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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

네팔 무스탕 트레킹(로만탕 - 삼종곰빠 - 로만탕)

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8일 로만탕(3810m) - 4050m고개 - 삼종 - 로만탕

 

 

생생한 삶의 현장속으로 들어가다

 

 

지도를 펴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저러면 코스가 바뀐다는 의미다. 원래 코스는 야라까지 갔다가 야라에서 누리곰빠까지 왕복해서 16km를 걸어햐 하는 일정이었는데 어떻게 될까?

결론은, 중요한 곰빠가 있는 삼종엔 꼭 가야 한다는 것, 야라를 거쳐 좀솜으로 가는 길은 짚차를 아용하면 된다는 것인데, 원장님께서 삼종곰빠에 꽂히셨다는 것이다. 삼종곰빠까진 말을 이용하기로 한단다.

예약도 안 했는데 아침에 가이더가 연락하더니 말이 준비가 된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 네팔"이라더니, 딱 그렇다.


 

초세르 지역으로 가는 길목까지 걸어 내려간다.

물이 흘러가는 아래쪽이라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나무들이 자라고 풀들도 마음껏 자란다.

그 곳에 우리를 싣고 갈 말 일곱 마리와 현지인 두 분이 와 계신다.

 

 

현지인이 정해주는 대로 말을 골라 타고 초세르 지역으로 들어간다.

사지종곰빠에 가면서 짚차를 타고 갔던 곳인데 말을 타고 가니 주변이 새롭게 보인다.

길 가 언덕엔 쓰러져가는 집의 흔적들이 보인다.

이동중인 많은 양떼도 만난다.

깡마른 건조한 땅에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날린다.

가는 길에 만난 외국인들은 걸어서 주변을 트레킹중이다. 삼종까진 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길가엔 허물어져가는 집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의 로만탕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왕국이 존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남걀곰빠가 아래로 보일 정도의 고개를 넘어서니 이제 로만탕은 보이지 않는다.

 

한 분이 말 타는 게 불편하다며 내려서 걷는다.

나는 다행히 중남미와 몽골에서 몇 번 말을 탔던 터라 요령이 생겨 별로 불편하진 않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우리만 태우고 자기들은 걷는다.

말에게 건네는 소리도 우리와 다르다.

나름의 운율을 가졌는데 그 가락이 재미있다. 고저로 휘파람을 부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우리가 아리랑을 부르니 후렴구는 금방 익혀 따라 부른다.

함께 웃는 시간이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 얼마나 간 건인지를 모르겠다.

풀이 있는 평평한 평원에 왔을 때 말도 쉬고 사람도 쉰다.

마른 땅에 얕게 자라는 풀들은 말의 먹이가 된다.

무스탕에서 이 정도면 거의 초록 평원이다.

탁 트인 평원에 누워 하늘을 본다.

평화, 생각나는 단어가 이것밖에 없다.

정말 평화로운 시간이다.

 

 

오늘 두 번째 고개인데 4050m란다.

고개를 넘어서니 가파른 자갈길이다.

말은 우리를 내려 놓고 먼저 내려간다.

고개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무스탕에서 본 일반적인 풍경과 비슷하다.

미끄러운 자갈길을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 간다.

 

 

내려 가는 길에 원주민 할머니를 만난다.

로만탕으로 간다면 두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할머니의 발걸음이 힘겹다.

원장님은 달러를 내어 용돈으로 주신다.

나는 갖고 있던 작은 빵을 나누어 주었다.

 

 

가는 길 위쪽으로 동굴이다.

동굴로 올라가는 길은 이미 붕괴되어 사라졌다.

사지종보다 규모가 작긴 하나 군데군데 이런 것이 있으니 따로 관리는 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 말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을 타고 삼종으로 향한다.

 

 

고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지나야 다음 풍경이 보인다.

삼종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다시 동굴을 만난다. 이제 동굴은 더 이상 신기한 곳이 아닌 풍경이 되어 버렸다.

 

 

고개를 돌아 서니 계곡물이 나타난다.

흐리면서 검은 색을 띄었다.

칼리칸다키가 '검은 물'이란 뜻이라는데 이런 물이 흘러 들어 검은 강이 되었을 터다.

