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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키르키스스탄

(등산 200봉) 키르기스스탄 아라콜패스(3900m)

버킷리스트로 정한 200봉 오르기!

그 끝이 키르기스스탄 아라콜패스이다. 나와의 약속이라 나 혼자 감격하고 나 혼자 대견해 하며 아라콜패스를 넘었다.

혜초여행사를 통해 '천산산맥 알틴아라샨 아라콜패스 라운딩 9일' 코스를 가며 날씨가 받쳐 주기를 고대했다. 대만에서 날씨가 받쳐 주었더라면 옥산이 200봉이 되는 것이었는데 억수같은 비로 산장에서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이 무척 컸었다.

전 일정 8박 9일 중 아라콜패스를 넘는 건 2박 3일 일정, 비교적 간단한 산행인 편이다.

우선 시내에서 알틴아라샨 산장까지는 구소련 군용차량을 개조한 트럭을 타고 올랐다. 울퉁불퉁한 길보다 훨씬 더 극심한 움직임이었지만 주변 풍광이 좋고 여행의 들뜬 마음으로 마냥 즐거웠다.

고도가 높아갈수록 트럭이 힘들어하고,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르자 차라리 걷기로 하였다. 향긋한 꽃내음을 담은 공기, 수를 셀 수 없는 다양한 야생화, 저 멀리 힘차게 뻗은 가문비나무 숲, 힘찬 함성을 딛고 내닫는 계곡물소리, 그리고 간간히 양, 소, 말떼의 평화로운 걸음과 저 멀리 설산,,,,

감탄밖에 할 수 없는 이국적 풍치에 그저 넋을 놓고 카메라에 옮겨 담기 바빴다. 발걸음을 서서히 알리아르차 산장으로 향하다 고개마루에 섰을 때 저 아래로 보이는 풍경에 그저 입이 턱 벌어질 지경이었다. 그 황홀한 풍경 속에 나무로 지은 산장 몇 집과 전통가옥 유르타의 모습이 나타났다. 간간히 비를 뿌렸지만 금방 지나가다 흩뿌리다를 반복했다. 산장에 도착해서 보니 아무 시설 없는 방에 빼곡이 4개의 침대가 앞 뒤로 다닥다닥 붙어 있고 맞은 편에는 6개의 침대가 앞 뒤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조그만 산장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온천이 나오는 지역이었다. 단지 온천물에만 담갔는데 비누칠한 듯 매끈매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같이 간 누르빅의 김치찌개가 저녁 주메뉴였다. 현지사장님이 직접 만든 김치로 찌개를 끓인데다 실습도 강하게 시켜서 그런지 한국에서 먹는 김치찌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맛있었다.



한 바탕 비가 쓸고 간 뒤 쌍무지개가 떴다. 난생처음 보는 쌍무지개를 정말 잘 닮고 싶어 카메라를 이리저리 맞춰 보았지만 완전한 무지개는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이런 무지개를 볼 수 있으랴? 대만족,,,,

해가 지자 딱히 할 일이 없어 잠을 청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대비가 내리고 간간히 천둥 번개까지 치기도 했다. 날씨가 개이길 빌 수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이 되자 거짓말같이 날이 맑았다. 누르빅이 끓여준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고소 적응차 2시간 정도 앙아르초 초원을 올랐다. 말을 먹이며 사는 목장가족, 양떼의 행진,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제 내려가 짐을 꾸리고 3200m 캠프지까지 오르는 산행길,,,,

어제밤 내린 비로 길은 많이 질척거렸다. 산악가이드 닉이 앞장서 걸었지만 그의 발걸음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계곡은 물이 불어 닉이 놓아 준 돌다리를 위태위태하게 지났고 또 간간히 비까지 뿌려 가는 길이 만만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한 걸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익히 아는 터,,,,

드디어 저 멀리 캠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유르타 2개가 먼저 눈에 들어 왔고 제법 큰 텐트에 노란 2인용 텐트까지,,,드디어 오늘 우리가 묵을 곳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코 앞에서 우두둑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부러 비옷을 들어 우박을 받아 보니 동글동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숙소는 2인용 텐트와 혼숙 유르타였다. 나는 시킴 여행을 하며 텐트 경험이 있어 유르타를 희망했고 안은 난로가 있고 넓기도 해 하룻밤 지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누르빅과 현지가이드 루쓰란이 심혈을 기울인 양꼬치 구이로 환상적인 저녁을 먹었지만 비가 거침없이 내리고 가이드의 걱정스런 의논,,,,"내일 넘지 말고 돌아 내려오자, 넘는 길이 너덜지대라 미끄럽고 위험하다. 저번 팀 다친 사람 있다." 다들 가이드의 설명대로 따르는 분위기,,,하지만 포항사장님의 제안으로 일단 내일 아침에 결정하기로 정했다.

