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02봉 형제봉) 지리산종주 2박 3일, 연하천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 지리산 종주를 등산 실적에 한 건도 올리지 못함이 너무 아쉬워 가고 싶었으나 가 보지 못한 형제봉을 202봉 등산 실적으로 넣었다.>>

2017년 8월 2일부터 4일까지 지리산 종주 둘째 날

오늘은 연하천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13.3km를 걸어가야 한다.

아침에 일어 났더니 안개가 활짝 개이고 가을처럼 청명한 하늘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아침밥을 먹고 떠나고 몇몇 여유로운 사람들만 남았다. 깔끔하고 깨끗한 연하천대피소 인증샷을 날리고 아침밥을 짓는다. 밥은 두 끼 분량으로 국은 황태국,,,나머지 밑반찬,,,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옆 집 아저씨가 고기가 남는다며 수입쇠고기 한 팩을 준다. 이런 횡재,,,,

조선배님께서 혹시 모르니 둘째 날 고기는 살짝 구우라 했다. ㅋㅋㅋㅋ  이 아저씨들, 이 방법을 알았으면 우리한테 고기를 안 줬을지도,,,아저씨들은 반찬이 김치밖에 없다며 두 분이서 즐겁게 웃고 있다. 깻잎 김치를 조금 나눠 드리고 황태국과 아침밥을 먹고 그 사이 고기를 굽는다. 고기가 다 익을 때쯤 밥도 다 먹었고 남은 밥은 다 식어 있다. 식은 밥에 김자반을 넣고 조물조물 주물러 주먹밥을 만든다. 주먹밥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메뉴인데 순간적으로 생각났다. 근데 내가 생각해 놓고도 너무 기특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잔멸치를 볶아 왔으면,,,또 팁이 하나 생겼다. 어쨌던 약간 싱거운 주먹밥을 만들고 정리하고 출발할려니 10시가 다 되어 간다.

자,,,출발,,,

하늘이 쾌청하고 바람도 제법 불어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하늘이 드러나는 툭 트인 바위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쉬고 있던 분들이 우리가 오니 자리를 양보해 주시고 떠난다. 자리도 자리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너무 좋아 잠깐 쉬어 가기로 한다. 미숫가루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8월의 초록 잎사귀와 저 멀리 뭉게 구름이 한 폭의 그림이다. 아, 여기서 그대로 머물고 싶다.

바위를 돌아 내려 오니 손으로 씌어진 형제봉 안내판이 있다. 오,,,,,하동에서 가고자 했던 그 봉우리가 여기? 기대했던 것 보다 바위가 작아 아쉽기도 했지만 가고 싶어 하던 곳이기에 사진부터 찍었다.

그런데 그 곳을 돌아 내려오니 턱~~~정말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아, 이게 바로 형제봉이구나!

 머리를 들어 보니 봉우리는 높아 오를 수가 없고 그저 아득하다. 카메라에 담으려 몸을 아무리 움직여도 화면속에 다 들어 오지 않는다. 바위가 너무 커 그늘은 아예 어둡다. 바위 위엔 이름 모를 야생화도 피어 있고 생명력 강한 나무들도 자라고 있다. 바위 사이 골엔 바람이 모여 들어 거대한 선풍기다.

뒤돌아서 다시 형제봉을 담아 본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을 땐 점심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아침을 늦게 먹은터라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물이 애매했다. 벽소령대피소는 물을 뜨려면 100m나 되는 거리를 내려가야 된다. 순간 고민했지만 더운 여름 제일 중요한 건 물이기에 물을 뜨러 내려 갔다. 근데 예쁘장한 아가씨 혼자 즉석밥을 끓이고 있다. 혼자 종주한단다. 혼자 다 가져 다니니 어깨가 빠진다고,,,이해된다. 세석까지 간다니 우리보다 덜 걷지만 혼자라 조금 더 힘들지도 모른다. 어쨌던 100m나 오르내리며 물을 뜨고 간식으로 가져간 약과로 허기를 메운다. 대피소직원이 모포를 널고 털고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모습에 믿음이 간다. 대피소에서 저렇게 관리를 한단 말이지?

