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 14박 15일 네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9월 30일 다섯째 날, 남체에서 사나사, 풍기탱가를 거쳐 탱보체까지
* 남체바자르 3440m, 사나사 3550m, 풍기탱가 3250m, 탱보체 3860m
* 약 420m의 고도, 걸린 시간 7시간
트레킹 사흘째 아침
방에서 밖을 내다 보니 완전 안개로 뽀얗다. 밤새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렸단다. 난 자느라 전혀 알지 못했다. 아침에 남체 전경을 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밀려 온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금방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냉큼 광각렌즈를 챙겨 남체 입구로 달려 내려갔다. 좌악 남체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 온다. 작품 사진이랄 것도 없는 기록 사진,,,그래도 담고 싶은 걸 담아 기분이 좋다.
아침 시간에 늦을까 봐 부랴부랴 올라 오니 어제 그 그림 가게에서 원장님과 윤선생님이 그림을 보고 계신다. 결국 주인 다시 불러 흥정하고 500불에 그린타라를 구입했다. 색이 은은하고 정말 가치있게 보이는 그린타라이다.
롯지에 올라 오니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 시원한 무국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냉큼 들이키고 세수대신 물휴지로 얼굴을 닦고 선크림만 대강 바르고 8시 20분 탱보체를 향해 출발한다.
<방에 붙어 있는 안내문,,,,샤워는 안 하는 게 좋다. 중간중간 찬물이라 잘못하면 고소 걸리기 딱 좋다>
우리가 묵은 프렌드쉽 롯지 뒤 언덕으로 올라간다.
태양은 강렬했고 찬란했다. 구름이 걷혀 나가면서 안개 속에서 로체, 놉체, 아마다블람이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7, 8부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전망은 툭 트였다. 길은 넓지 않았지만 잘 닦여 있었고 걷기엔 편안했다. 산굽이를 돌아 얼마 안 가 고소 증세가 온 유럽(?) 아가씨가 길바닥에 앉아 또 울고 있다.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옆에서 돌봐주기는 하는데 또 민소매다. "옷 입혀라, 따뜻한 물 먹여라, 타이레놀 먹여라" 이야기해도 안 듣는다. 의사라고 이야기했는데 들었는진 모르겠다. 계속 아프면 남체 다시 내려가면 되니 별로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난 아직 고소를 겪지 못해 고통을 알지 못하는데 경험자 이사장님의 얘기가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단다. 빨리 고도가 낮은데로 내려 가는게 제일 상책이라고,,,,
저 멀리 구부러지는 산길의 끝에 스투파 하나가 서 있다. 여긴 고개 마루나 길모퉁이엔 어김없이 초르텐이나 스투파 등이 서 있다. 이 길 끝에도 아스라히 스투파의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 설산과 스투파, 구불구불 곡선의 길이 한 폭의 사진이다.
모퉁이 길을 도착할 즈음 즈음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짐바구니를 내리고 쉬고 있다. 바구니 안은 온통 야크똥이다. 맨손으로 똥을 집었는지 손에도 야크똥이 말라 붙어 있다. 원장님께서 돈을 주시니 수줍은 듯 살짝 미소를 띄며 받는다. 미안하지만 사진을 부탁하고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네들의 녹록지 않은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퉁이를 돌아 가니 혼자서 공사를 하고 있다. 대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가 걷고 있는 네팔에서의 모든 길이 저런 사람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졌으리라.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고개 마루에서 턱 '돈내셩'이 나타났다. 혼자 일하니 힘들다고 도와 주란다. 박스에 돈을 넣으니 흔쾌히 사진을 찍어 준다. 공사하는 남자의 부모인지 나이는 들어 보이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까맣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보시를 하고 있어 수업은 상당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이다. 내리막의 끝에 사나사가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교차 지점으로 트래커들이 많이 붐비고 각종 악세사리 등을 가판대에서 판매하고 있다. 팔찌, 목걸이 등 장신구가 대부분이고 모자, 스카프 등도 다소 보인다. 우리 일행은 롯지에서 잠시 쉬며 따뜻한 오렌지쥬스와 네팔 크레커를 사서 먹는다. 따뜻한 오렌지도 괜찮았고 크레커도 맛있었다. 윤샘은 우리 돈 7000원에 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햇빛이 강렬해 꼭 필요한 모자다.
