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중남미

(등산 223봉) 중남미 여행(3월 9일) 페루 쿠스코 비니쿤카(무지개산)

중남미 96박 97일 여행(2018년 2월 19일 ~ 5월 26일)

 3월 9일 페루 쿠스코 비니쿤카(무지개산) 등반 

 

세상에, 무지개가 산이 되었다


새벽 4시 기상, 오늘은 5300m 비니쿤카 가는 날

철저하게 방한 대비를 한 후 다섯 시에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우리 일행외 한국인 여성 세 분과 한국 청년 한 명이 더 합류했다.

호텔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조그맣고 예쁜 현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 4500m 비니쿤카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 가니 우리를 싣고 갈 말과 마부가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걸어서 정상에 갈 수도 있었지만 말을 타고 오르는 새로운 경험과 현지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말을 타고 가기로 했다. 현지인 가이더가 우리 명단을 보고 줄 서 있는 마부 이름을 부르며 한 명씩 짝을 맞춰 준다. 그러면 서 있던 마부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환호해 주고 말과 트레킹을 시작한다.

난 운좋게도 말도 크고 씩씩했으며 마부도 젊은 청년이 걸렸다. 

 

 

 

  

 

말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길은 생각처럼 즐겁지 않았다. 사람 다니는 길 안쪽으로 말이 다니는 길인데 땅이 질어 말 발굽이 푹푹 빠지고 그럴 때마다 몸이 많이 흔들렸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니 팔도 아프고 허벅지도 아프고 나중엔 무릎까지 아파왔다. 특히 말이 힘이 좋다 보니 자꾸 뛰기도 해서 더 힘들었다.

어느 정도 가다가 말이 지칠 때쯤 내려 걸어 가는데 이런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다 정상 100m 아래부터 무조건 걸어 갔다. 중간 중간 흔들리는 말 위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마음놓고 사진찍고 걸을 수 있는 이 길이 더 행복했다.

다른 사람은 고산증 약을 먹고 와서도 약간의 고산증 증세를 보이는데 네팔 칼라파트라의 경험에 힘입어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사진 찍느라 앉았다 일어서면 살짝 오는 어지럼증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저 멀리 비니쿤카의 속살이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걸 보며 제발 구름이 걷혀 주길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정상에 다다랐다.

 

 

 

정말 감사하게도 구름이 걷히고 비니쿤카의 속살이 드러난다.

바람이 휘익 불어 주면 비니쿤카의 능선으로 구름이 담을 넘듯 넘어가고 그 뒤로 형용할 수 없는 비니쿤카의 절정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환호와 카메라 셧터 소리가 정상부를 가득 메운다.

"포토, 포토"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 될 현지 아이들의 중얼거림

1솔로 라마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남아 있는 동전을 모두 꺼내어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지만 아이들 표정엔 영혼이 사라졌다. 현상만 남은 그네들의 삶에 안타까움이 더한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를 놀다 조금 내려 오면 갈림길 사거리에 현지인들이 차와 비스켓 등을 팔고 있다. 

열 대여섯살쯤 보이는 눈이 맑은 아이의 찻집에서 차를 사 마시고 하산길로 접어 든다. 

 

  

 

 

 

 

다시 100여m를 내려 오면 타고 왔던 말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내려갈 길이 살짝 걱정이다. 말에 올라 상체 힘을 빼고 허벅지 안쪽과 단전쪽에만 힘을 주고 말의 리듬에 따라 몸을 맡겨 본다. 말의 움직임이 내 몸에 그대로 전해 오면서 말 위에 앉아 있는 게 훨씬 편해졌다.

말이 뛸 때도 은근히 즐길 수 있었다. 주변 풍경도 편하게 다시 둘러 볼 수 있고 비니쿤카의 정상을 돌아볼 수도 있었다. 조그만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잠시 머물며 비니쿤카의 여운을 다시 즐긴다. 다시 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마지막 작별을 남긴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젊은 마부가 의도적으로 이리 저리 방향을 바꾸며 말을 달린다. 나에 대한 배려같은 걸로 느껴진다. 어쨌던 내려올 땐 즐거운 승마하산이었다. 90솔에 10솔을 얹어 100솔을 주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비니쿤카를 마무리했다.

날씨에 감사하고 여행올 수 있는 건강과 행운에 감사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감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