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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남,부산

(등산 257봉) 지리산 반야봉

2019년 5월 4일 토요일

 

반야봉 가는 길, 진달래와 놀다


▶ 등산코스: 성삼재 → 노고단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뱀사골계곡 → 반선주차장(21km)


몇 번의 지리산행이 있었지만 반야봉을 간 것 이번이 처음이다.

종주할 때는 힘들어서 삼도봉으로 바로 가게 되고 따로 반야봉을 찾을 기회가 없었는데 벚꽃산악회에서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5월인데도 성삼재 나무들은 이제 겨울을 벗어난 듯 겨우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삼한시대의 전적지로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성이 다른 세 사람의 장수를 보내 지켰다 하여 성삼재로 부른단다.

성삼재의 시원한 전망을 잠깐 즐기고 다소 황량한 노고단까지의 길을 힘차게 오른다. 



황량함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노고단 초입부터 진달래가 한창이다.

진달래는 전혀 염두에 둔 산행이 아니기에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노고단대피소의 마고할머니도 처음으로 상봉한다.

대피소는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요리만 잠깐 해 먹고 간 터라 마고할머니상이 있는 지도 몰랐다.

나보다 다소 큰 마고할머니의 인상이 참 인자하고 부드럽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이 마고할머니의 인상과 꼭 닮았다.


노고단까지는 진달래 군락이다. 그러고 보니 노고단에 오른 것도 한 번인가 밖에 안 된다.

참 급하게도 다녔다 싶다.

노고단을 오르내리는 길은 진달래가 한창이다.

무릇 꽃에도 인생이 있을 터, 딱 30대의 생기와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다.

데크길을 걸으며 양 옆으로 핀 진달래가 그저 좋아 연신 웃음을 흘리며 걷는 발걸음도 가볍다.


노고단 표지석에도 인증샷 줄이 제법 길다.

한 쪽으로 나와 잠깐 빈 틈을 노려 표지석만 찍고 내려 온다.

저 멀리 돌탑까지 보이는 진달래 능선이 참 아름답다. 










천신의 딸이자 여신인 마고할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걷는 길에 진달래는 왜 그리 진하게 피었는지,,,,

여덟 명이나 되는 딸을 낳고 떠난 반야는 왜 그리 무책임한지

남편이 그리 그리우면 반야봉에 있다는 반야를 찾아가면 될 것을 천왕봉에 앉아 왜 그리 원망만 하는지

남편을 위해 지었던 옷 한 벌을 갈기갈기 찢어 날렸던 마고할미의 분노는 반야는 알고나 있는지

지극히 인간적이며 남성적인 시각으로 지어진 전설을 떠올리며 

신의 풍모따윈 없어 보이는 마고할미를 왜 지리산의 여신으로 삼았을까?


그러나 지리산은 평온하고 부드럽고 포근하다.

마고할미의 격정도 지리산의 품 안에서 어김없이 사라졌을 터

지금은 지리산의 모든 골짜기, 모든 봉우리에서 자애의 여신 마고할미를 만난다.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글레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돼지령도 지나고

한 잔의 시원한 물로 기운을 북돋우는 임걸령도 지나면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부르게 되었다는 노루목을 만난다.

진달래 꽃빛 화사한 능선길은 그저 평온하고 환하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항상 지나쳐만 왔던 반야봉을 오른다.

가파르고 뾰족한 돌들이 많아 길이 썩 좋지는 않다.

아직도 겨울빛인 나무들 사이에 진달래가 봉우리를 터트리려 하고 있다.

개화의 순간, 그 찰나의 모습을 반야봉 정상에서 만난다.

모든 자연이 정적 속에서 진달래의 개화를 기다리는 듯하다.

꽃망울을 터트려 속을 환히 드러낸 것보다 더 떨려 오는 가슴.

달리기 출발 선에서 총소리가 울리길 기다리는 초등생 아이의 떨림같다.

지금 이 순간에 오게 되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반야는 정상석 저 자리쯤에 앉아 마고도 잊은 채 공부에 몰두했을까?

오랜 상념할 여유도 없이 인증샷만 남기고 내려오는 길은 더 가파르고 더 거칠다.

거친 길이 끝나면 다시 순한 길로 이어지고 세 개의 도가 만난다는 삼도봉이다.







지리산 능선길엔 야생화도 피어 난다. 얼레지를 만났고 노란 양지도 만났다.

조금 더 지나면 능선길 좌우로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날 터,,,

미리 나온 야생화가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옛날 화개장터가 있던 곳이라는 화개재.

연동골을 따라 올라 온 소금과 해산물, 뱀사골을 따라 올라 온 삼베와 산나물이 이 곳에서 교환이 되었단다.

이 높은 곳이 장터였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옛 사람들의 생활의 애환이 전해와 가슴이 시리다.

끝없는 데크의 내리막길을 지나 뱀사골계곡으로 접어 든다.






계곡 주위의 잎은 점점 더 짙어지고 맑디 맑은 계곡물은 각종 소들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야말로 소의 전시장.

계곡 주변의 연달래, 이름 모르는 야생화는 계곡 물소리에 더 생명을 얻는 듯하다.

길은 길게 이어지고 발바닥은 조금씩 통증이 오나 눈은 즐겁다.

지난 날 화정 식구들과 추억을 나눴던 요룡대도 지나면 어느덧 반선주차장 입구

다리 아래 개울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어 본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의 감촉에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듯 하다.

개울을 올라 와 산악회에서 제공해 주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늘 길, 기분좋은 피로감이 밀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