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4일 일요일
밧줄타고 바위타고 힐링 간월공룡
등산코스 : 알프스산장 ~ 온천교 ~ 산악영상관 ~ 간월공룡 ~ 간월산 ~ 배내봉 ~ 밝얼산 ~ 저승골 ~ 알프스산장
신불공룡이라 불리는 신불산 칼바위능선은 서너차례 갔으면서 마주 보이던 간월공룡은 이제서야 찾았다.
저승골로 하산 코스를 잡고 차는 알프스산장 도로옆 공터에 주차한다.
온천교를 지나 산악영상관앞 개천을 넘으면 공룡능선 산길과 만난다.
고산자후배?
얼마나 산을 좋아하면 저런 닉을 쓸까? 공감가면서도 부러우면서도 재미있다.
부드러운 흙길을 어느 정도 오르면 첫 번째 로프를 만난다.
제법 가파른 직벽이지만 발 디딜 곳도 있어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른다.
로프타고 오르면 만나는 능선은 그야말로 바위 전시장에 시원한 전망, 절로 웃음이 난다.
건너편 칼바위능선은 생각보다 고도가 없어 보인다.
칼바위능선 아래까지가 정말 심한 경사였는데...
로프타고 오르면 조금 부드러운 전망바윗길, 다시 로프...
이렇게 9개 정도 로프를 타고 오른 것 같다.
바위를 바로 치고 오르기도 하고 바위 사이를 오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신난다.
바위 끝 소나무, 떡갈나무는 멋진 그림이 되어 주고,,,,
쭉쭉 올라가면서도 발과 눈은 내내 즐겁다.
잠시 넓은 바위에서 쉬기로 한다.
바위끝으로 울산 문수산, 남암산 두 봉우리가 봉긋하다.
바위 끝엔 안내석 흔적이 있는데 지난 번 신불산서릉의 거북바위안내석처럼 훼손된 게 아닌가 궁금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도 관련있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 아래 간월재가 보이고 두어 개 로프를 더 오르면 바로 신불간월능선길과 만난다.
사방에서 조망되는 영남알프스의 산그리메
1000m급 산들이 나란히 초록 손을 잡았다.
라면명소로 유명해진 간월휴게소를 뒤로 하고 간월산 정상에 닿는다.
영알 정상엔 오늘도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많다.
배내봉으로 향하는 내리막은 편안한 숲길이다.
간혹 만나는 꽃구경에 눈 또한 즐겁다.
바위가 살짝 드러나는 선짐이질등은 배내골아낙들이 언양장을 오갈 때 등짐을 진 채로 쉰다는 고개다. '일흔아홉개의 고개를 넘어 선짐이질등을 오르면 하늘이 노랗더라'는 주민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 고개엔 그네들이 가지고 가던 물건을 넣어 두었다는 돌탑은 보이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넘어야 했던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은 이제 그 흔적을 찾아 보려는 산객만이 있을 뿐이다. 굽이굽이 계곡길아래 배냇골은 모습을 감추었다.
참 편안한 길이다.
배내고개에서 간월산까지의 달오름길 구간이라 사람들도 제법 다닌다.
달빛을 벗삼아 걸어도 좋을 길 같지만 언제 그런 날을 만들어 보고싶은 길.
달빛 대신 따스한 햇빛에 취해 기분좋게 배내봉에 도착한다.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있어 사진을 부탁한다.
연분홍 철쭉꽃 피던 90년대 올랐으니 정말 오랫만에 온 셈이다.
저승골방향으로 접어 든다.
사람들이 많이 안 다녔는지 길은 좁고 풀도 조금 나 있다.
그러나 고즈넉한 길이라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새끼멧돼지 한 마리가 뛰쳐 나와서 우왕좌왕 갈팡질팡, 나와 눈을 마주치곤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아 난다.
너무 순간적이라 깜짝 놀라 "꺅~~" 비명을 질렀더니 더 어린 멧돼지 두 마리가 또 뛰쳐 나와 내 쪽으로 달려든다. 순식간의 일이라 어디 도망치지도 못하고 손을 휘젓고 고함을 질렀더니 혼비백산하여 뛰어간다.
잠시 정적, 귀를 기울여 보니 어미 멧돼지의 "그르렁" 가래 긁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오도가도 못 하고 일단 나무위로 올라가 분위기 파악~
얼마나 있었는지, 그르렁 거리던 소리도 사라지고 고요해졌다. 나무 위에서 "억, 억" 소리를 내도 기척이 없다.
나무에서 내려와 긴 막대가 하나를 주워 나무를 툭툭 쳐 소리를 내 봐도 조용하다.
이제 가 볼까? 막대기로 바닥을 치며 조금은 긴장한 채 내려 온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 앞에 밝얼산 정상이 나타난다.
저승골로 갔어야 되는데 멧돼지 생각하느라 길을 놓친 모양이다.
생각지도 않게 다음을 기약했던 밝얼산 정상을 미리 올랐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에서 편하게 있다가 인기척 소리에 놀란 건 아기멧돼지가 나보다 더했을 듯하다.
제법 경사있는 내리막길, 울창한 숲에 재미있는 나무도 구경하며 걷다보면 풀이 잔뜩 자란 임도와 만난다.
지도를 보니 다시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계곡을 건널 수 있다.
계곡은 세멘트로 정비를 해 놓았는데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할 구조라 일단 아래방향으로 가 본다.
그런데 막아서는 펜스, 그 너머엔 무슨 시설이 있다. 주변을 살피니 펜스를 넘지 않곤 돌아가야 하는 상황.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낼름 펜스를 넘는다.
정수 시설인데 앞쪽엔 아무런 금지 표시가 없는 걸로 봐서 밭주인이 쳐 놓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도로를 따라 쇠락해 가는 주변 건물들은 비어 있거나 흉물에 가까운 곳도 있다.
알프스산장쪽으로 올수록 길 가에 꽃들도 피어 있고 주변도 말끔해진다.
IMF 때문일까?
안타깝지만 사람들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서 새롭게 바뀌겠지?
느릿느릿 느림보 산행이었지만 9시간 40분의 산행이었다.
새끼멧돼지를 만나는 극한 경험도 했지만 즐거운 산행이었다.
정말 고마운 건 무릎이 멀쩡하다는 것.
정기적으로 자전거타고 산행한 게 무릎에 플러스효과가 난 듯하다.
영알 능선에 해거름이 내려온다. 오늘은 멧돼지의 경험과 무사고에 더욱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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