계곡 주변의 흙이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검은 색을 띈다.

저 흙이 흘러 내려 검은 물이 되었을 것이다.

계곡을 내려 서니 다 쓰러져 가는 초르텐 몇 개가 우리를 맞는다.

이렇게 물 가까이에 흙으로 만든 초르텐이라니,,,

그래도 초르텐이 있다는 건 얼마 안 가 마을이 있다는 증거, 힘을 낸다.

 

 

저 멀리 평지에 마을이 나타난다. 무스탕 최고 오지라는 삼종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황량한 뒷산엔 많은 수의 동굴이 멀리서도 보인다.

마을 앞 평지는 넓어서 농사짓는 땅이 그득하다.

마을 입구에서 말에서 내리게 하더니 말은 따로 마굿간으로 데리고 가서 곡초를 내어다 준다.

우리는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을 뒤에 있는 동굴은 나무막대기로 가려진 곳도 있고 흙벽돌같은 것으로 앞을 막아 놓은 곳도 있고 올라가는 길이 허물어져 아예 왕래가 안 되는 곳도 있다.

어쨌던 동굴 수는 많고 마을과 인접해 있어 다른 곳과 구별이 된다.

마을 앞산은 검은 흙산이다. 저게 흘러 내리면 칼리칸다키, 검은 강이 되는 것이다.

마을 안으로 곡초더미가 걸어 온다. 사람은 보이지 않아 그냥 곡초더미가 걸어 오는 것 같다.

직접 져 보진 않았지만 이마를 깃점으로 온 몸이 지고 있을 저 짐의 무게가 엄청날 듯 하다.

지게에 져 나르던 우리네 나르기와 다른 방법이다. 삶의 무게가 힘겨워 보인다. 

 

 

마을을 둘러보며 동굴 쪽으로 가는 분들과 달리 나는 둥둥둥 들려 오는 악기 소리에 발길이 이끌린다.

혼자 슬며서 소리나는 쪽으로 가 본다.

고개를 살며시 내밀어 들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들어가도 되냐니까 흔쾌히 들어 오란다.

아저씨 두 분이 밀가루 같은 걸 반죽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한 '창'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던 말던 스님들은 열심히 불경을 외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다가 사람들을 부르러 나간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안쪽방으로 안내한다.

아까 막걸리 내던 곳 옆을 지나는데 부엌 같은 게 있고 그 안이 안쪽방이다.

부엌에선 서너 명의 여자들이 차를 내고 과자를 준비한다.

안쪽방의 정면엔 세 명의 어른 스님과 한 명의 청소년 스님이 악기를 연주하며 불경을 외고 있다. 

책을 넘기며 불경을 외는데 손동작을 하면서 하는 게 특이하다.

사이 사이 우리나라 나각같은 소라껍질을 불고 자바라같은 것을 치기도 한다.

 

주인이 차와 과자를 내 온다. 차는 시큼털털한데 무슨 맛인지 애매하다.

과자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말려 튀긴 것 같은데 두부과자 비슷하다.

다와의 통역으로 알게 된 사실은 오늘 이 집 주인의 어머니, 49제 막제란다.

스님들이 앉아 있는 앞쪽에 조그만 제단을 차려 놓았는데 그게 어머니의 제단인 모양이다.

49제란 이야기에 우리 모두 조금씩 갖고 있는 달러를 올려 놓는다.

주인 아들이 다와와 이야기를 하더니 네팔 소주인 '럭시'를 가져다 준다.

집에서 직접 담은 것이란다. 잠깐 스님들의 휴식 시간에 럭시를 나누어 마시는데 약간 정종같은 맛이다.

스님이 들고 불던 소라껍질을 불러 보는데 소리가 안 난다.

이렇게 웃으며 휴식 시간을 보낸 뒤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그 집을 나선다.

모두 주머니에서 과자며 사탕, 초코렛 등 먹을 만한 것들을 다 내어 놓는다.

주인 집에선 럭시를 담아 준다. 남은 게 많이 없다고 하며 도리어 미안해한다.

감사하게 받아든다. 정말 고맙다. 여기는 무스탕, 삼종이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음식을 나눠 줘서 그런지 문 밖엔 젊은 아낙과 아이들이 있다.

