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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

<중러 항일 유적 답사 여행> 중러세관 크라스키노전망대, 단지동맹비

이제 중국에서 러시아로 넘어 간다. 훈춘 장영자세관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 버스를 갈아 타기 위해 기다린다. 러시아 버스로 경찰이 올라와 조사를 하고 내려 간다. 결코 기분 좋은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절차,,,그렇게 크라스키노 세관을 지나고 전망대로 향한다.

 

 

크라스키노 전망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

'1938년 일본군인 한 명이 러시아에 들어 오고 러시아사람들이 일본군인을 죽이며 전쟁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이긴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러시아 중위 '크라스키노'가 전사한다. 이 군인의 이름을 기리며 이 지역을 크라스키노로 정한다.'

전망대의 인물은 크라스키노는 아니란다. 그냥 그 전쟁에서 싸웠던 군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 인물이란다. 

 

 

저 아래 지역이 하산지역인데 초기 이주한국인이 많이 거주해 있었는데 스탈린의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저 멀리 중국과 북한이 갈리는 갈림길도 있고 발해성지, 염주성, 연추마을을 관망할 수 있다. 한말의병운동의 근거지 상얀치해도 있다.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낸 최재형 선생으로부터 지원과 훈련을 받은 안중근과 11명의 투사들은 1909년 3월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다. 이 때 국권을 피탈한 원훙으로 지목되던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우고 3년 내에 성사시키겠다면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피로써 항일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안중근은 그 해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10년 3월 26일 사형당했다. 체포된 안중근은 자신 외에 단지동맹 가담자가 11명이 더 있다는 말만 하고,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11명에 대하여 전해지는 바는 없다. 다만, 안중근 외에 엄인섭, 김태훈,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길벗투어 안내책자 인용)

 

 

단지동맹비옆엔 '영원한 행복'이 꽃말인 '자주천인국(에키네시아)'이 피어 있다. 열 한분의 영령이 이 곳에서라도 영원히 행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