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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

네팔 무스탕 트레킹(로만탕-남걀곰빠-팅가르 여름궁전-남도곰빠-갸르푸곰빠-시자종케이브-니퓨곰빠-로만탕)

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6일 로만탕(3810m) - 남걀곰빠(3910m) - 팅가르(4025m) - 키말링(4030m) - 남도곰빠 - 티벳국경 - 갸르푸곰빠 - 시자종케이브 - 니퓨곰빠 - 로만탕(3810m)

 

불교 유적지 순례


원래 일정은 삼둘링곰빠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팅가르를 거쳐 여름 궁전을 보고 키말링을 지나 남도곰빠를 답사 후 로만탕에 도착하는 것이었으나 초사르 지역을 둘러 보며 티벳 국경도 가 보고 초사르 지역의 곰빠와 동굴도 둘러 보는 일정이 추가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오늘의 일정을 짠다. 지도를 펴 놓고 노선을 정한다. 주도권은 원장님이 지고 계신다. 워낙 티벳 불교에 대한 지식이 깊고 아는 것도 많으시기에 그냥 따라만 다녀도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 하는 곳을 갈 수 있어 만사 오케이다. 

식사를 마치니 문 앞에 짚차가 와 있다. 우리 뿐 아니라 로만탕에서는 짚차 아니면 말로 주변을 둘러 보기 때문에 우리 차 말고도 외국인을 싣기 위해 차들이 대기해 있다. 

먼저 가장 활발한 티벳 사원 남걀로 향한다. 로만탕에서 100m나 위에 있지만 짚차로 남걀사원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어 쉽게 올라 간다. 사원은 지진으로 붕괴되어 복구중이라 입구만 둘러볼 수 있다. 건축 자재도 세멘트라 어쩌면 현대식이다.  새로 지은 건물 입구에 있는 만다라 그림만 보고 바깥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본다. 사방은 트이고 어제 보았던 황량한 산 꼭대기의 왕궁터와 저 아래 계곡 주변의 마을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지배를 했건, 보살핌을 주었건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는, 서로를 잘 볼 수 있는 구조인 건 틀림없다.  





팅가르로 간다. 남걀곰빠에서 내려 와서는 거의 평지로만 달린 것 같다. 그러다 도착한 팅가르, 다른 마을과 별로 다를 건 없는데 여름 궁전이 있는 곳이란다. 2004년에 보호 센터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관리는 하는 모양이지만 따로 관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한복판을 지나 한켠에 떨어져 있는 궁전으로 간다.




마을 입구엔 상징인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지키고 있다. 비교적 깔끔한 편인데 다른 마을과 별반 다르진 않다. 물이 흘러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다니지 않은 길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을터다. 마을 앞은 제법 넓은 밭이 있고 가을걷이도 끝난 것 같다. 지붕 위에 쌓인 곡초는 겨울동안 가축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가끔 풀을 베어 말리는 모습도 보인다. 하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보는 우린 그저 평화로운 풍경이다.












여름 궁전은 마을을 지나 한쪽 옆 언덕 위에 있다. 규모도 크고 흙벽로 만든 담도 두껍다. 왕궁의 역사야 알 턱이 없지만 세월의 변화에 왕족도 떠나고 왕궁도 허물어졌을 터,,, 마을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이 더 위대해 보인다.

여름 궁전이라면 더위를 피해 이 곳에서 지냈단 말일텐데 지형상으로 봐서 어떻게 활용되었을지 퍼뜩 이해가 안된다. 형태는 어제 삼둘링곰빠를 지나면서 봤던 황량한 폐허와 로만탕 산꼭대기에 있는 폐허들과 닮은 꼴이다. 그럼 그런 것들도 일종의 왕궁터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 뿐. 황량하고 황폐한 폐허앞에 그저 세월의 무상함만 드는 시간이다.









