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2일 카그베니(2800m) - 탕베(3060m) - 축상(2980m) - 첼레(3050m)
무스탕의 그랜드캐년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의 일정 '조식 후 체크포스트에서 트레킹 신고하고 닐기리산을 보면서 걷는다. 축상에서 점심 후 첼레도착까지 6~7시간 트레킹'
어제 늦게 잠을 자서 오늘 아침은 조금 늦게 시작한다. 아침 식사 하기 전 시간을 내어 카그베니 구경에 나선다. 우리가 묵은 롯지는 몇 개의 롯지가 모여 있는 곳 중의 한 곳으로 마을 위쪽에 위치해 있다. 문을 열고 나서면 비교적 깔끔한 롯지와 세월의 흔적을 안은 흙으로 지어진 큰 초르텐이 나온다. 초르텐을 지나면 높게 쌓은 좁은 돌담길들이 나오고 이곳을 요리조리 돌아 나가면 제법 큰 공터가 있는 마을 앞으로 가게 된다. '검은 강'을 뜻하는 뿌연 칼리간다끼 강이 굉음을 내며 흘러 가고 그 옆에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앉아 있다. 무슨 의식같은 것을 하는데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 본다. 가는 길목에 관광객에게 판매하기 위한 검은 암모나이트 화석이 가판대에 놓여 있고 그것을 한 남자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조금 더 다가가니 강 위쪽 시멘트에 앉은 사람들과 강물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스님인 듯한 사람이 축복을 비는 듯한 모습으로 불경을 외는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머리쪽에 연신 물을 바르기도 하고 식물같은 것으로 흔들기도 한다. 너무 가까이 가면 방해될까봐 멀찍이서 바라보는데 수염과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 한 명이 무심한 듯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시선을 돌리면 강가 높은 언덕엔 큰 곰빠같은 건물이 있고 그 아래로 초르텐이 있다. 아이들이 초르텐 주위에서 공같은 것을 가지고 놀다가 가고 조금 있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초르텐을 돌며 정성껏 기도를 한다. 자기들만의 의식을 행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 사람들의 아침 시간이다. 롯지로 돌아 오며 높은 돌담안을 들여다 보니 색바랜 옥수수같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뿌연 흙색이 전체인 이 지역에 생명을 담고 있는 건 몇 개의 돌담안을 지키고 있는 이 식물인 것 같다. 집 앞 초르텐에도 할머니 두 분이 정성껏 기도를 하며 초르텐을 돈다. 불교의 나라, 무스탕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롯지로 돌아 왔는데 아직 아침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다시 집안을 돌아 본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니 맨 끝방 옆으로 또 계단이 나 있다. 방 앞을 지나서 계단으로 올라가 본다. 우리 나라 옥상에 해당되는 곳인데 종이 포대위에 무말랭이 같은 것을 늘어 놓았다. 시야가 훤해지고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집들의 옥상엔 거의 나무나 돌이 쌓여 있다. 바람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위한 것일 터이다.
마을 앞에 큰 강이 흘러 가지만 그건 그냥 흘러 보내는 물이다. 마을 뒤쪽에서 나오는 맑은 물이 식수가 되기도 하고 동식물을 키워 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곳에 마을이 형성된다.
다시 식당으로 내려 왔는데 주인 아주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옆집 아주머니 이렇게 세 분이서 아침을 드신다. 쌀겨같은 가루에 우유같은 것을 부어 으깬 것인데 얼핏 보면 미숫가루를 뻑뻑하게 개 놓은 것 같다. 아침은 이것 한 종지와 짜이 한 잔으로 끝이다. 몇 개의 반찬과 국, 찌개까지 오르는 우리네 아침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트레킹을 시작한다. 다시 돌담을 지나 강이 있는 곳까지 내려 온다. 강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깔끔하게 단장된 집들은 롯지이고 칠까지 완벽하 해 놓은 건 곰빠다. 마을 중심에 있는 곰빠를 오늘은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무스탕 지역의 마을엔 우리나라 미루나무처럼 생긴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바람을 막으려고 일부러 심은 건지 아니면 자연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나무들이 회색의 공간을 생명의 공간으로 바꿔놓고 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원숭이 빤쓰가 걸려 있네"라며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가는 길이 괜히 더 즐겁다.
어느 집 마당에선 엄마와 딸이 카펫트를 만드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긴 끈을 마주 보고 한 쪽에서 나무 막대기에 감아 오면 그것을 틀에 걸고 카펫트를 짠다. 우리가 구경하는 것이 쑥스러운지 열대엿 쯤으로 보이는 딸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녀의 순수가 또 예쁘다.
