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9. 일요일
네팔 다녀온 후로 무릎이 심상치 않다. 산악회에서 치악산을 간다는데 약간 부담스럽다.
몸이 건질거려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주변을 검색하다 가까운 의령으로 가기로 한다.
자굴산, 한우산, 미타산은 다녀 왔고 한 번 가마 벼르던 벽화산으로 발길을 향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역사가 깊은 산이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축성했다는 벽화산성이 있고, 남명 조식 선생이 자주 올랐다는 기록도 있단다. 출발지 운곡마을은 중국 송대의 주자 후손이 살고, 중국시대 제갈량의 후손도 살고 있단다.
이런 역사를 가득 안은 벽화, '푸르고 빛나는' 산으로 오른다.
운곡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한다. 친구 집이 근처에 있어 눈대중으로 찾아 보았지만 보이진 않는다.
마을회관에서 조금 올라 가니 등산안내판이 서 있어 길 찾기는 아주 쉬운 편이다.
동네를 들어 서니 그야말로 가을의 한복판이다. 시골집 담장위의 대봉감나무엔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아이가 사라진 동네, 저 맛있는 홍시를 먹을 입도 없어졌다. 어르신이라도 보이면 따 드리고 싶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마을을 돌아 올라 가도 여전히 대봉감 천지다. 따서 팔아야 될 것 같은데 손이 없어서 그러나,,,,주렁주렁 달린 감이 탐스럽기 보다 안타까움이 더한다.
대봉감 단지를 지나도 임도는 계속된다. 별다른 특징 없는 정말 동네 뒷산 같은 분위기의 산,,,벽화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의문이 든다. 임도 가장자리엔 온통 칡덩쿨이 나무를 감싸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칡 아래 나무는 자취를 감출 것 같다. 그래도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은 훤하다. 상수리나무가 많아 도토리가 지천으로 뒹굴고 있다. 그 사이로 한 그루의 단풍 든 나무, 푸른 하늘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 나무 한 그루가 너무 고맙다.
지자체에서 벽화산성을 다시 재정비하는가 했는데 동문지 비석 하나만 보인다. 능선 부분 벽화산성은 벽화산성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저 어느 무덤 주춧돌같은 건가 싶게 흩어지고 삭아져 보는 내가 안타깝다. 곧 공동묘지단지(?)다. 봉분이 없는 것도 있고 파져 있는 것도 있고 비석도 쓰러진 것도 많다. 그나마 주변을 밝히는 꽃향유 덕에 을씨년스럽진 않다. 꽃향유가 지천이다. 밝고 빛나는 보라색이라 주위가 환하다. 벽화산에서 진정 빛나고 있는 건 '꽃향유'다.
잡목 우거진 한 봉우리를 넘으니 소나무 군락이다. 가을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깔끔하고 편안하다. 피톤치트 가득한 산봉우리에 벽화산 정상석이 있다. 온통 빙 둘러 나무가 우거져 있어 주변을 전혀 조망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앉아 있기가 애매해 바로 하산한다.
내리막과 만나는 길에 다시 임도가 시작된다. 포장되지 않은 길이라 걷기엔 편하다. 비로소 이 길에서 가을이 익어간다. 바람도 하늘도 나무도 잎도,,,,곳곳에 밤나무다. 이미 다 떨어졌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알밤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
벽화산,,,,어쨌던 일요일 오전을 가을과 함께 편안하게 걸었다. 화려하지도 감탄스럽지도 않아 오히려 오롯이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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