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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남,부산

(등산 64봉) 지리산 천왕봉(백무동코스)

2017년 11월 2, 3일 1박2일 백무동코스

* 백무동탐방안내센터 - 가내소폭포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하동바위 - 백무동원점회귀 

* 2012년 여름 당일 산행과 동일 코스로 두 번째 행


8월의 지리산 종주 경험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백선배랑 가을의 마지막 자락, 지리산을 찾았다.

네팔 트레킹 중에 대피소를 예약해야 해서 백선배가 예약을 했고 드뎌 50대 중년 여자의 1박2일 지리산 산행이 시작되었다. 여자 둘만 가는 거라 먹거리는 비교적 단출하다. 쌀2끼, 건조미역국1봉, 건조황태국1봉, 라면2개, 김치, 깻잎, 누룽지, 맥주1캔, 오이, 배 등이다. 삼겹살도 탐이 나고 막걸리도 당겼지만 코펠, 버너, 가스까지 배낭에 들어 있어 더 넣을 수도 없다.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해 8시에 창원에서 선배를 태워 중간에 살짝 헤맨 뒤 10시 30분경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 다시 한 번 짐 체크 하고 11시 20분경 세석을 향해 출발한다. 


오늘 목적지는 장터목대피소,,, 한신계곡, 세석을 지나 9.8km를 걸어야 한다. 탐방센터에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단풍들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고 있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단풍이 지리산의 단풍이고 좋아하는 선배와 함께 하는 산행이라 더 즐겁고 더 수다스럽고 더 행복해진다.

한신계곡의 화려한 단풍 속에서 '사진 찍어주기 놀이'를 즐기며 유유자적 산길을 오른다. 한신계곡쪽은 1km가 넘는 길이 별로 오르막없는 계곡길이라 편안하고 여유롭다. 




산으로 들어 갈수록 점점 늦가을의 풍경으로 접어 든다. 가내소폭포 주변에는 이젠 얼마남지 않은 단풍잎과 말라버린 잎들을 겨우 달고 있는 몇몇의 나무들이 조용히 서 있다. 스산한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 오고가내소폭포의 감청색 물도 시원하기 보다 싸한 차가움으로 밀려 온다.


오르는 길은 돌길의 연속, 속력이 나지 않는다. 결국 세석이 보이는 능선에 도착할 때쯤 해는 넘어가고 서산엔 조용한 놀이 진다. 장터목까지 가기는 늦은 시간, 세석에서 쉬기로 한다. 평일이라 세석에 자리가 많은 것을 확인하고 세석에서 쉬겠다 부탁하니 장터목과 연계는 안 된다 해서 다시 선배가 거금을 내어 담요4장을 빌리고 자리를 배치받는다. 대피소 안은 편백향이 그윽해 쾌적하고, 보일러가 돌아 가고 있어 따뜻했다. 칭따오맥주와 라면 2개로 세석에서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수다삼매경과 함께 잠에 취한다. 선배는 부산스런 2층 탐방객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데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새벽까지 꿈없는 잠을 잤다.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우린 게으른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일어나 '해를 보면 좋고 안 봐도 좋고' 하는 기분으로 세석을 나선다. 이미 해는 떠 있어 촛대봉의 일출 장관은 볼 수 없지만 날은 맑아 구름 한 점 볼 수 없다. 켜켜이 놓인 능선의 물결이 한 폭의 동양화다. 구름 한 점 없는 완연한 가을 하늘 덕분에 또 다른 가을 속에 들 수 있다. 연하봉, 일출봉, 제석봉,,,모든 봉우리에서의 전망은 내가 본 지리산 중 최고의 시야를 확보해 준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내가 본 중 가장 조용한 천왕봉 정상.  선배와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미안할 필요가 없는, 여유로운 사진 찍기 시간. 많은 사진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여태껏 눈치 봐가며 겨우 사진 한 장 찍고 와야 했던 그 동안의 섭섭함을 마음껏 풀고 싶은 심정에서일까?  정상석 앞에서 네 다섯장, 뒤에서 네 다섯장을 내리 찍고 전역하고 온 해병대 세 명의 사진도 코믹하고 멋지게 찍어 주고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 온다.



그런데 역시 지리산이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겸손을 필요로 하는 산.

갑자기 구름이 몰려 오더니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구름이 능선을 휘감으며 달려 오고 하늘은 금방 뿌얘지며 회색으로 돌변한다.   



부랴부랴 다소 잰 걸음으로 장터목에 도착하니 12시 정도, 이것저것 간식을 많이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쌀도 있겠다 시간도 여유가 있겠다 밥을 하기로 한다. 맵쌀, 찹쌀, 검은 쌀, 현미까지 섞인 쌀인데 현미가 설 익어 딱딱하게 씹힌다. 미역국 하나랑 북어국 하나를 넣어 살짝 끓이고 설 익은 밥을 말아서 먹는데 현미가 살짝 씹히곤 해도 금방 한 밥이라 먹을 만 하긴 하다.

장터목 대피소로 탐방객이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부분 비옷을 입고 있다.

'결국 다 보여주는구나, 그래 그래야 지리산이지.'

점심 해 먹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려 2시가 훌쩍 넘는다. 내려가는 시간을 대강 계산해도 6시 정도는 될 것 같다. 어두워질 것 같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방수 쟈켓만 꺼내 입고 장터목을 나선다.

살짝 살짝 내리는 안개비는 비라기 보다 스쳐 지나는 물방울 같다. 가끔 후두둑 빗방울을 뿌리긴 했지만 우의 없이 걸어도 무방하다. 돌길이라 조금 미끄러워 걷기에 조심스럽지만 자욱한 안개 속이라 가을비와 함께 절정의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길이 미끄럽고 경사도 있는 편이고 돌길이라 빨리 걸을수도 없고 다리에 힘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길 아래 떨어진 단풍의 향연과 함께 마음만은 행복하다. 서서히 해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 와도 둘이라 즐겁고 눈에 불을 켜고 걸으니 어스름도 어느덧 익숙해진다. 렌턴이 필요하다 싶을 즈음 백무동탐방센터가 쓰윽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지역분들의 수다로 왁자지껄한 정겨운 식당에 들어가 묵무침과 전을 안주로 지리산 막걸리를 마시며 1박2일의 산행을 마감한다. 아저씨들의 농에 장단을 맞추며 배추를 곁들인 묵무침과 돼지고기를 넣은 전맛에 탄복을 한다. 결국 손두부도 사고 배추도 2포기씩 사니 마음이 그득하다. 배추를 뽑아 오신 아저씨께서 덤으로 홍시를 주시는데 정말 꿀맛이다. 하산길 첫 번째집,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꼭 찾고 싶은 집이다. 


이번 산행의 의미는 자신감을 얻은 것.

이제 지리산은 편안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새롭게 다시 걷고 싶은 곳. 혼자도 올 수 있을 것 같은 곳, 그러나 친구와 찾으면 더 좋은 곳.

언제나 찾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이 되었다. 푸근하고 따뜻한 지리산의 품에서 편안한 안식을 찾는다. 그래서 지리산을 어머니의 품같다 하나 보다.

다음 지리는 누구와 함께 할 지, 설레임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