마을을 지나면 뿌연 강옆을 끼고 자갈길이다. 길 가장자리 언덕은 온통 자갈이 섞인 흙인데 단단히 굳은 게 아니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금방 흘러 내릴 것 같다. 강물은 상류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것인데 온통 흙이다 보니 물은 거의 뿌연 흙탕물이다. 그래서 이름도 검은 강이라는 뜻을 가진 '칼리간다키'다. 멀리서 보면 강물인지 강바닥인지 길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그냥 길 아래 넓적한 땅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카그베니같은 마을이 나타나고 또 한참 지나가면 마을이 또 나타난다. 이 회색의 땅에 그렇게 띄엄띄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엔 몇 채의 집이 있고 나머지 땅엔 농사를 짓는데 밭엔 거의 메밀이고 간혹 채소가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메밀이 익어가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길은 넓고 경사가 별로 없다. 나무가 없어 직사광선을 바로 받아야 하고, 바람이 불면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써야 하는데 이 날은 바람이 불지 않아 그나마 걷기는 좋았다. 깡마른 자갈흙으로 둘러싸인 생명의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든 이 길을 걸으면 사철내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우리나라 산이 저절로 대비된다. 왜 금수강산인지 실감이 되고 그런 자연 조건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렇게 척박한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무스탕 사람들에게 아련한 안타까움과 경건한 존경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이런 울퉁불퉁 자갈길에서 자전거로 라이딩하는 외국인을 만난다. 얼핏 60대 정도로 보이는데 그들의 모험심에 존경과 부러움을 보낸다. 길은 정비되지 않았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아 라이딩으로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황량한 길에서 만나는 생명의 공간은 우리의 눈길을 붙잡고 마음을 움직인다. 척박한 이 땅에서도 생명이 자라는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한다. 바람이 많아 바닥에 붙어 자라는 나무는 초록을 띄고 있지만 가까이 가 보면 가시나무다. 소나 양들이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풀을 뜯고 있다. 자세히 보면 땅바닥에 붙어 표시도 잘 나지 않은 작은 풀들이 있는데 그것을 뜯어 먹고 있다.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서 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작은 풀은 속절없이 당하는 셈이지만 그렇게 작게 자라기에 다른 곳에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은 풀들의 섭리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카그베니 지역이 끝나고 이젠 탕베지역으로 접어 든다. 흙으로 쌓은 긴 담 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가축들이 풀을 뜯거나 쉬는 공간이었을 것 같다. 여기부터 탕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지만 빙 돌아서 가니 한참을 걷는다. 꾸불꾸불한 마을 초입에서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난다. 이미 우리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무엇을 얻을지를 알고 있다. 손을 벌리고 캔디를 외친다. 이럴 땐 항상 갈등이다. 주면 이가 썩을 테고 안 주면 실망할 테고,,,어릴 때 받던 그 달콤함의 기억을 잘 아는 나는 갈등하다 결국 그들의 손에 먹거리를 안긴다. 사진을 찍자 하니 노래도 부른다. 제일 큰 아이는 목청이 제법 좋다. 목소리가 좋아 다시 요청을 하고 동영상에 담아 들러 준다. 신기해 하는 그들의 눈빛에 같이 웃는다. 젊은 엄마가 나타나고 엄마 손에 남은 간식을 다 안기고 나눠서 먹으라고 한다.
마을 탕베는 우리가 점심 먹은 롯지가 하나 있고 그 아래로 서너 채의 집이 보인다.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본다. 빨갛게 열린 사과가 주렁주렁한데 자연 그대로 둔 상태라 나무는 크고 사과는 작다. 다와에게 사과를 사 달라고 부탁하니 비닐 한 봉지 가득 사과를 가져 왔는데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를 준 것 같다. 단맛보다 신맛이 강하지만 육질은 아주 단단하다. 점심 먹기 전에 두 개를 먹는다. 맛보다 기분인 것 같다. 무스탕 사과,,,
점심을 먹고 다시 황량한 길을 걷는다. 산의 패임이 훨씬 심하다. 빗물에 씻긴 듯한 패임이 일률적이지 않아 병풍같은 벽을 만들기도 하고 깊고 좁은 골짜기를 만들기도 하고 뾰족한 봉우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장마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금방 허물어 질 것 같지만 여긴 일 년에 150mm도 안 되는 강수량을 가진 곳이니 그나마 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던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안타깝지만 신기한 풍경으로 어떤 곳은 그랜트캐년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길로 자전거가 나타나기도 하고 오토바이가 나타나기도 하고 트랙터가 나타나기도 한다. 오랜 과거와 현재와 조우하는 것 같은 부조화지만 이것이 곧 무스탕의 모습이다.