이젠 사진찍는 것도 놓친다. 선비샘이다. 덕평봉 인증샷은 놓친 셈이다. 신분 사회에서 노비의 한이 샘의 전설로 남았다. 전설이든 사실이든 그 분의 한을 풀어 드리고자 일부러 엎드려 물 한 바가지를 마셔 본다. 역시 지리산 물이다.

길은 점점 능선이다. 그 말은 전망이 트였단 말이다. 저 멀리 천왕봉과 오늘 가야 할 장터목대피소가 보인다. 까마득하지만 한 걸음의 위대함을 믿기에 겁나진 않는다.

바위 솟은 칠선봉도 지나고 바위와 야생화가 잘 어울리는 영신봉도 지났다. 세석평전, 아득한 90년대의 추억이 강렬한 곳, 바람불고 억새 휘날리고 삼도사물가락을 외우고 있었지,,,입으로 사물가락을 부르며 서로 맞춰보던 바위 위. 그 날의 그 바위는 보이지 않고 주변 모습도 달라 졌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세석평전은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하게 지났다. 기억의 또 하나 세석의 물, 세석대피소의 물맛을 잊을 수 없어 물이 있는데도 내려가 행복한 추억고 함께 물을 마시고 다시 걷는다.

저 멀리 촛대봉 위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빨강색이 강렬하고 구도가 나오는 것 같아 사진을 찍어 본다. 다가가 보니 체육관에서 데리고 온 아이들이 관장님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세석에서 자야 하는데 너무 일찍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란다. 대원사로 내려 간다는데 내일 걸을 길이 너무 멀어 나도 살짝 걱정이 된다. 어쨌던 저런 관장을 만난 아이들이 다행스럽고 관장의 철학이 존경스럽다.

연하봉이 보인다. 그 뒤로 천왕봉은 가려졌다. 연하봉은 구름이 오르내리며 재미있고도 신비한 모습들을 연출한다. 산에 올라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내 노력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전망이 좋으니 사진을 찍느라 자꾸 지체가 된다. 그러나 뭐 대수랴,,,오늘 중으로 들어가면 될 일...

지나가는 사람들 사진도 찍어 주고 너스레도 떨며 일행도 없이 혼자 가게 되었다. 연하봉에서 카메라 밧데리도 다 닳았다. 잠깐 고민하다 결국 다시 앉아 밧데리 갈고 혼자 경치를 열심히 찍는다. 오롯이 혼자 지리산에 앉은 느낌,,,다시 혼자 종주를 꿈꿔 본다.

야생화가 지천이다. 온갖 야생화가 어울려 지리산을 지킨다. 감사하다. 예쁜 야생화가 감사하고 적당히 올라오는 안개도 감사하고 이 곳에 올라오게 해 준 내 다리도 내 의지도 내 취미도 감사하다.

여유있게 장터목에 도착했으나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 아예 쉬고 오기로 한다. 자리 배정을 받고 발 뻗고 쉬어 본다. 연하천보다는 자리가 좁다. 그렇지만 혼자만의 자리는 충분하다. 1시간여 있다 내려가니 자리가 하나 있다. 마침 일몰이다. 운무가 춤을 춘다. 용트림, 바로 용트림이다. 빛과 구름의 열정적 랑데뷰,,,강렬하진 않지만 또 다른 일몰이고 지리산 장터목이라 더 의미있다.

저녁은 어제 얻은 쇠고기와 소주 한 잔을 곁들여 피로를 씻어 내고 밥과 미역국으로 저녁을 먹는다. 같은 테이블 서울 부부는 1박 2일 백무동 계곡으로 올라와 다시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 간단다. 1박2일이라 반찬 준비를 많이 했다. 김치도 얻어 먹고 맥주도 얻어 마셨다. 안개가 바람과 함께 몰려 와 냉기가 올라 온다. 방풍 쟈켓을 꺼내 입고 미역국에 맛있게 밥도 말아 먹고 남은 밥은 다시 주먹밥,,,,

내일 천왕봉 일출 보러 4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일찍 잠들기로 한다. 딱히 할 일도 없다. 밖은 춥고 안은 떠들 수가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