키말링을 지나 남도곰빠가 있는 마을에 선다. 마을 입구에 새로 스투파를 짓고 있다. 제법 규모가 크다. 한 분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분들은 구경하고 있다. 한 쪽에선 가을걷이를 하고 난 곡초를 메고 온다. 곡초는 사람 키를 훨씬 넘어 거대한 덩어린데 정작 사람은 발만 보인다. 모든 걸 육체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네팔의 현실이다.

마을 뒤 언덕 위 꼭대기에 남도꼼빠가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길이 있는데 경사가 심한 편이다. 걸어가도 되는데 짚차 기사는 올라가도 된다며 시동을 건다. 흔들리고 아찔하고,,,그나마 짧은 시간이라 다행이다.




역시나 스님이 계시지 않은 곰빠다. 가이더가 곰빠를 관리하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온다. 이 곳 무스탕 지역에선 할머니가 곰빠 열쇠를 주로 갖고 계신다.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른에 대한 예우인지,,,

우리의 질문을 다와가 네팔어로 묻고 할머니가 네팔어로 이야기하면 다와가 영어로 이야기하고 그걸 이 사장님이 우리말로 번역한다. 빠드마삼바바와 그 제자들의 계보등에 대한 질문에 할머니는 제대로 대답을 못 한다. 그냥 생활로 믿는 믿음과는 다른 영역이다.

곰빠안은 불이 켜지지 않는다. 가운데 천장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약간의 빛이 들어올 뿐이다. 후레쉬를 켜서 주변을 둘러 보지만 별다른 특징은 없다.



곰빠를 나와 주변을 둘러 본다. 꼼빠 아래 마을이 굽어 보인다. 한창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데 논 가운데 탈곡기 비슷한 게 보인다. 정말 여기가 네팔이라는 게 놀랍다. 얼마 안 가 기계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곰빠 위 산으로 오른다. 우리나라 뒷산같은 건데 꼭대기엔 여전히 타르초가 휘날린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곰빠가 있고 그 주변엔 타르초가 신성한 지역을 알린다. 무스탕 지역의 일반적인 모습들이다.

스투파 있는 곳까지 내려 오니 아까 일하던 사람과 다른 서너 명의 남자들이 차 주위로 모여 든다. 종이와 볼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스투파 건립기부금을 부탁한다. 주머니에 네팔루피가 있어 드리니 영수증을 써 준다. 지금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찾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라도 감사함을 표시했을 거다.







초사르지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티벳(현 중국)과의 국경이 그리 멀지 않다고 한다. 갑자기 국경으로 가 보잔 제안이 있고 다같이 찬성한다. 짚차 기사가 허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난색을 표하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고 하니 일단 가기는 한다. 차는 북쪽을 향해 달린다. 어느 정도 가니 조그만 건물 하나가 있고 그 앞에 책상 하나를 내어 놓고 군인이 앉아 있다. 다와가 이야기하니 선뜻 허락해 준다.

설레는 가슴으로 국경으로 향한다. 평지가 끝나는 부분에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른 붉은 색의 돌이 있어 잠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 보는데 닥마르에서 봤던 붉은 흙돌이다. 근처에 가 보니 흙돌아래 조그만 동굴이 있고 주변은 네모나게 철책을 쳐 놓았다. 방목하는 가축들의 쉼터같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인데 길이 너무 잘 닦였다. 포장은 되지 않았지만 최고의 길이다. 넓기도 하고 길의 표면도 다져지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담벼락같은 것도 만들어 놓았다.

중국이 해 준 길이라는데 그냥 해 줬을리는 없고 네팔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지원해 줬을 터...

여기 말고도 국경에는 중국이 해 준 길이 많이 있단다. 인도와의 경쟁에서 선점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한 고개를 넘으니 끝없는 평원이다. 북으로 보이는 옛 티벳땅은 황량한 평원이다.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들키면 벌금을 엄청 물고 차 면허증도 뺏길 수 있다며 차를 세운다. 우리도 더 이상은 우기면 안 되는 상황.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본다. 끝도 없는 저 황량한 길을 넘어 중국을 피해 티벳인들이 내려왔을텐데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앞쪽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산군은 고개가 높은 만큼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사람의 통행이 없는 이 곳에도 타르초는 휘날리고,,,

티벳인들의 염원이 닿아 독립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늘 가야 할 곳은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 갸르푸 곰빠, 니퓨 곰빠, 시자종케이브, 콘촐링곰빠 네 곳의 입장권을 끊었는데 콘촐링은 거리가 멀어 내일 따로 출발한다.

