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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

(등산206봉) 듀크라패스, 네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딩보체에서 투크라를 거쳐 로보체까지)

2017년 9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 14박 15일 네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10월 2일 일곱째 날, 딩보체에서 듀크라를 거쳐 로보체까지

* 딩보체 4410m, 듀크라 4620m, 듀크라패스 4830m, 로보체 4910m

* 약 500m의 고도, 걸린 시간 5시간


트레킹 닷새째

오늘도 역시 5시 따뜻한 블랙티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소 증세는 어제 약을 먹고 나서 나아진 것 같은데 밥맛이 조금 없다. 다들 잘 넘어가는 누룽지로 배를 채운다. 

아침을 먹기 전 밖으로 나가 보니 산정상부는 구름이 가리고 있으나 날은 맑은 편이다.

정면의 롯체, 왼쪽의 촐라체, 뒷쪽의 아마다블람이 구름 속에 가려 졌고 에베레스트는 여기선 조망이 되지 않는다.

7시에 롯지를 나선다. 딩보체 앞을 흐르는 계곡을 가로질러 언덕으로 올라간다. 고개 마루를 넘으니 이내 광활한 평원이다. 나무는 향나무과인데 바닥에 납작 업드려있다. 그 외 키 작은 몇몇의 풀들이 붉고 노란 색을 띄며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산마루에는 다른 곳과 비슷하게 초르텐과 룽따로 장식되어 있지만 황량한 산마루라 그런지 감흥이 다르게 다가왔다. 바람은 더 세게 불어 타르초는 소리내며 흔들리고 있다. 타르초의 불경에 담긴 의미가 바람에 실려 훨씬 더 멀리 더 진하게 전달되어 질 것 같다. 이 고개를 넘으니 더욱 넓고 황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평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고개를 숙여 들여다 보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이름모를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내내 생각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히말라야 꽃은 우리 풀꽃보다는 작지만 화려해서 오래 보지 않아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잠깐잠깐 쉴 때마다 고개 숙여 꽃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시리도록 따뜻해왔다.











저 멀리 촐라초(초-호수)가 보이고 그 위로 살짝 무지개가 떴다. 본래 가기로 했던 촐라패스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구름에 가려 촐라체(체-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무지개를 보여준 게 어디냐? 감사한 마음으로 꽃과 함께 평원을 걸어간다.

듀크라로 갈수록 향나무도 점점 적어지고 바닥에 붙은 풀만 있는 평원이 전개된다. 왼쪽편에 있는 계곡은 EBC강이란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이름을 그렇게 붙인 모양이다. 조금 더 옛날엔 여기도 눈에 덮혀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이 점점 잔돌이 많아지는데 얼음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잘게 쪼개진 게 아닐까 짐작만 해 본다. 서서히 삭막한 풍경이 진행된다. 그래도 4600m고지에 꽃은 피고 자연의 위대함에 잠시 숙연해진다. 가도 가도 펼쳐지는 평원. 저 멀리 보이는 롯체는 아무리 가도 그대로다. 끝없는 근원으로 들어가는 길같다.





돌인지 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계곡을 넘고 하얀 자갈이 잔뜩 깔린 너덜지대를 한 참 걸어야 했다. 식물은 이끼에 가까웠고 허옇게 돌만 드러난 곳도 많아졌다. 나무가 없고 햇볕은 뜨겁고 전기 사정도 좋지 않아선지 태양열 기구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직접 음식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가운데 냄비가 올려져 있어 신기했다.

황량한 자갈길 속에 있는 듀크라에 도착한 건 10시경. 너무 이르지만 여기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단다. 네팔 감자와 계란을 삶아 왔는데 어릴 때 먹던 감자맛이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모두 맛있게 먹는다. 그리곤 점심으로 고맙게도 라면을 끓여 왔다. 완전 우리나라 맛이다. 물어 보니 삼양라면,,,잘 끓이기도 했지만 국물이 있는 게 잘 넘어가 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면서 일정이 바뀌었다. 원장님께서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보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고 칼라파트라를 가자는 것이다. 아침에 포터들은 이미 본래의 롯지로 떠났고 요리팀도 먼저 떠난 상태였다. 난 이미 예약된 롯지와의 약속과 그 짐을 지고 다시 오게 될 포터들의 수고때문에 그냥 본래대로 했으면 했지만 이사장님은 문제 없다고 현지가이더 다와를 로보체로 보내 롯지를 예약하게 하고 산악가이더 장부를 본래 예약된 롯지로 보내 포터들을 데려오게 했다. 이래도 되는 게 네팔이란다. 어쨌던 11시 30분경 우리끼리 로보체로 향했다. 

