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4일 기링(3570m) - 니이라(4020m) - 게미(3510m) - 닥마르(3820m) - 갸르곰빠(3950m)
나를 놓는 연습
오늘의 일정 '조식 후 무스탕 왕국으로 들어감. 석식 및 롯지 투숙 및 휴식, 트레킹 약 9~10시간
식사 전 안나푸르나를 비추는 일출을 감상한다. 안나푸르나 산군이 멀리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안나푸르나의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는 건 누가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감사의 예를 올린다.
아침을 먹고 마을 뒤쪽으로 오른다. 오르막이지만 평탄하고 길이 길어 돌아다 보는 안나푸르나의 모습은 얼추 비슷하다. 조금씩 햇살이 번지는 게 달라지지만 가끔씩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그 모습이 좋아 몇 발짝 못 가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완만한 오름길이라 힘은 별로 들지 않는다. 다올라기와 안나푸르나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는 길이라 걷는 내내 뒤를 돌아 보게 된다. 똑같은 모습인데 볼 때마다 가슴 벅차다.
마지막 자갈길의 고비를 넘으면 4020m의 봉우리 니이라다. 네팔에선 높은 고개마다 돌탑을 쌓고 타르초를 걸어 놓는데 여기도 어김없이 그 모습이다. 저마다의 소망을 담았을 돌탑은 큰 것 작은 것 각자의 소망대로 흩어져 있다. 무스탕의 바람에 나부꼈을 타르초의 가장자리는 닳아 헤져 바람의 세기와 시간의 무심함을 직감한다. 니이라에 우리의 소망을 담아 작은 돌탑 하나를 세워 놓는다. 무스탕의 바람이 우리의 소망을 담아 널리널리 퍼져 가길 기대해 본다.
니이라 고개를 넘어 게미마을을 향한다. 마르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고 침식으로 일어난 계곡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나마 강수량이 적어서 저 모습이 유지될텐데 비가 많은 곳이면 침식 작용이 많이 일어나 산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을 듯 하다. 자갈과 흙이 굳어 만들어진 저 계곡은 적은 강수량이지만 눈과 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테고 바람은 깎고 날려서 또 다른 지형의 형태를 만들어 놓는다.
이 황량한 길에 말을 탄 모습도 짚차를 타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마을과 마을 사이가 거리가 머니 말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앞을 지나던 이 분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어디서 왔는지 묻고 웃음도 크게 웃는 등 굉장히 쾌활해서 걷는 우리를 매우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옆의 넓은 길엔 짚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몇 년 후면 너무나 달라질 이 곳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행객의 입장에선 너무나 안타깝지만 주민들의 삶의 편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다시 타르초가 흩날리는 고개에 오른다. 저 아래 그림같이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이는 마을이 보인다. 오늘 점심을 먹을 게미마을이다. 푸른 나무들이 자라고 밭은 붉은 색 메밀밭이다. 마을의 규모는 제법 큰데 마을 앞에 흘러가는 맑은 물과 그 사이의 넓은 터 때문인 듯 하다. 마을의 집들은 계곡이 있는 쪽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아래 위로 밭들이 그득하다. 풍요로운 마을 모습에 사람들이 그나마 풍족하게 살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참을 마을을 내려다 보다 가이더 다와에게 고개 이름을 물으니 씨익 웃는다. 이름을 모른단 얘기,,,그래서 그냥 게미패스로 정하는데 높이는 약 3800m란다. 니이라에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으나 경사는 그리 심하지 않은 편으로 300여m 아래가 마을이다.
기링에서 5시 30분경 출발해서 5시간 정도를 걸어서 도착했는데 겨우 10시 30분이다. 점심 먹기는 이르지만 다음 코스까지 걷기도 애매해 정말 마음 편하게 쉬기로 한다. 롯지 마당엔 코스모스, 접시꽃이 지천이고 우리의 봄같이 따스한 날씨에 모두 무장 해제다. 잠시 마당 한 켠에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정말 느긋하고 평화로운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다. 오무라이스에 무국으로 점심을 먹고 닥마르를 향해 걸음을 나선다.
