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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북

(등산 183봉) 전북 부안 내변산 쌍선봉(459.1m)

♥ 때 : 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 위치 : 전북 부안군 
♥ 코스 : 남여치 ~ 월명암 ~ 직소폭포전망대 ~ 월명암 ~ 남여치
♥ 시간 : 쉬엄쉬엄 4시간
겨울답지않게 포근한 날이다.
남여치에 도착하니 승용차 3~4대만 있고 한적하다.
주차장에서 바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편안한 오름길이다. 가슴저린 그리운 이를 안고 올랐을 조선시대 매창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그 길을 오른다.
간간히 들리는 새 소리 외에는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우뚝우뚝 바위가 솟은 것도 아니고 주변 풍광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우리 뒷산같다.
안부에 도착하니 쌍선봉 오르는 길이 있다. 그냥 지나치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쌍선봉으로 향한다. 특별할 것 없는 봉우리에 헬기장 판석만 가득하다. 잡목이 있어 조망권도 별로 없다. 다시 다른 쌍둥이 봉우리로 간다. 앞 봉우리와 다르게 툭 트인 전망,,,,저 멀리 부안호가 한 눈에 쑥 들어온다. 바다도 보인다. 사방이 훤하다. 표지석 하나 없는 게 약간 아쉬움..
쌍선봉은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쌍선봉을 내려 오면 이제부턴 오르막없는 평지같은 길로 월명암을 향한다. 월명암엔 사람 그림자 하나 없고 삽살개만 객을 반긴다. 풍수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이 따뜻한 자리는 분명 명당일 것이다. 뒷산이 포근히 감싸고 앞으론 관음봉 능선을 조망하는 기막힌 위치다. 불심은 없지만 대웅전에 들어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삽살개의 배웅을 받으며 직소폭포를 향한다. 이 길은 바위길인데 경사가 심하다. 앞으로 보이는 관음봉 능선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망바위에서 간단한 빵으로 요기를 하며 직소폭포를 포기한다. 다시 올라올 일이 꿈만 같아서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선다. 월명암 코스는 따뜻하고 편안하다.
하산하니 4시가 아직 되지 않았다. 해넘이까지 시간이 너무 많아 쌍선봉에서 내려다 본 새만금방조제로 향한다. 길은 군산까지 연결되어 있고 넓이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역사적인 배경지식이 짧아 "와""와" 감탄사만 연발하곤 해넘이를 보러 채석강으로 향한다. 어림짐작으로 차를 몰아 간 곳이 수성당. 징 소리가 들린다. 굿당이다. 두 팀이 굿을 하고 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라 고기잡이 나간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으리라. 칠산 바다를 지킨다는 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있고 이 전설에 깃대어 살아 온 사람들의 삶이 이 수성당에 고스란히 남은 것 같다. 월명암, 쌍선봉, 수성당,,,편안하면서도 애잔한 변산 나들이였다.

♥ 역사

 * 수성당 :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마을에 있는 신당.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58호.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으로 서해를 다스리던 여해신(개양할머니)과 그의 딸 8자매를 모신 신당. 최초 신당은 없어지고 지금의 것은 1972년에 신축. 여해신(개양할머니)은 8자매를 낳아 전국의 각 도에 하나씩 시집을 보내고 막내딸만을 데리고 살면서 이 곳 서해에서 깊이를 재고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 매년 정월 초나흗날 제사를 지내 풍어와 어부들의 무사고를 빈단다.

 * 월명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691년(신문왕 11) 고승 부설(浮雪)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   전국에서 몇 안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한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太古寺), 백암산 운문암(雲門庵)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  (靈地)로 손꼽히는 곳이며, 봉래선원(鳳萊禪院)이 있어서 근대의 고승인 행암(行庵)·용성(龍城)·고암(古庵)·해안(海眼)·소공(簫空) 등이 수도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부속 암자로는 쌍선봉 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묘적암(妙寂庵)이 있다. 절의 앞쪽으로는 의상봉과 관음봉 등의 암봉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고, 법왕봉(法王峰)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 광경이 빼어나다. 낙조대의 서해낙조... 변산8경의 하나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가 가히 일품이라고 한다.

 * 월명암 전설, 부설전

월명은 오빠 등운과 함께 발심하여 수도하고 있을 때 월명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부목이 정을 품고 접근하였다. 월명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오빠 등운에게 의논하였다. 부목이 그렇게 소원한다면 한 번쯤 허락해도 좋다고 했다. 월명은 부목에게 자기 몸을 주어 그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등운이 월명에게 소감을 묻자 월명은 "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얼마 뒤 부목이 다시 요구하자, 월명은 오빠에게 의견을 물었다. 등운은 한 번은 더 들어 주어도 무방할 것이라 하였다. 두 번째의 소감을 물으니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젓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뒤 부목은 다시 요구했다. 이번에도 오빠에게 승낙을 받고 자기 몸을 허락하였다. 세 번째로 소감을 물으니 "굳은 땅에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등운은 월명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깨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결단을 요구했다. 즉 "깨치는 길은 오직 부목을 죽이는 것 뿐이다"고 한 것이다. 애욕과 견성의 두 갈래 길에서 월명은 어는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부목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를 무렵, 월명은 부목에게 숯불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부목은 무심코 허리를 굽혀 아궁이 안에 반신을 들여 밀고 숯불을 고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월명이 그의 몸을 힘껏 밀어 넣었다. 그가 나오려고 하자 등운이 발로 차서 밀어 놓었다. 부목은 그렇게 죽고 말았다.

등운은 "이제 우리는 살인자다.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법이니 우리가 지옥으로 가지 않으려면 깨치는 것 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의 두 길밖에 없다."

두 사람은 그 날부터 용맹정진하여 드디어 이레 만에 깨달았다. 한편 불의의 화를 입어 저승으로 간 부목의 영혼은 염라대왕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여 등운과 월명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염라대왕은 차사를 보내어 월명과 등운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입선중이어서 못 잡아갔다. 등운은 부목을 죽인 전후의 사연을 자세히 써서 염라대왕에게 보내며 "모래로 밧줄을 꼬아서 해를 묶어오는 재주가 없다면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르니 염라대왕은 그의 구도심에 감동하여 용서하고 잡아가지 않았다. 그 후 두 남매는 성불하였다는 이야기이다.

 * 매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