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등산 405봉) 경기 의왕 모락산

2023년 5월 14일 일요일

 
 

임영대군과 함께 한 한나절 발걸음

 
 



등산코스  : 모락산약수터 ~ 모락산산림욕장 ~ 모락산전망대 ~ 사인암 ~ 보리밥고개 ~ 모락산성 ~ 모락산 국기봉 ~ 임영대군묘, 사당 ~ 모락산둘레길 1코스 ~ 모락산약수터

 

동생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산행할 곳 찾다가 수리산에 이어 선택한, 이름도 재미있는 모락모락 모락산, 겨울 호빵통에서 모락모락 김 나오는 모습이 연상되면서 뭔가 좋을 것 같은 예감으로 기분좋게 출발한다.

 

포일성당을 지나고 모락약수터 한 켠에 주차를 한다.

수도권제1순환도로 아래를 지나면 모락산산림욕장, 그리고 부드러운 흙길 따라 하얀 종을 매단 때죽나무를 만나고 바로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다.  

때죽나무

 

 

길은 내내 숲으로 덮였고 간간히 만나는 바위들은 눈길을 끌며 약간의 변화를 준다.

각이 없는 원형의 바위들은 금정산에서 자주 만났던 바위들과 비슷해 잠시 금정산을 걷는 듯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만난 사인암, 역사적인 기록을 가진 바위다.

세종의 네 번째 아들인 임영대군이 한양을 사모해서 망궐례를 올렸던 바위란다.

'한양이 지척인데 웬 망궐례? 임금에게 내쳐졌나?' 별 생각없이 사인암에 올랐더니 툭 트인 전망에 시야가 시원하다. 

 

 

사인암을 지나면 길 가의 바위들의 모양도 무척 다양해진다.

굳이 과한 해석을 붙여 놓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이름 한 개 씩 붙여볼 만한 바위들이라 걷는 길이 즐겁다.

 

 

보리밥고개를 지난다. 아래동네에 있는 유명한 보리밥집 때문인지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정겨운 이름이다.

모락산성 안내판을 만난다. 백제시대 산성으로 878m이며 도성 방어를 위한 경기 서남부지역 거점 성이라는데 그냥 넓은 운동장같은 모습만 보여 산성의 모습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시야가 탁 트인 가장자리 전망바위를 만나면 모두 산성의 일부인 듯 하다. 

관악산이 보이는 전망대가 지나면 아주 긴 길이의 국기봉이 있는 모락산 정상이다.

 

 

소나무옆 바위위에 국기봉을 세웠는데 그것도 너무 높아 카메라앵글안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겨우 각도를 맞춰 인증샷을 찍는다.

그런데 모락산이름은 반대편 소나무쪽에 있어 이름까지 넣어서 찍으려니 완전히 얼굴을 땅바닥에 대야 하는 상황, 아무도 없는 틈에 우스꽝스럽게 이름있는 국기봉 인증샷을 찍었다.

 

 

내려 오니 다시 모락산성 안내판

878m의 성이니 빙 둘러 산성일 터인데 여기서도 산성의 모습은 그저  넓은 공터다.

안내판 사진에도 익히 알던 산성의 모습과는 다른 일반 산같은 모습이다.

백과사전에 올려져 있는 모락산성 모습

 

 

본격 하산길에 앞의 그 부드러운 바위들을 지난다.

그러다 만나는 삼남길 표지판에서 임영대군묘가 눈에 들어온다. 

사인암과 연결되는 곳이라 무궁화아파트로 가던 길을 버리고 모락산둘레길을 따라 임영대군묘로 향한다.

 

 

라일락, 공조팝나무, 산딸나무의 환한 봄꽃들과 만나며 내려가는 길끝엔 음식점이 많은 2차선 국도, 삼남길이다.

도로부터는 임영대군묘를 찾아 지도앱을 켠다. 

라일락
공조팝나무
산딸나무

 

 

2차선 국도를 따라가다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임영대군묘로 향한다. 

그런데 길은 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연결되고 휴대폰 방향을 돌려가며 묘 찾기에 돌입, 길은 곧 사라지고 온통 잡풀 군락.

다시 도로로 내려와서 가야 되나 갈등하다 수풀을 헤치고 임영대군묘로 향한다.

그러다 코를 스치는 찔레꽃 향기.

꽃 향기를 쫓으니 다시 불두화가 어지럽게 피어 있고 그 옆으로 더 많은 찔레가 군락을 이뤄 피어 있다. 연한 분홍빛 찔레 너머로 작은 길이 보인다.

사람의 왕래가 있었던 흔적이고 지도에서 묘도 가까워졌다.

길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곧 임영대군묘가 보인다.

문인석 석상 한 쌍이 지키는 임영대군묘.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별다른 특징도 잘 모르겠다. 

불두화
찔레
찔레

 

 

그런데 묘 앞으로 너무 잘 만들어 놓은 길

잘 깎은 돌로 만든 계단, 돌로 만든 연결로,,,,

도로로 걸어서 갔더라면 이 좋은 길로 들어왔을 터다.

그러나 덕분에 찔레꽃 군락, 불두화 군락도 만났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때죽나무
광대수염

 

 

임영대군묘를 지나니 사당이 나타난다.

임영대군 이구는 세종의 네 번째 아들.

계유정난 후 세조를 피해 숨어들어 장님 행세를 하며 지냈고 매일 이 산에 올라 망궐례를 올려 한양을 사모해서 모락산이라고 불렀다는데 이건 계유정난때 세조편에 섰던 임영대군의 행보를 불편해 한 후손들이 지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회오리속에서 누군가를 선택했어야 할 테고 단종편이었다면 안평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을 터~

50세까지 평안하게 살고 사패지까지 하사받아 그의 후손들이 정착해서 살았다는 건 세조의 반정을 지지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올린 자료도 이를 반증한다.

'세조의 신임 속에서 그는 군사관련 활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아울러 그의 2자 구성군 준이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영의정에 오르는 등, 세조연간에 임영대군과 그의 직계 자손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이러한 세조연간 이후 임영대군의 활약이 내손리 전주이씨 동족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임영대군의 사망 후 지금의 자리에 묘를 쓰고 받은 사패지가 근거가 되어 후손이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덧없는 그 시간에도 자연은 꽃을 피우고 묵묵히 제 일을 한다.

환하던 봄꽃들에 우수가 앉는다. 

불두화
찔레

 

 

돌아 돌아 출발했던 그 곳으로 돌아왔다.

종주길 거의 도착 지점에서 다시 돌아 왔기 때문에 제법 오래 걸었다.

그래도 산이 부드럽고 흙길이라 편안한 걸음이었다.

모락산, 사인암, 능안마을, 임영대군묘, 사당 등 역사적인 장소가 가득한 곳, 역사의 한 장면 안에서 걸어 본 사색하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