주변은 붉은 색을 띈 산들이 몰려 있다. 산 위엔 담인지 스투파인지 건물의 잔해같은 게 있고 산 아래쪽엔 멀리서도 여러 개의 동굴들이 있다. 동굴 입구에 세멘트로 벽돌을 쌓은 건 최근에 한 것 같다. 첼레에서 몇 개의 동굴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동굴은 처음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 일단 주변의 갸르푸곰빠부터 들른다.






갸르푸곰빠는 학교도 운영하고 있단다. 지금은 방학이라 학생들은 없다. 곰빠 바로 옆 건물이 학교 건물이라는데 관리자인지 교사인지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다.

곰빠와 학교 건물 위에는 빠드마삼바바의 부인과 함께 왔다는 사슴의 모형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곰빠로 들어 간다. 규모는 큰데 역시 스님은 계시지 않는다. 마당에 들어서니 사각형의 가운데가 뚫려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다. 이층 옥상인 셈인데 마을의 모습이 다 보인다. 집집마다 나무나 풀들을 올려 놓았다. 무스탕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이 곳은 다른 곳보다 깔끔한 편이다. 마을 뒤 산 위에도 여전히 타르초가 흩날리고 있다. 갸르푸 곰빠가 있는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것이다.

내부는 남도곰빠에 비해 규모가 크다. 가운데엔 여전히 빠드마삼바바를 모셨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다.





갸르푸곰빠를 나와 시자종케이브 가기 전에 잠시 롯지에 들러 도시락으로 가져 온 점심을 먹는다. 도시락은 빵 두 개와 쥬스, 삶은 계란 하나, 삶은 감자 하나, 사과 하나로 엄청난 양이다. 롯지를 이용하니 커피와 차를 시켜 함께 먹는다. 난이라는 빵은 밀가루를 반죽해 구운 것인데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 심심하지만 꼭꼭 씹으면 담백하고 재료 원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감자는 작지만 아주 단단하다. 감자 특유의 향이 기분좋게 전해 온다. 사과도 작고 단단한데 단맛보다 신맛이 강하다. 그래도 싱싱해서 좋다. 커피는 알커피를 물에 녹이고 다른 사람은 네팔 차 짜이를 마신다. 점심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시자종케이브로 향한다.


입구에 있던 동굴의 규모와는 완전 다르다. 주변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사방을 둘러싼 흙산들은 웅장하고 생김새는 기묘하다. 비와 바람 등 자연의 솜씨로 빚어낸 조형물에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흙기둥, 깊이를 알 수 없는 흙벽 계곡, 아치형 다리까지 거대한 조형물 전시장이다.

주변의 풍경에 감탄하며 사지종케이브에 다가간다.


100m가 넘어 보이는 깎은 듯한 편편한 벽에 옹기종기 구멍이 나 있다. 찰흙으로 흙장난하고 놀다 일부러 구멍을 내 놓은 것 같다. 입구는 나무를 가지고 새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사지종케이브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개미집같은 구조다. 연결되는 중심부만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높이고 방, 복도는 기어서 다녀야 된다. 긴 복도에 한 쪽으로 방이 만들어져 있다. 제일 아래층에 제일 방이 많다. 이런 식으로 5층까지 올라가 봤다. 이 시대에 아파트식이라니,,,,

제법 넓은 어떤 방은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같은 곳도 있고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의 단에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솥 같은 것을 걸어 음식을 한 것 같은 곳도 있다. 아주 작은 방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 갈 정도도 있다.

밖으로 난 구멍으로 햇볕이 들어 그 주변은 환한데 산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간 방은 후레쉬 없이는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깜깜하다.