사나사에서 계속 내리막, 계곡을 건너는 다리 바로 아래 풍기탱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요리팀이 수제비를 끓였다. 야외라 햇볕은 강렬했고 도로가라 사람들이 지나 다녔다. 그럼에도 수제비는 술술 잘 넘어갔다. 식사 후 잠깐 원장님이 오수를 즐기는 동안 각자 20분여를 쉬고 다시 출발했다.
풍기탱가에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오후가 되면 찾아 오는 안개속이지만 길은 잘 닦여 있다. 주변의 푸른 나무는 랄리구라스같다. 5월 시킴에서의 랄리구라스 기억으로 상상이 충분하다. 완전한 꽃길,,,황홀했을 랄리구라스의 군락과 향기,,,마치 5월의 이 길을 걷는 듯 황홀하다. 랄리구라스가 끝나니 향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아열대 기후의 영향이리라. 어쨌던 그늘 속에서 걷게 되었고 계속 오르막이라 호흡에 집중하게 되면서 말을 줄였다. 걸음과 호흡의 리듬을 맞추니 신기하게도 발이 저절로 옮겨지고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나타난 탱보체 입구,,,,
입구를 잠깐 둘러 보고 포토존을 정한 뒤 일행을 기다리는데 여간해서 오지를 않는다. 이상하다고 여길 즈음 앞에서 지현씨와 원장님이 오신다. 다른 길이 있었단다. 길에 집중하느라 주위를 둘러 보지 않고 땅만 보고 와서 그런 모양이다.
탱보체는 자욱한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입구를 지나 스투파가 나타나고 경전이 새겨진 돌로 세워진 또 다른 모습의 스투파가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저 멀리 설산은 안개 속에 잠겨 있고 탱보체의 위엄있는 자태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내려놓은 뒤 꼼빠로 향한다. 네팔에서 본 가장 큰 규모의 꼼빠다. 삼십여명의 스님이 공부를 하고 계셨다는데 지금은 열 분 정도밖에 안 계신단다.
스님의 공부방이 개별로 있는데 스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꼼빠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구루린포체의 발자국'(분명하지 않다.) 흔적이 있는 돌이 놓여져 있고 양쪽으로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간다. 내부는 여느 꼼빠처럼 구루린포체를 모시고 있다. 명상한다고 자리에 앉았는데 땀이 식어 한기가 올라 온다. 추우면 고소 올까봐 조용히 일어나 롯지로 돌아왔다.
저녁 먹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식당안의 우리 테이블로 가서 잠깐 훌라를 한다. 식당안은 완전 만원이다. 우리처럼 훌라하는 팀도 있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팀도 있는데 중국 젊은이들이 있는 테이블은 목소리가 매우 크다. 저녁으로 닭볶음탕과 삶은 양배추쌈을 먹고 다시 훌라,,,,
중국 애들은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환호하고,,,그야말로 롯지 안이 떠나갈 듯하다.
그래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다. 롯지 술을 5병쯤 마시니 아가씨 하나는 취해서 토하고,,,그야말로 난리 부르스,,,젊어서 부리는 객기라고 여겨도 내일 잘 갈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은 된다.
9시 30분까지 훌라 하고 자려고 하는데 살짝 춥다. 3800m한기가 올라 온다. 온수주머니를 발바닥으로 보내고 핫팩을 배에 붙이고 침낭 안으로 들어가 이불까지 덮으니 금방 따뜻해진다.
오늘의 새로운 발견은 걷기, 걷기 명상이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니 단전에서 기가 돌고 그 기운으로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졌다. 탱보체에 도착했을 때 이런 느낌을 계속 갖고 싶어 조금 더 걸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체에서 사나사까지의 훤한 길, 사나사에서 탱보체까지 숲 속 길, 두 길의 길맛과 걷기 맛,,,오늘은 색다른 맛을 만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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