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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남미

중남미 여행(3월 23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비냐 델 마르, 발파라이소 투어

중남미 96박 97일 여행(2018년 2월 19일 ~ 5월 26일)

3월 23일 칠레 비냐 델 마르(꽃시계, 역사박물관), 발파라이소(네루다기념관, 벽화거리, 소토마요르광장)

 

아름다운 해변 비냐델마르, 천국의 골짜기, 네루다의 자택 발파라이소


승합차 렌트를 해서 비냐 델 마르로 먼저 간다. 1962년에 만든 스위스산 꽃시계란다.

꽃시계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꽃시계다.

다들 다소 실망한 듯 하지만 나는 5학년때 보았던 용두산공원의 꽃시계에 감탄한 터라 그 때의 기억과 어울려 기분좋게 꽃시계를 감상한다.

이른 아침이라 주변을 쓸고 공원을 관리하는 분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기좋다.

이 곳부터 가장 근사하고 걷기좋은 해변 산책로가 시작된다는데 그냥 차를 타고 역사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스터섬에서 가져온 진짜 모아이석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역사 고고학 박물관. 이 곳을 오게 된 건 이스터섬을 못 간 대신 거기에 있는 진짜 모아이석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홀로 외롭게 박물관을 지키고 선 모아이석상의 진품을 본 것에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며 박물관안으로 들어가 본다.

모아이 제작 과정도 있고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등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앉아있는 미이라의 모습이었다.

몇 백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편히 눕지 못하고 힘들게 앉아 있는 모습이 살아있을 때의 삶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밖으로 나와 박물관 정원을 둘러 보고 점심 식사를 위해 바닷가로 향한다.















남태평양의 바닷물이 너무 맑고 푸르다. 칠레 대표 음식 세비체를 먹을 기대에 잔뜩 부풀기도 한다.

레스토랑 앞 바다에서 잠시 바다 구경을 즐긴 뒤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2층.

각기 다른 종류의 해산물 요리를 시켰는데 요리도 깔끔하고 맛도 상큼하다.

세비체는 약간 시큼한데 이 집은 신맛의 강도가 적당해 기분좋게 먹을 수 있었다.

요리는 테이블에서 시키면 테이블당 따로 계산. 우리는 와인까지 곁들여 만족한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 네루다 자택 방문을 할 것인가 의논하니 나와 다른 한 사람만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삶의 궤적을 보고 꼭 보고 싶다니 함께 가 준단다. 

결국 둘만 제법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에서 휴식한다.


네루다는 칠레 민중 시인으로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공산주의자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미움을 받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국민을 향한 그의 시나 사상이 국민의 존경을 받게 되고 그 정신은 촛불 혁명으로 칠레 민주주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단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초록색으로 글을 썼다고도 하는데 볼 수는 없었다.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이슬라 네그라의 세 곳에 집이 있는데 이 곳은 바다를 내려 보며 새해 폭죽을 보기 위해 집을 지었단다. 집이름 '라 세바스티아나'로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여행하며 모으고 사들였던 소장품들 - 예술 작품, 그릇, 가구, 지도 - 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생활 전반을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다.

영어로 번역되는 이어폰을 주는데 영어가 안 되니 그냥 눈으로만 전시된 전시품을 보고 내려 온다.

실내는 사진 촬영도 안 되는데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건 사진이 공개되면 아무도 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덕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건물들과 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집을 세 채나 소유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예술품을 사 들이고 하는 그의 일련의 행적과 가난하고 불쌍한 칠레 국민들의 삶을 대변했다는 그의 글이 매치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다소 혼란스럽다.

가난한 국민을 위한다고 꼭 가난하게 살아야 되나?

부자로 살아도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쓰고 행동을 하면 괜찮은가?

다소 혼란스럽다. 그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단 생각을 한다.


집에서 나와 마당에 내려서는데 집 앞 나무에 보라색꽃을 보라는 말에 하늘을 보고 걷다 발을 헛디뎌 꼬꾸라졌다. 카메라는 튕겨 나가고 발을 접질렀다. 다행히 밧데리 커버만 떨어지고 발목은 시큼거리는데 그리 심하진 않다.











발파라이소의 명물인 아센소르를 타는 대신 언덕 위에서 가파른 길을 구불구불 내려온다.

길 가장자리 건물들의 벽화가 재미있다. 그러다 다시 쁘랏부두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해군청사를 비롯해 몇몇의 현대식 건물들이 있고 그 아래 골목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발목도 아프고 해서 주변에 있는 몇 개의 벽화만 둘러 보고 차를 타고 소토마요르광장으로 내려 간다.


1536년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태평양에 면한 제1의 무역항, 발파라이소

항구가 생기자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집 지을 자재가 부족하여 배에서 나온 철판을 주워 집을 짓기 시작했단다. 그러니 외관이 너무 보기 싫어 그걸 가리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그것이 벽화의 시작이 되고 지금은 예술 작품이자 발파라이소의 상징이 되었단다.


몇몇의 일행들은 벽화 구경에 아센소르 구경에 소토마요르광장의 건축물 구경에 여념이 없다.

나와 또 몇은 야외 까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각자 나름의 스타일로 여행을 즐긴다.













다시 산티아고 호텔로 돌아가 한방병원이 있어 알아 본다는데 주말이라 쉰단다.

일행 중 한 분에게 야매로 침을 맞고 파스를 붙이고 하루를 견뎌보기로 한다.

그나마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 더 나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