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7개국 38일 여행(2019. 6. 22 ~ 2019. 7. 29)
킬리만자로, 원시를 품다
오늘은 호롬보헛에서 키보헛까지 가서 밤 11시에 킬리만자로 정상을 갔다 내려와 잠시 휴식 후 다시 호롬보헛까지 돌아오는 힘들고 긴 여정이다.아침은 여전히 삶은 밥 국물과 빵 조금, 그리고 과일만 먹는다.식사 후 소화제 두 알을 먹고 길을 나선다.식사량을 줄였지만 그리 피곤하진 않은 게 킬리만자로가 가진 에너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발 아래는 운무가 자욱하고 마웬지봉을 감싸는 구름은 정상을 떠나지 않고 머문다.일정이 길어 힘든 여정이 예고된 만큼 화이팅을 외치고 전의(?)를 다진다.가이더 존슨이 앞장서고 대장 이노는 다이야몬과 뒤에서 걸어오며 수다삼매경이다.
어제 지브라락에서 내려왔던 세네시오가 있는 지점을 넘어서자 킬리만자로가 눈앞에 나타난다.'하얗게 빛나는'이라는 킬리만자로 이름이 무색하게 한 쪽 모서리만 하얗게 드러나는 킬리만자로봉을 보며 저 곳 어디쯤에 있을 최고봉을 그린다. 마웬지봉은 구름이 넘나들며 연방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데 킬리만자로봉은 구름 하나 없이 내내 같은 모습으로 조금씩 크게 다가온다. 곧 무릎보다 낮은, 나무라고 이름붙이기도 애매한 식물들 군락이 나타나더니 점점 식물의 수도 줄어들며 황톳빛의 광야가 나타난다.
한 개의 거대한 킬리만자로봉 앞엔 키낮은 오름들이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점점 식물은 사라지고 사막에서나 있을 법한 깡마른 풀들이 간혹 땅바닥에 붙어 힘겨운 생존을 유지한다.
곧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 황폐한 자갈 지대 평원이 펼쳐지고 화산 분출시 날아 왔을 듯한 바위와 돌, 자갈들이 주변에 널린다.
끝없는 황폐함 속에 날아갈 듯 불어오는 자욱한 모래 바람
킬리만자로봉앞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하면서도 황량한 자갈 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누군가가 쌓았을 돌탑이 그나마 눈길을 보낼 수 있는 곳
이 자연 앞에 그저 황망하고 아연하다.
킬리만자로봉 아래 까마득히 키보헛이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똑같은 풍경을 보고 걷자니 다리에 힘이 빠지고 지친다.
조금 큰 바위들이 뭉쳐 있는 곳에 화장실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귀여운 연락책이 쥬스를 들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
달콤한 망고쥬스가 몸의 기운을 돋군다.
바위에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키보헛으로 향한다.
입을 다물고 자기 체력에 맞게 걸어간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걷고 있다 가끔 고개 들어 거리만 가늠해 본다.
원시의 세계, 킬리만자로 생성의 현장에 다다른 느낌이다.
깊은 숨을 들이쉬며 소화가 되지 않는 위에 산소를 불어 넣는다.
오롯이 혼자의 길, 여기선 모두 혼자가 된다.
결국 도착한 키보헛, 인증샷만 조용히 남긴다.
구름이 내려앉았다 올랐다 하는 사이 마웬지봉도 킬리만자로봉도 변화무쌍하다.
잠깐 인증석 앞에 앉아 주변을 살핀다.
빈 터에 텐트를 치기도 하는데 포터용인 것 같다. 여행객들이 산으로 올라가면 포터들은 여기서 하루 쉬게 되는데 그들의 쉼터인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인 것 같기도 한다.
물이 없는 곳인데 물은 어떻게 조달되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빠르다.
리셉션에 가서 신고를 하고 안내해주는 롯지로 들어가니 따뜻한 차를 가져다 준다.
가이더 이노가 와서 오늘 일정을 얘기해 주는데 11시에 오르기로 한 것을 한 시간 앞당겨 10시에 오르기로 하고 5시에 저녁을 먹잔다.
그 때까지 휴식을 취하란다.
잠시 쉬고 있는데 노래 소리가 들린다.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데 독일인가에서 온 팀의 현지인팀들이 이벤트를 해 준다.
여태껏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 해 주던 것으로 키보헛에서의 이벤트는 더욱 힘을 돋궈 준다.
그들의 노래 소리에 나도 한껏 취한다.
여행객이 열 다섯 명 정도 되니 포터, 요리, 가이더까지 삼십여 명의 현지인들과 움직이는 셈이다.
되도록 움직이지 말라는데 유럽 사람들은 고산증도 없는지 함께 어울리며 몸을 움직인다.
덕분에 나도 힘을 얻는다.
산에 오를 옷으로 갈아 입고 쉴려고 누웠는데 편치가 않다.
결국 일어나 다시 주변을 살핀다.
키보헛 뒤 바위에 올라 보기도 하고 롯지 옆 바위 사이를 걸어 보기도 하는데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자꾸 화장실에 가게 된다.
느낌은 있는데 볼일은 못 본다.
화장실을 지키는 현지인은 사람이 나가고 나면 다시 깨끗히 바닥을 닦아 놓는다.
괜히 드나드는 게 미안하다. 다시 숨을 깊이 들어쉬며 속을 좀 달래 본다.
5시에 저녁이 나온다. 힘내라고 라면을 끓여 왔는데 속이 더 불편하다. 라면 국물만 조금 먹고 타이레놀 한 알과 소화제 두 알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토가 나온다.
방을 뛰쳐 나가 화장실까지 가지 못하고 건물바깥에서 구토를 한다.
아까 먹었던 라면 국물과 약까지 다 토해내고 다시 돌아와 안정을 취해 본다.
속을 따뜻하게 하면 좀 나을까 싶어 따뜻한 물을 먹었는데 그것까지 다 토해 낸다.
누워도 편치 않아 그냥 앉은 채 10시가 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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