마을의 중심을 통과하며 마을의 속살을 본다. 미류나무같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방풍림으로 심은건지 자연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백 여년은 넘었을 법한 굵기의 나무들도 있어 마을의 역사를 짐작해 본다. 마을 곳곳에 나무들의 모습이 보이고 집 한켠엔 타작후 짚같은 것들이 쌓여 있어 정말 풍요로운 마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마을을 벗어날 때쯤 닥마르로 가는 방향을 알려 주는 안내판과 함께 커다란 물소리가 들려 온다. 이제 게미마을과 작별이다.
가장 낮은 곳 계곡까지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물이 가까이 있으니 나무들의 모습도 더 많이 보인다. 저 아래 생명수를 품고 살아나가는 나무들의 삶의 모습이 꿋꿋하다. 여기도 가을이라 나무들은 노란빛의 단풍을 머금고 계절의 변화를 알려 준다. 계곡에 다다랐을 때 옥색의 계곡물에 탄성을 지른다. 이런 물, 바로 먹을 수 있는 이런 물 때문에 마을이 형성되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인데 이렇게 콸콸 흘러가고 있으니 다른 곳에 비하면 풍족하고 평화로울 터이다.
계곡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지만 뒤로 돌아보면 아름다운 게미마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충분히 휴식도 했겠다 배도 부르겠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그저 한번씩 뒤돌아서 아름다운 게미마을을 내려다 보면 되었다. 게미마을이 아득해지고 타르초가 펄럭이는 또 다른 고개에 올라선다. 뒤는 게미마을, 앞은 닥마르다. 게미마을의 모습은 풍요로운 초록의 공간인데 앞쪽 닥마르는 붉은색의 산이 버티고 있는 다소 황량하게 보이는 곳이다. 한 곳에서 바라보는 두 곳의 모습이 완전 다르다. 고개 이름을 물어 보니 역시 우리 가이더는 모른다. 뒤엣 검색을 통해 기이라라고 한다. 그 땐 고개 이름을 게미패스로 해야 되나 닥마르패스로 해야 되나 별 의미도 없을 고개 이름을 혼자 지으며 닥마르로 천천히 내려섰다.
'붉은 돌'이라는 뜻을 가진 닥마르를 향한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땐 황량했는데 걸어서 내려가다 보니 제법 넓은 초원이다. 마침 한 떼의 양들이 우리와 마주치자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우리를 피한다. 닥마르가 내려다 보이는 입구에 초르텐 4개가 있는데 짐짓 성스러울 것 같은 그 주변에도 양떼들은 아래 위로 넘나든다. 양을 모는 양치기는 보이지 않고 저들끼리 다니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닥마르 사람들의 양인가 보다. 양떼도 우두커니 한 방향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그 모습도 재미있다. 그렇게 양떼를 지나면 곧 마을 입구, 긴 타르초들이 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성스러운 불교의 땅임을,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표시다. 이제 닥마르에 도착했다.
평지에 위치한 닥마르 마을은 물이 철철철 넘쳐 난다. 기분좋은 생명수가 있는 곳. 마을 입구에선 수확한 메밀 타작이 한창이다. 주로 여자들이 작업을 하는데 비닐 커버같은 것을 깔고 도리깨로 두드린 뒤 쭉정이는 바람에 날린다. 어릴 때 보았던 우리네 수확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바람에 날리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니까 선뜻 소쿠리를 내어 주는데 보기보다 팔에 힘이 많이 들어 간다. 이렇게 작업을 해서 포대에 담아 놓으면 남자들이 나타나 묶어 놓은 메밀을 들고 간다. 메밀은 빵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국수로 만들어 먹으니 빵 재료로도 적당할 거란 생각이 든다. 가방에 보니 작은 약과가 몇 개 있어 내어 주고 마을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닥마르의 상징 붉은 돌이 있는 곳 앞에 유일한 롯지 하나가 있는데 쉬어 갈려니 문이 잠겼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갸르곰빠까지 걸어가긴 너무 멀다며 짚차를 타고 가잔다. 가이더가 짚차 섭외에 나선 사이 우리는 붉은 돌 답사에 나섰다.
