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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

<중러 항일 유적 답사 여행> 시베리아횡단열차, 최재형고택, 이상설선생유허비, 고려인문화센터, 발해 옛 성지

무슨 그리움처럼 설레이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간다. 오늘은 체험차 1시간 거리에 있는 우골나야까지만 간다. 체험 열차는 본 열차보다 시설이 깨끗하고 좋은 편이란다. 9월 바이칼호수 여행을 기대해 본다.

 

 

최재형 선생 고택

러시아 한인 사회에 큰 영향력과 존경을 받은 최재형.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이주하여 군대물자 납품, 부동산 등 사업으로 큰 돌을 벌었다. 그 돈으로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추진했다. 최재형의 딸 올가의 증언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는 거사 전 최재형 집에서 거기하며 사격 연습등을 했고, 거사 후 안중근 부인 김아려 여사도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1920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학살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정부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으며 1995년 전달되었다. 

지금은 새롭게 개축중이다. 안쪽 마당쪽은 공사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돌아 오는 우스리스크 거리 풍경. 한적한 러시아 중소도시 모습. 근처 공원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다. 리무진 차량이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다.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둘러보고 들른 곳, 라즈들리노예 기차역.

1937년 9월 스탈린 붉은 군대는 한인지도자 2500명을 일본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사살한다. 그 후 9월 21일부터 두 달 동안 17000여명의 연해주 고려인들은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40일간 6000km를 추위와 배고픔으로 화물칸에서 반 이상이 죽었으며 재정 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유명했던 반 사막지대에서 겨울을 나면서 또 5분의 1이 죽었단다. 힘없는 조국을 가진 불쌍한 백성들. 가슴이 먹먹하다. 그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이 역도 얼마 있으면 헐린단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어째야 되는지 위정자는 어째야 되는지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민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이상설 선생 유허비로 향한다. 이상설 선생인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망명하여 만주 용정에서 민족학교 서전서숙을 건립하고 1907년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러 파견된다. 그러나 일본의 훼방으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1914년 대한광복정부의 정통령으로 취임하고 독립을 위해 일했으나 니콜리스크에서 병으로 48세에 서거한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혼인들 어찌 감히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글을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 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하고 수이푼강물에 뿌린다. 유허비는 시신이 뿌려진 자리에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웠다.

우리가 간 날은 비가 많이 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겨우 대표 두 분만 조화를 들고 들어가시고 우리는 도로에서 묵념을 드렸다. 당신들이 계셔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도착한 곳이 고려인문화센터는 2009년 국민성금으로 건립됐다. 내부에는 사진, 영상을 중심으로 한 역사관을 비롯해 다양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1860년대부터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의 삶과 기억을 소개하고 있다. 연해주 제2의 도시인 우수리스크는 당시 국외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강제 이주가 시작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발해의 옛 성지 '끄라스노야로프 산성'을 찾아 가는 길, 드넓은 언덕 위로 오르면 발해의 옛 성지가 보인다.

 

 

저 아래 아득하고 광활한 들판에 발해의 옛 성지가 있었단다. 물이 있고 넓은 목축 지역이라 먹고 살긴 힘들지 않았겠다. 그런데 적은 어떻게 물리쳤을까?

가까이 가서 보진 못했지만 성지 옆을 흐르는 강이 수이푼 강이고 그 강이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이 곳이 발해의 성지임을 증명해 주었다고 한다. 발해의 넓었던 영토를 실감하고 푸른 초원에서 살아가긴 힘들지 않았겠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내려오는 길에 야생 도라지를 만났다. 1000년 전 여기에도 도라지를 심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