정말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텐트에서 자던 두 팀이 더 유르타로 오는 바람에 8명이 빽빽하게 지냈지만 개인 침낭이 있어 불편하진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침이 되니 말짱했다. 결국 포항부부와 나만 아라콜패스를 넘기로 했다.


양고기 볶음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행동식을 챙긴 후 저 멀리 바위가 보이는 아라콜패스로 향했다. 700m를 오르는 길인데다 계속 오르막이고 마지막에는 자갈길을 200여m 오르게 되어 있어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기까지 해 여간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직 녹지 않은 눈밭을 지나 자갈길을 지나 조심조심 정상으로 나아갔다. 68세 어르신 두 분은 일찍 포기하고 캠프지로 내려 갔고 광주 갑장도 정상 얼마 못 미쳐 돌아 내려갔다.


그러나 정상은 새로움이었다. 진한 에머랄드빛 아라콜호수를 설산이 빙 둘렀다. 호수는 하늘색도 아니었고 오롯이 자기만의 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라콜신령이시여, 200봉을 여기서 맞이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비가 조금 더 늦게까지 내렸더라도 미끄러워 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던 감사와 환희와 행복,,,,모든 즐거움의 감정을 다 쏟아 부었다.


내려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정상에서 오래 지체할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목만 축이고 호수를 내려다보며 아라콜패스를 넘었다. 크고 작은 너덜들이 간혹 미끄럽기도 하고, 발 놓기가 애매하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관광객 3명에 가이드 3명이 함께 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란다. 사고나면 업고 내려와야 된다고,,,,

아라콜호수 끝자락에 빨간색 텐트를 친 외국인이 있다. 서양인들은 거의 백패킹,,,젊기도 하지만 부럽다. 호수 바로 곁에서 밤을 지새우고 알르아르차로 넘어간다. 대부분 우리와 반대로 산을 오르고 있는데 이게 정코스인 것 같다. 어쨌던 내려오는 길은 아라콜호수에서 내려오는 빙하수계곡에 온갖 꽃들,,, 빙하수를 먹어 보기도 하고 발을 담가 보기도 한다. 맛은 청량하다. 발은 시리다. 그러나 행복하다.


5시간이 넘는 길을 너덜을 걸었더니 종아리가 뻐근하다. 거의 평지에 다다르니 이제 키가 내 가슴높이만큼 오는 꽃들의 향연이다. 기분좋게 마무리를 할 즈음 산꾼들을 위한 바가 마련되어 있다. 간단하게 차와 과자로 입가심을 한다. 시간만 더 있다면 그냥 하루쯤 자고 갔으면 좋겠다. 이제 평지,,,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지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있는 힘을 다해 따라 잡고 불어난 계곡물 위 나무 다리를 건너니 평원이다. 원래는 여기에 차량이 와서 데리고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물이 불어 길이 유실되어 걸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흙길이라 걷기엔 딱 좋다. 그러나 아침부터 8시간을 넘게 걸어온 터라 다소 피곤하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나른다. 그래, 한 번 날라 보자. 있는 힘껏 팔을 흔들고 한참을 걸었더니 정말 희한하게도 다리고 풀리더니 걸음이 저절로 걸어졌다. 새로운 경험이다. 평지를 흐르는 S자 계곡물이 영화의 한 장면이다. 타고 갔으면 보자 못했을 풍경이다. 2시간 정도 걸었을 때 걷는 길마저 물이 들어 걸을 수가 없었다. 산악가이드 닉이 길이 없는 산을 오른다. 거의 직벽이다. 짧은 스틱으로 흙을 짚으며 오르긴 했지만 아찔아찔,,,,

정말 다른 일행이 함께 왔으면 낭패를 볼 수 있을 상황이다.

길을 만들어 오르니 다시 새로운 길과 만난다. 길은 질퍽거렸지만 만들어진 길이 주는 평안함을 만끽할 수 있다. 차가 오기로 했다는 지점에 다다랐는데도 차는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걷는다. 군데군데 길이 물에 잠겼다. 가이드의 걱정이 이해가 된다. 그래도 넘어오길 너무 잘했다.

드뎌 트럭이 보이기 시작한다. 트럭을 타고서도 30분 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겨울 스키객들의 천국이란 카프리즈호텔에 도착,,,,행복하고 보람있고 황홀한 하루를 사우나와 온천으로 마무리,,,,,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