 서서 그야말로 눈으로만 훔친다. 

예전에 사진 찍었던 곳이 어딜까? 추억찾기~

배롱나무에 아직까지 달려있는 늦은 꽃들이 고맙다.

 

선운사 담을 끼고 산길로 접어 든다.

햇볕이 적은 울창한 숲 아래에도 꽃무릇이 피었다.

초록이 대세인 숲에 붉은 악세사리로 분위기를 밝힌다.

 

넓은 길을 버리고 나무다리를 건너 숲 속 산길을 따른다.

야자매트가 깔린 길은 정갈하다. 

제법 깊어진 숲인데도 꽃무릇은 계속 이어진다.

심은건가? 자생인가? 이런 숲 속까지 피었다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걷는 길이 내내 즐겁다.

 

비슷한 길이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같다.

그러다 살짝 달라지는 모습. 선운산 미륵바우다.

큰 바위아래 사람 얼굴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미륵바우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웃는 듯 무심한 듯 표정의 얼굴 형상이니 옛 사람들은 기도도 올리고 이야기도 만들어 냈을 터,,,

사람들의 눈병을 낫게 했다는 미륵과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설화가 전해 온다.

 

미륵바우 앞으로 난 나무다리를 건너면 진흥굴이다.

큰 바위에 동그마니 잘 다듬어진 굴인데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벽은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유문암질 응회암이라는데 비교적 쉽게 떨어져 굴 파기도 쉬웠을 것 같다. 

내부 벽은 시꺼멓게 되어 있어 사람이 머무르며 연기를 피웠을까 짐작을 해 본다.

바로 옆 장사송의 위엄이 엄청나다. 크기도 크지만 나무에서 풍기는 기가 엄청나다. 옹골찬 장군의 품새다. 

 

도솔암으로 들어선다. 암자앞 찻집이 조용하다. 꽃무릇을 즐기는 사람들은 꽃에 취해 여기까진 오지 않으니 여긴 적막하기까지 하다.

도솔암 입구에서 또 목만 내밀어 전경만 살피곤 다시 길을 걷는다.

금방 나한전에 도착한다. 

나한전 왼편에 네팔에서 본 마니차가 있다. 티벳 불교 영향일까?

오른쪽으로 난 도솔암내원궁으로 간다. 내 기억엔 여기가 도솔암이었는데,,,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내원궁 앞 소나무 줄기부터 살핀다.

예전에 왔을 때 법당앞까지 가지가 축 처져 있었다. 부처님께 절하는 소나무라고 소원을 빌면 잘 들어준다고 법당앞에 서 있던 보살이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처져 있던 가지는 없어진 것 같다.  

이것 또한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뭔가 하나 정확한 게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니,,,

산신각까지 살피곤 다시 돌아 내려온다. 담 너머로 우뚝 선 바위가 장관이다.

 

다시 나한전을 지나니 거대한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보살 한 분이 마애불 앞에 시주할 물건들을 판매하고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부처님 머리 위에 난 구멍의 이유를 물으니 예전에 부처님의 집인 동불암 누각의 기둥을 꽂는 자리였는데 떨어졌단다.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 든다.

산길엔 큰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양파 껍질의 응회암이라 아랫쪽이 떨어져 큰 바위 아래는 동굴같은 빈 공간이 생겨 있다.

비를 피하고 쉴 수는 있으나 바위가 단단하지 않아 위태해 보인다.

 

다시 만난 거대 암석

이제 아예 커다란 구멍이 생긴 용문굴이다.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지만 자세히 보니 구석구석에 구멍들이 나 있다. 

용문굴 기둥위에 올려진 바위가 너무 커서 자칫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용문굴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와 조화가 아름답다.

 

용문굴을 지나 용문굴 위 바위로 올라선다.

바로 눈 앞에 또 거대한 바위군이다. 뒤를 돌아 보면 숲 위로 우뚝 솟은 직벽의 힘찬 바위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문굴 위는 큰 바위가 걸쳐져 있는데 바위 위에 나무가 나 있어 건너가 보지는 못 했다. 

시간이 있으면 나무 사이를 지나 거대한 바위군에 직접 가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후퇴한다.

 

아래에서 보이던 직벽 바위를 만난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바위, 응회암과 유문암 중 단단한 유문암이란다. 단단하고 치밀하여 풍화에 강해 잘게 부서지기 보다는 갈라진 틈으로 쪼개지는 특성이 있어 직선 절벽 형태의 바위 모양을 가진단다.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로 지정될 만큼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부드러운 화산암류 응회암과 유문암이 함께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해 지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낙조대는 부드러운 바위다. 

낙조대

 

낙조대를 지나면 고도가 없는 바윗길이다.

오른쪽으로 거대한 직벽 바위가 있는 천상봉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가파른 은빛 철계단이 아스라히 보인다.

더 멀리 깎아지른 직벽 바위가 또 서 있다. 두 개의 바위가 도솔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풍겨 오는 힘도 엄청나다.

왼쪽으론 용문굴 위에서 본 바위들과 마애불, 도솔암이 눈 아래다.

그 뒤로 이어지는 봉우리들.

예전엔 선운산 정상이라고 갔다 왔는데 걸었던 길도 정상 모습도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으니,,,동백꽃 후두둑 떨어지는 날 오던지, 동박새 희롱하는 절정의 동백꽃 시즌에 오던지,,,,숙제가 남은 산, 다시 기대 되는 산이다.  

 

아래에서 보면 직벽 바위이나 천마봉 정상은 평평한 마당바위다. 도솔계곡을 사이에 두고 빙 두른 능선이 그야말로 장쾌하다. 웬만한 높이의 산에선 느낄 수 없는 옹골찬 기운이다. 눈으로 등로를 걸어 보고 다음을 기약한다.

소리내며 지나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풍경을 즐긴다.

일찍 와서 충분히 쉬고 즐기고 싶은 장소다.   

 

시간이 애매하다. 일단 은회색 철계단은 올라 보기로 한다. 낙조대의 바위는 세 개의 봉우리로 보이고 가는 길에 핀 층꽃나무의 보라색도 유난히 맑다. 

철계단은 은빛을 발하며 아찔하게 놓여 있다.

 

배맨바위까지 가 보려고 걷다 다시 돌아선다. 

기약하고 가는 산이니 미련없이 돌아서자. 

천상봉 철계단을 내려와 다시 천마봉 방향으로 가다 다솔암으로 내려가는 철계단으로 내려간다.

다솔암 마애불, 주변의 바위군, 멀리 쥐바위까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 본다.

정말 작지만 옹골참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다시 만나는 꽃무릇 환한 세상

천마봉 정상에서와는 다른 기쁨이다. 조금 가볍지만 더 밝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찻집도 문을 닫았다.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침잠하는 분위기가 고즈넉한 산사와 잘 맞다.

 

자생? 인공?

바위 위에까지 꽃무릇 세상을 보곤 자생에 무게를 둬 본다.

자연의 위대함에 기대고 싶은걸까?

올라갈 때 걸었던 선운천 반대길로 내려간다. 

이미 컴컴해져버린 길이지만 스며드는 빛에 의해 차밭을 확인한다.

주차장 주변의 숙소 불들로 주변이 밝긴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말 저녁이 이리 한산함이,,,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꽃무릇에 취한 날

오랜 바램, 오랜 기다림

갈증같은 그리움 해갈

여유롭지 못한 길이었지만

충분히 만족한다.

새로운 숙제도 남겨 놓았으니

숙제 핑계삼아 올 일이 두 번은 더 있어야 할 터

고마운 선운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