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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

네팔 무스탕 트레킹(갸르곰빠-초고라-삼둘링곰빠-로만탕)

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5일 갸르곰빠(3950m) - 초고라(4280m) -  삼둘링곰빠(4090m) - 로만탕(3810m)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오늘의 일정 '조식 후 트레킹, 초고라 통과 후 삼둘링곰빠 답사, 삼둘링롯지 또는 캠핑. 13km 8~9시간'


갸르곰빠에서의 잠은 포근했다.

담요가 깔린 의자에 침낭을 깔고 다시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자서 그런지 꿈도 없는 편안한 잠이었다. 눈을 뜨자 마자 갸르곰빠 주변을 둘러 보러 나간다. 마침 해가 뜨고 있었는데 곰빠의 앞쪽이 동쪽으로 곰빠는 해가 돋는 동쪽을 보고 있는 셈이다.










곰빠의 외곽은 초르텐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둘러 섰고 그 사이를 빽빽한 타르초가 휘날리고 있다. 갸르곰빠의 위력이 곰빠의 규모와 초르텐과 타르초의 수로 짐작할 수 있지만 스님이 계시지 않은 오지의 절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1300여 년의 역사가 안타까울 뿐이다.

빠드마삼바바의 손자욱, 발자욱의 진위 여부는 가릴 수 없지만 굳건히 서 있는 보리수는 갸르의 역사를 대변하고 우뚝 서 있다. 아침 식사 후 잠깐의 명상 시간을 가지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어제 짚차를 타고 오는 바람에 보지 못한 주변 풍경을 걸으면서 본다. 곰빠의 규모를 보아 많은 스님들이 계셨을 건데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곰빠 주변을 흐르는 물이다. 곰빠 옆에도 조금 지나서 있는 계곡에도 청량한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물이 많으니 걸어가는 길 주변은 온통 풀밭이다.

인가는 거의 보이지 않고 양떼의 무리들은 종종 만난다. 양떼들은 너무 순하다. 살짝 몸만 움직여도 우르르 몰려 도망을 간다. 너른 벌판에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풀을 뜯는 모습에 동물도 이런 곳에 살아야 함을 느낀다.

돌아 보면 갸르곰빠의 너른 경계와 더 멀리 안나푸르나 산봉들의 설산을 대한다. 걸어도 걸어도 즐거운 길이다.








고개를 돌아 갸르곰빠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조금씩 오르막이다. 그러나 경사는 완만하고 물은 주변을 널리 퍼져 벌판을 적신다. 여름이었으면 야생화가 지천이었을 듯한데 꽃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에 적셔 생생한 풀들의 생명력이 눈부시다.

이러다 서서히 자갈길의 고개로 다가간다. 오늘 넘어갈 초고라가 저 위에 나타난다.





우리가 걸어 온 길이 꿈인 듯 아스라하다. 저 너머 안나푸르나는 여전히 우뚝 서 있고 걸어 온 길이 눈 아래로 보일 때쯤 오늘 최고 높은 고개 초고라에 이른다. 초고라의 고개마루에도 여전히 타르초가 흩날리고 소원을 담았을 돌탑이 제법 큰 규모로 서 있다. 초고라에서 보는 안나푸르나의 산군과 빙 둘러 무스탕의 모습에 경외감이 든다. 모두 감격에 젖어 우리가 여기 있음에 감사하며 아리랑 삼창을 부른다. 가슴에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온다.






고개를 넘으면 본격적인 삼둘링곰빠길이다. 고개 하나로 자연의 모습은 또 많이 달라진다. 전체적으로 약간 건조해 보이고 키 작은 풀들이 땅 표면에 깔린 듯 자라고 있다. 그래도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도 만난다. 다시 한 고개를 넘는다. 이름은? 삼둘링패스?




삼둘링패스(?)를 지나면 평원이 펼쳐진다. 딱히 길이라고 할 것도 없어 이리저리 양떼들처럼 흩어져 걷는다. 삼둘링곰빠가는 길도 정확하지 않다. 가이더 두 명이 길을 찾아 평원을 이리저리 쫓아 다닌다. 삼둘링곰빠는 잘 찾지 않는 곳인 것 같다. 지도에 나와 있는 방향만 보고 가는 셈인데 넓은 평원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평원엔 또 다른 양떼가 풀을 뜯고 있다. 양떼가 있으면 목동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데 보이진 않는다. 저 멀리 원주민 한 분이 지나간다. 가이더가 쫓아 가서 얘기를 하는데 손짓을 하는 것으로 보아 삼둘링곰빠를 가르키는 듯 하다.