자세히 보니 붉은 돌은 아니고 여태껏 보아 왔던 자갈섞인 단단한 흙이다. 흙색이 붉은 것인데 그 앞에 타르초가 흩날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기도하는 동굴이 있을 거라며 그 언덕을 올라 간다. 멀리서 보니 동굴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나는 입구에 있는 뾰족한 바위 쪽으로 올라가 보는데 자갈이 많은데다 경사가 져서 계속 미끄러진다. 겨우 언덕위에 올라 맞은편 우리가 걸어왔던 쪽을 바라보니 정말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땅이 확보된 셈이다. 동굴을 찾아갔던 세 분의 모습은 뾰족한 흙바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짚차가 도착했다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덕에서 내려 가는 건 엉덩이를 대고 미끄러져 갈 수 밖에 없을 정도라 그냥 줄줄 바지에 흙을 있는 대로 묻히며 흙을 타고 내려간다. 동굴을 찾으러 간 분들 모시러 가는 그 길에 주민은 말을 타고 붉은 산을 넘으러 가고 있다. 저 분은 어디에 무엇하러 가는걸까? 저 산 뒤 어디에 있을 미지의 마을도 궁금하다.
짚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빠드마삼바바가 티벳 최초로 세운 삼예사를 짓기 전에 지은 갸르곰빠다. 걸어 왔으면 엄청나게 걸렸을 시간이다. 제법 너른 자갈길을 달려 왔지만 밖을 보는 게 제한적이라 바깥 풍경은 거의 기억에 나지 않는다. 도착해서 내리니 곰빠 바로 앞이다. 1300년 전에 심었다던 거대한 보리수가 서 있는 곳, 그 보리수의 역사가 이 곰빠의 역사이다. 보리수를 지나니 본당의 마당이 나오고 가운데 룽따가 휘날리고 거기에서 다른 건물까지 수많은 타르초가 휘날린다. 건물은 본당과 아래에 서너채 등 규모가 큰 절에 해당되는데 스님이 계시진 않고 부부 두 사람이 관리만 하고 있다.
본당 뒷쪽 2층에 식당 같은 곳에 짐을 가져다 놓고 잠깐 주변을 둘러 본다. 1300년 된 보리수 나무 맞은편 쪽에는 100년이 넘었음직한 보리수나무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주변에 초르텐이 또 셀 수 없이 서 있고 그 사이를 하늘을 가릴 듯한 타르초가 휘날리고 있다. 정말 네팔 불교의 성지에 와 있는 것이다. 본당에 들러 예를 올린다. 전면엔 빠드마삼바바와 두 부인이 중앙을 차지하고 그 주변에 부처님, 여러 성자들이 모서져 있다. 저녁이 나올 때까지 명상 시간을 갖는다.
본당 뒷편 2층의 제법 넓고 깨끗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요리팀이 준비한 저녁을 먹는데 부부 두 사람은 따로 식사를 해서 먹는 모양이나 따로 볼 수는 없었다. 처음엔 여기서 자고 간다 해서 조금 신경이 쓰였는데 생각보다 깔끔해서 새로운 추억거리로 남는 기분좋은 밤이었다. 우리가 저녁 먹은 의자가 침대인 셈이고 거기에 담요를 덮으면 잠자리가 된다. 가져 온 침낭을 깔고 가져 온 담요를 위에 덮으니 생각보다 아늑하고 별로 춥지도 않다.
화장실은 다른 방을 지나서 갔는데 방이라기 보다는 그냥 창고 비슷한 곳. 그 가장자리에 긴 탁자같은 것을 놓고 우리 포터들은 적당히 한 사람씩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자고 있다. 그 사이 사이를 조심해서 지나가면 제일 마지막 방 끝에 나무로 성큼성큼 구멍뚫린 문이 달린 화장실이 나타난다. 그나마 볼일을 보면 바로 물로 씻어내는 형태라 냄새는 그리 나지 않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2인 1조로 망을 봐야 된다. 남여 혼용에 구멍도 뚫려 있어 상당히 민망한 형태...그래도 네팔이니 그것도 재미로 남긴다.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그저 받아 들이고 순응하는 연습을 하고 간다. 받아 들이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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