어떻게 살았을까? 누가 살았을까? 왜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

모든 건 추정이다. 원장님은 스님들이 사신 것으로 얘기하신다. 

나는 집을 짓기 전 원시 생활 하던 것처럼 일반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다.

'티벳에서 이주해 온다. 당장 살 집은 없다. 적이나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비교적 잘 파지는 땅이니 일단 계단을 파서 올라와 쉴 방을 만든다. 이러다 식구가 늘고 이웃이 늘면서 방이 점점 불어 난다. 그 중엔 스님도 계실 터,,,제일 중요한 곳에 신의 형상을 모신다.' 이게 나의 가설이다.

어쨌던 가슴이 먹먹하다. 한편으론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명은 이어지고 종족은 유지되었다.     

















가슴이 먹먹한 감동으로 돌아 내려 오는데 저 멀리 맞은편 흙기둥에도 흙벽에도 온통 동굴들이다. 유독 이 곳에 동굴이 많은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일반 사람들이 살았다면 농사지을 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주변에는 물이 부족한 것 같은데... 물은 초사르 들어오는 입구쪽에, 동굴과 먼 아래쪽에 물길이 있었다. 그럼 이곳이 전부 수행하는 스님들의 수행터일까?




충격적인 동굴 내부 모습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짚차는 달려 한 마을에 도착한다. 여느 동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종종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뿐,,,




마을을 돌아 약간 오르막을 오르니 곰빠가 있는데 니퓨곰빠다.

잘 다듬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곰빠가 나온다. 곰빠 안으로 들어가니 고맙게도 스님이 계신다. 여기도 딴 곳과 마찬가지로 빠드마삼바바가 중심에 있다. 좌우로 천수관음상, 그리고 불상이 있다. 깔크파의 종정도 모셔져 있다. 모든 게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원장님의 티벳 불교 관련 질문 세례에 막힘없이 대답해 주시는 스님은 이 곳의 스님이자 부속으로 딸린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다. 원장님의 만족도는 100%를 넘어었다.

이 곳도 원래 동굴이고 그 바깥에 곰빠를 지은 셈이다. 곰빠 아래 위로 동굴이 남아 있지만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아래쪽의 동굴만 살펴 보았다. 사지종케이브보다 동굴 수는 작지만 동굴 자체는 엄청나게 큰 편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 오니 넓은 마당에 길다란 건물이 있는데 학교란다. 한 방에 한 학년씩 공부를 하고 있는데 스님이 안내를 해 주신다. 

들어간 교실은 크고 작은 학생들이 섞여 있다. 영어 수업을 막 마친 선생님은 젊고 잘 생긴 유럽형 얼굴이다. 선생님이 나갔는데도 큰 학생이 작은 학생 옆에 앉아 공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아이들의 열의가 뜨겁게 느껴진다. 가방을 매고 나오는 학생이 우리를 보고 영어로 질문을 한다. 눈이 맑고 전혀 스스럼이 없다. 10살 정도 되는 아이인데 발음이 제대로다. 똘망똘망하게 생긴 것으로 보아 우등생일 것이다. 갸르푸곰빠는 방학이라 했는데 여긴 모두 공부하고 있다. 모든 건 학교 재량인 모양이다.  

스님의 이메일 주소를 받고 혹시 한국오면 연락하라는 말씀을 전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약을 보내 주겠다며 주소를 적는다. 이런 학교들이 있어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는다.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다시 로만탕으로 돌아온다. 로만탕의 타르초는 여전히 휘날리고 삶은 이어진다. 로만탕에서의 하루가 가슴뿌듯하게 지나간다. 종교의 의미를 오늘 이 곳에서 제대로 본 것 같다.





어제 샤워 탓에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어 샤워는 하지 않는다.

삶의 한가운데 종교가 있고 그 종교는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종교는 여기 무스탕에서 살아서 피어난다. 종교의 존재 이유를 여기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무한한 긍정, 무한한 감사, 삶에 순종,,,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