아스라히 언덕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그림인 듯 아름답다.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길 바닥에 네모 난 종이들이 날아 다닌다. 주워 보니 손바닥만한 사각형의 종이인데 불경이 적어져 있다. 종이 타르초인 셈이다. 이 종이가 어디서 날아 왔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지만 바람을 따라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날아 간다. 그저 방향만 보고 갔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멀리선 그저 평원의 한 부분이었는데 계곡도 깊고 수량도 많다.


드디어 우리가 찾던 삼둘링곰빠 지역이다. 삼둘링곰빠가 보일 때쯤 다들 지쳐 있다. 원장님은 평평한 돌 위에 아예 누워 버린다. 결국 모두 잠시 쉬어 간다. 맑은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평화롭다. 옥남언니는 자갈을 걷는다며 신발을 벗고 걷다가 발을 헛디뎌 바닥에 깔려 자라는 작은 나무를 밟았는데 발바닥에 온통 가시가 박혔다. 동그란 모양의 나무들이라 부드러워 보였는데 온통 가시투성이다. 오로지 천적인 양떼들로부터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옥남언니는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내느라 애를 먹는다. 그나마 양말을 신어서 그리 심하진 않은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언덕 위엔 곰빠의 흔적이 보이는데 낡고 닳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다시 몸을 일으키고 계곡의 상류로 걸어 간다. 한 곳에 정말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우거진 숲이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 무스탕 최고의 초록숲이다. 타르초도 한 폭의 그림에 한 몫을 한다. 나무는 거대한 보리수 한 그루와 그 보다 작은 향나무 한 그루다. 보리수의 크기가 삼둘링곰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삼둘링곰빠를 오르기 위해 길을 찾아 보지만 온통 가시나무들로 가로막고 있어 올라갈 수가 없다. 다와가 이리저리 길을 찾다 포기하고 내려온다. 삼둘링곰빠 대신에 삼둘링동굴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에서 바라보니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언니와 나는 계곡에서 쉬기로 하고 남자 분들만 동굴로 향한다.






삼둘링동굴로 오르는 걸 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주변을 둘러 본다. 보리수는 나무 아래 하얀 털같은 것들이 날리고 있다. 아마 보리수열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로 내려 가니 향나무가 있고 향나무 아래엔 네모난 돌이 스무 개 정도 둥그렇게 놓여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나무 주위를 돌아 보니 곰빠로 올라 가는 길이 보인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길이지만 가시나무를 피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여기에서 올랐나 보다. 언덕은 금방이라도 자갈돌이 무너질 듯 위태롭다. 마침내 언덕위에 다다랐을 땐 쓰러질 듯 위태로운 스투파 세 개가 먼저 눈 앞에 나타난다. 



스투파는 자칫 언덕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질 것 같은 계곡쪽에 위치해 있는 듯이 보였는데 언덕위에 오르니 제법 너른 평원이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높은 언덕에도 몇 개의 스투파가 있고 평원 위 쪽으로도 스투파와 사각형의 건물이 있는데 그걸 경계로 한다면 규모는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해 세월의 무상함이 전해 온다. 그냥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얼마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삼둘링곰빠를 천천히 걸어 본다.

삼둘링동굴에서 평생을 명상한 여스님이 계셨단다. 그 분의 공부가 너무 깊어 스님을 위해 곰빠를 지어주었단다. 외국 여행객이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썼고 그래서 알려지게 된 곳이란다. 하루를 곡식 몇 알을 먹으며 명상을 하고 평생을 그리 지냈다는데 인간의 한계란 도대체 어디 까지인지 그런 인간은 태어나는건지 만들어지는건지 그리 해서 얻은 건 무엇인지 30분의 명상도 하지 못하는 나는 또 무엇인지,,,






사람도 건물도 언젠가 사라질 것, 미련 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는 게 당연한걸까?

그러나 조금 더 부유한 국가라면 분명히 국가 차원에서 관리했을텐데 그런 여력이 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가?  그러나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산책에 마음이 도리어 편안해진다.

평원 위쪽에 다다르니 맞은편 삼둘링동굴이 보인다. 거기 오르는 분들의 모습이 새끼손가락보다 작게 보인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원장님의 정신력이 대단하다. 동굴로 오르는 길은 곰빠로 오르는 길보다 훨씬 가파르고 위험해 보인다. 한참 동안 그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한다.

아까 다와가 찾았을 때는 없던 길이었는데 곰빠의 아래, 위 끝쪽에 길이 나 있는 셈이다.

길 끝 위에 앉아 바라보는 깊은 계곡과 저 멀리 펼쳐 있는 평원에 가슴이 뻘 뚫린다. 오늘따라 하늘은 왜 이리 푸른지,,,



조심조심 계곡으로 내려간다. 자갈길이고 길이 좁아 약간 위험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곰빠로 가는 길이 이어져 있다. 주인도 안 보이는 말들이 평화스럽게 풀을 뜯는다. 고삐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유로운 야생마일까?