우리가 신기한지 아이들은 졸졸 따라 다닌다.

아이들 엄마인 듯한 젊은 엄마의 표정이 따스하다. 수줍은 듯 내내 웃는다.

 

점심 먹으로 가는 길에 들판을 지난다.

들판이라 할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현지인 네 명이 중참같은 것을 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차를 담은 통같은 게 있는데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밭에는 이미 추수가 끝난 것 같은데 풀을 베러 왔을까?

 

 

박물관 관리인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도시락이다. 마부가 메고 온 가방에서 도시락이라고 꺼내는데 김밥과 사과, 그리고 쥬스다. 반가운 마음에 한 줄을 비우고 단단하고 시큼한 사과까지 맛있게 먹는다. 쥬스는 주인 딸에게 넘긴다. 

 

다와는 스물 일곱살 총각이고 마부는 오십은 넘어 보인다. 런데 도시락 가방은 마부가 메고 왔다. 엄연히 약간의 계급같은 게 존재한다. 전체 일정 가이더와 산악 가이더, 주방장과 보조, 그리고 포터,,,그들 나름대로의 위계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 잠깐 휴식한 뒤 이 집 주인이 관리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별다른 게 아니고 흙으로 지은 창고같은 건물에 나무로 받침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 받침에 뭔가를 넣은 비닐 봉지를 진열해 놓았는데 그 안에 동굴에서 나온 인골을 보관해 놓았다. 

나무 받침 전체에 빼곡하게 봉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100여구는 넘어 보인다.

2012년에 발굴했다는 것인데 어느 때의 사람일지는 잘 모르겠다.

2살 여자 아이의 인골도 보인다.

이들의 죽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렇게 동굴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자연에 순응하고 순응하며 치열하게 살아냈을 이들에게 잠깐 고개를 숙인다. 

 

 

49제하던 집 앞에서 보던 아이들이 따라 왔다. 우리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어떻게 쓰여질 건지 모르겠지만 전부 1달러씩 용돈을 지어 준다.

 

박물관 주인의 아낙은 더 많은 관람료를 요구한다. 방문객들에게 종종 해 오던 것인가 보다.

다와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기들끼리의 규칙이 있는 모양인데, 돈의 위용은 무스탕의 오지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 무스탕과 돈,,,어울리지 않은 모습인데 여기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박물관을 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나눠 준 돈을 회수하는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달러는 무용지물일터,,,

아저씨는 허리에 끈 같은 것을 둘렀는데 허리가 아파서 그렇단다.

약을 필요로 했지만 허리 아픈 약은 따로 가져 가지 않았고 로만탕까지 약을 가지러 오긴 너무 멀고,,,

아저씨의 아픔이 안타깝다.

아저씨는 칠십대 같았는데 놀랍게도 오십육세란다.

헉,,,,내 동생이다.

 

 

이젠 흔적조차 희미한 동굴들을 뒤로 하고 다시 말을 타고 나온다.

삼종의 앞산은 여전히 짙은 회색빛이다.

자세히 보니 앞산 언덕에도 초르텐이 보인다.

옛날 마을이 있었단 증거다.

지금은 올라가는 길도 이미 사라진 터다.

초르텐도 저 위태위태한 언덕도 어느 날인가 바람처럼 먼지처럼 사라지겠지.

무스탕의 바람에 실려, 물에 실려 흔적없이 사라질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오지중의 오지라고 한 삼종은 로만탕외의 지역과 사는 모습이 거의 비슷했다.

아니, 박물관이 있어서 관광객이 가끔이라도 찾으니 더 문명화되었다 해야 하나?

무스탕에선 이미 일반적인 것처럼 되어 버린 동굴과 별다른 감흥도 없던 해골,,,

두 살의 인골이 주는 애잔함이 아니었다면 무덤덤했을 삼종에서 그나마 막제의 현장을 볼 수 있어 다행이면서 의미깊은 날이었다.

 

세 시간 반을 타고 가서 다시 세 시간 반을 타고 온 삼종 말 트레킹~~

다리가 뻐근하고 무릎도 아프고 허벅지 안쪽이 뭉친다. 

바람이 불고 다소 추웠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늘은 푹 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