강 건너편 병풍바위에 인위적인 건지, 자연적인 건지 구멍이 나 있다. 광활한 강이 막고 있어 가 보지는 못하지만 저절로 생긴 구멍은 아닌 것 같다. 나란히 있는 것으로 봐선 사람이 팠을 것 같은데 멀리서밖에 볼 수 없어 애가 탄다. 그 옆에 초록의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이 있을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다. 과거 마을인 것 같다. 바위의 구멍에 호기심을 남기고 조금 더 가면 초르텐이 나타난다. 그것은 곧 마을을 의미하고 이곳이 축상이다. 오래된 곰빠와 사람의 한 뼘도 더 넘을 크기의 나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롯지에 잠깐 들러 아까 샀던 사과와 이 집의 짜이를 먹으며 잠시 티타임을 갖는다. 롯지 앞의 공터엔 서너 마리의 말도 쉬고 있는데 말 목에 매달린 종 소리가 은은하다.
롯지를 나오며 다시 보는 마을 풍경.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돌담이 엉켜 있고 그 위로 난 길을 따라 아주 오래된 곰빠가 있다. 금방 허물어질 듯 담도 아슬아슬하다. 돌아 내려오니 마을 앞은 넓은 강과 만나고 곱게 칠한 초르텐의 밑받침이 그나마 마을 사람들의 존재를 알려 주는 듯 하다.
강을 건너 축상을 완전히 빠져 나오면 다시 황량한 그랜드캐년의 길, 비슷한 듯 하지만 또 다른 모습이다.
얼마 안 가 멀리 산중턱에 마을이 보인다. 오늘 마지막 도착지 첼레다. 멀지만 마을이 빤히 보이기 때문에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강이 만든 땅의 모양대로 구불구불 걸으니 한참을 뱅뱅 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물이 요동치는 굴과 만난다. 물살의 소용돌이가 거대한 땅을 뚫어 구멍을 만들고 그 사이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져 나온다. 길의 끝이라 강의 물줄기가 넓지 않아 쇠로 만든 다리를 걸쳐 놓았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물 줄기는 더욱 세차다. 물줄기의 뒤를 보고 싶어 다리를 건너 물길을 찾아 빙 돌아 가다 그 길이 너무 멀어 포기하고 다시 돌아 나오는데 몇 대의 짚차가 기다리고 있다. 포터들의 짐을 여기서 받아 싣고 간단다. 우리는 첼레에서 자기 때문에 오늘은 짚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갈길을 걸어 언덕위에 있는 마을, 첼레로 오른다. 닦이지 않는 자연적인 자갈길이라 미끄러지기도 하며 오르는데 산 봉우리 가운데쯤 동굴이 있다. 아까 보았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동굴 입구는 흙벽돌같은 것으로 쌓아 놓았는데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동굴이 한 두개가 아니라 열 개도 넘어 보인다. 지금의 마을처럼 동굴에서 생활했음을 짐작한다.
첼레 입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금방 건너온 다리 아래 강물은 옆으로 넓게 퍼져 평평한 땅에서처럼 퍼진다. 그 가운데를 덤프트럭이 먼지를 휘날리며 달린다. 바야흐로 건설의 붐이 바람과 함께 불고 있음을, 이런 풍경도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임을 쉽게 짐작한다.
비교적 잔잔하던 바람이 첼레에 올라오니 불기 시작한다. 덤프트럭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먼지는 날릴 건데 트럭 때문에 엄청난 양의 먼지와 함께 바람이 불어 온다. 바람의 나라, 무스탕임을 온 몸으로 느낀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사흘째 머리 씻지 않으니 드디어 가렵기 시작한다. 찬물에 머리 감고 혹시나 고소 올까봐 얼굴과 발맛 씻는다. 꽁치통조림으로 만든 김치찌개와 오이의 아삭함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황량하지만 한편으로 자연이 만든 그랜드캐년 속으로 걸은 날, 카그베니, 탕베, 축상, 첼레,,,비슷한 마을에서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산 중턱에 동굴을 만들고 살았을 사람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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