계곡을 따라 언니가 앉아 있는 보리수 나무쪽으로 간다. 언니는 앉아서 잠깐 졸고 있다. 점심 시간을 훌쩍 지난 터라 배도 고프고 지쳐 있다. 나도 옆에 앉아 잠깐 평화로운 졸음을 맞는다.


졸음에서 깨어나서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동굴에 갔던 분들이 내려 왔다. 동굴입구가 가시나무로 막혀 있어 가시에 찔리며 들어 갔단다. 안에 가서 또 명상을 하셨을거니 시간이 걸린 건 당연할 터다.

원장님이 다시 삼둘링곰빠로 올라 가가신다. 사람들은 이미 너무 지쳐 있지만  반대도 못 한다. 결국 내가 나서 말리 긴 했지만 죄송하긴 하다. 젊은 가이더들도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 온다. 요리팀으로부터 산행가이더에게 몇 번이나 점심 먹으러 오라는 전화가 왔단다.

주린 배를 안고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데 요리팀에 있는 경력은 얼마 되지 않은 나이 많은 아저씨가 주스주전자를 들고 나타나신다. 얼마나 반가운지,,,내리 주스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니 조금 힘이 난다.

이 계곡을 끼고 제법 큰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던 모습들이 보인다. 왕궁같기도 하고 꼼빠였을 것 같기도한데 물에서 먼 언덕 위에 집을 지어 놓아 의아하다. 외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었을까?

허물어지고 닳아지고 무너진 담벼락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모든 건 언젠가 저렇게 사그라질터이니 물처럼 바람처럼 그저 순하게 살다 가리다.




물 뜨기 쉬운 계곡 옆에 점심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야외에서는 비교적 간편식을 요리하는데 오늘은 라면이다. 지친 상태라 국물 얼큰한 라면이 잘 넘어간다. 후식으로 달달한 과일 후르츠까지 먹고 나니 이제 살 것 같다. 삼둘링곰빠에서 캠핑할 지 모른다 했는데 조금 더 가면 로만탕이라 로만탕에서 자기로 한다. 시간도 여유가 있어 점심 먹은 자리에서 조금 더 휴식을 취하고 로만탕으로 향한다.



광할한 평원을 걷는다. 계곡의 맑은 물과 너른 평원, 이런 조건이면 왕궁을 형성하기 좋았을 듯 하다. 너른 평원에는 오늘 만난 양떼 중 가장 많은 수의 양떼를 만난다. 사람이 지나가면 엉덩이를 보이며 졸졸 도망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가까이서 보는 모습은 뒷모습 아니면 겨우 옆모습이다.

평화가득한 평원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다시 황량한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로만탕이다.




고개 뒤로 보이는 우뚝한 산꼭대기에 집을 지은 흔적들이 보인다. 규모로 봐선 거의 왕궁 수준이다. 저 높은 데를 어떻게 올라 갈까 싶은데 자세히 보면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다. 저 길을 걸어서 올라 다녔을텐데 지금은 마을들이 계곡 주변의 물 옆으로 자리잡고 산 위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 주변에 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들이 다수 자란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규모가 가장 크다는 남걀곰빠가 있다. 멀리서도 규모가 엄청나다. 내일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지나간다. 마을의 중심에 곰빠가 있는 구조라면 산꼭대기에 있는 건물의 잔해는 곰빠였을 수도 있겠다.  




계곡쪽 마을을 바라보며 맞은편 언덕으로 오른다. 드디어 도착한 로만탕이다. 아직도 왕족이 살고 있다니 그 모습에 기대가 된다. 로만탕의 입구에 있는 옴마니반메훔의 바위가 너무나도 반가운 날이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오는 로만탕은 완전 번화가다. 저녁이라 롯지로 가는 길만 지났는데도 집집마다 가게들엔 불이 환하다. 그림을 그리는 곳도 있고 민속품을 파는 곳도 있다. 오늘은 그냥 지나간다. 빨리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우리가 간 집은 이층짜리 최신식 롯지다. 카트만두나 포카라의 호텔을 제외하곤 제일 좋은 시설이다. 방에서 충전도 할 수 있고 불도 내내 켜진다. 세상에 전기온수기로 샤워도 할 수 있다. 놀라운 변화다. 트레킹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머리가 빨리 마르지 않아 한기가 들지만 뭐 이 정도는 감수한다. 어쨌던 네팔의 변화에 깜짝 놀란 로만탕에서의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