듀크라롯지를 나오며 바로 오르막이다. 그리 험하진 않지만 돌길을 걸어야 한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더 천천히 걸었다. 고개 정상은 듀크라패스 4830m지점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

산마루에 오르는 길은 온통 자갈밭이다. 바위마다 조그만 돌탑들을 쌓았다. 우리나라 산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쌓았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돌탑을 지나니 산마루가 나타나는데 온통 초르텐으로 뒤덮었다. 뿌연 구름 속이라 분위기가 더욱 스산한 느낌이다.

타르초를 두른 돌무더기 초르텐은 네팔 사람들에 의한 것이겠고 나머지는 이 곳을 찾았다 세상을 달리한 사람들을 위해 각 나라에서 설치한 초르텐이었다. 일종의 위령탑, 무덤들인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하나하나 돌아 보며 명복을 빌다 우리나라 초르텐도 발견한다. 송원빈, 고등학생이다. 그의 부모들과 주위 사람들의 아픈 마음이 진하게 다가오며 마음이 시리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히말라야 품에 안겼으니 행복할 것도 같단 생각이 든다. '행복하게 잘 주무시라'












고개를 넘으니 이제 황량하다. 고개를 숙여도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에델바이스는 계속 보이는데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고도가 높을수록 바닥에 붙어 있다. 돌길을 한참 걷다 에베레스트 지도가 그려진 평평한 바위를 만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길에 함께 한 사람들이 이름이 적혀 있는 바위. 원장님도 몇 년 전 이 바위에 누워 명상을 했다며 누워 보란다. 누워 호흡을 가다듬으니 너무 편안하다. 윤샘도 누워 보신다. 그리곤 한쪽 끝에 돌탑을 쌓는다.

곡물은 여태껏 보지 못한 투명한 물이다. 바로 빙하수, 먹어도 괜찮다 했지만 혹시나 배탈날까 그냥 간다. 작은 고개를 살짝 넘으니 드디어 보체다. 너무 반가웠지만 고소 증세가 심해질까봐 조심조심 조용히 걷는다. 다와가 예약한 롯지를 찾아 쉬는데 먼저 간 지현이와 허샘이 보이지 않아 이사장님과 원장님이 찾으러 나선다. 다른 롯지에 앉아 있었다는데 잠깐 한눈을 팔았나 보다. 시계를 보니 약 2시.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모두 피로한 상태라 우선 방에서 쉬기로 한다.






방은 넓고 가운데 탁자까지 있어 짐 놓기가 수월하다. 전기 장판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해 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무용지물~~~머리가 조금씩 아프다. 한기도 다시 든다. 지루텍과 타이레놀 한 알씩을 먹고 누웠다.

저녁은 밥이 준비되었으나 대부분 밥보다 누룽지를 찾는다. 누룽지도 다 떨어져 밥을 삶아 왔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조금 살 만 하다. 고소가 올 때는 소식을 하고 따뜻한 것을 먹는 게 도움이 되었다.

비가 조금씩 오다 눈으로 변했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 조근조근 말 잘 하는 지현이와 담소를 나누다 어느덧 잠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광활한 자갈길과 듀크라패스의 구름 속 초르텐과 타르초가 떠오른다. 광활한 평원 속에 핀 손톱보다 작은 꽃들도 떠오른다. 너무 많이 힘들지 않아 다행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모든 이들과 나의 용기가 감사하다.

그리고 포터들이 하루를 쉴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우리가 다시 내려올 것이기 때문에 포터들은 여기에서 하루를 대기하면 된단다. 미안한 마음을 다소 내려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