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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

네팔 무스탕 트레킹(로만탕-디-슈르캉-야라-누리곰빠-야라)

네팔 무스탕 15박 16일(2018년 9월 19일 ~ 10월 4일)

9월 29일 로만탕(3810m) - 디-슈르캉(3000m)-야라(3150m) - 누리곰빠 - 야라(3150m)

 

칼라칸다키의 검은 강에 몸을 담그다


야라까지 짚차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야라로 들어가는 다리가 비로 붕괴되어서 다리가 있던 곳까지 밖에 못 간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짚차 위에 우리 짐을 싣고 배낭은 제일 뒷자리와 원장님이 앉은 앞자리 아래에 넣었다.

이제 네 사람 앉는 건 익숙해진터라 편안하다.



디까지는 편하게 왔다.

무스탕을 나갈 때 확인을 받는건지 디에서 잠깐 수속을 밟는 동안 주변을 돌아 본다.

여기는 무스탕답지 않게 물이 지천이다.

물이 도로까지 흘러 나오는데 그것도 맑은 물이다.

거기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변이라 그야말로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다.




디를 지나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길이 끊겼다. 우리를 내려 주고 짚차는 떠났다.

다리가 붕괴되었다는데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냥 길이 움푹 패어 있는데 길이 사라진 터라 다리가 있었더라도 짚차가 갈 수는 없겠다.

평평한 평지라 걷기는 나쁘지 않다.

강 줄기가 여럿으로 나눠져 있는데 큰 줄기는 한 곳만 흐르고 우리는 작을 강 줄기를 피해 별 무리없이 걸어왔다.

도로는 강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는데 연결되었다 끊어졌다가 반복되고 있다.

저 길을 다시 만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야 할까?



이젠 큰 강을 넘어야 할 때가 왔다.

다와가 강의 아래 위쪽을 다니면서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지만 혼자 건너다 번번히 실패를 했다.

다행히 슈르캉으로 가는 젊은 아낙이 걸어서 왔는데 강을 건너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 거리낌없이 치마를 둥둥 걷고 물에 들어선다.

원장님, 종사님이 그 옆에 서고 양쪽끝에 다와와 산악가이더가 섰다.

걸어가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보기엔 물살이 그리 센 것 같지 않은데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린다. 

강을 건너 갔던 다와와 산악가이더가 다시 돌아와 남은 우리 네 명과 함께 강을 건넌다.

바닥엔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고 물살이 너무 세 몸은 계속 흔들린다.

옆에서 단단히 잡아 주는 힘 때문에 겨우 비틀거리며 건너간다.

건너서 보니 바지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고 접은 바지단에는 모래 범벅이다.

물 자체가 검은 모래물인 셈이다.

젊은 아낙은 우리를 보더니 맑고 청량한 소리로 뭐라뭐라 얘기를 하는데 명랑 쾌활 그 자체다.

우리가 없었더라면 저 강을 혼자 건넜을 터,,,,정말 대단하다.






강 옆의 길을 따라 가다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니 젊은 아낙이 사는 동네 슈르캉이 그림처럼 나타난다.

앞에는 칼리칸다키를 내려다 보고 오똑하니 올라선 예쁜 동네다.

마을 위와 앞쪽 높은 곳에 스투파와 곰빠 같은 곳도 보인다.

큰 마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우리는 그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기에 눈으로만 바라 보고 젊은 아낙과 작별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계곡길

계곡길 양쪽으로 스러져 가는 초르텐이 나타나는데 이미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라 비가 조금 더 오고 길이 잘려 나가면 바로 사라질 것 같다.

아마 많은 초르텐이 물 속으로 사라졌을 터,,,,

오랜 세월을 지켜 낸 유물일텐데 그냥 자연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다 거대한 병풍같은 흙벽을 만난다.



병풍같은 거대한 흙벽의 아랫쪽에 몇 개의 동굴이 보이는데 이미 길은 유실되어 사라졌고 흙벽에서 흘러 내린 모래만 그 앞을 메꾸고 있다.

흙벽이 있는 건 거대한 산의 한 벽면이다.

이곳을 돌아가니 다시 그 면에 이은 흙벽,,,그 곳엔 더 많은 동굴이 산재해 있다.

흙벽의 앞기둥, 뒷기둥 셀 수가 없다.

아마 여기서 아주 큰 마을이 형성된 듯 싶다.

그 어마어마한 흙산, 흙벽을 마주한 곳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야라가 있다.






야라는 야트막한 뒷산 아래 제법 평평한 분지가 많은 기름진 땅이다.

집들도 정갈하고 밭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무가 많아 풍성하고 여유있어 보인다.

기분좋은 야라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롯지는 이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터라 현지식이라도 먹기엔 별로 불편하진 않다.

만두, 볶음밥, 감자볶음, 면볶음에 짜이, 쥬스, 콜라,,,

가장 평범한 음식들이다.

만두는 양고기가 들어갔는데 내 입엔 비린 냄새가 살짝 나서 역한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잘 드신다. 다행이다.

쌀은 알량미처럼 펄펄 날고 면은 튀겨서 볶은 것 같은데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그냥 감자볶음이 제일 먹기 무난했다.





삼십여 분 휴식 뒤 누리곰빠로 출발

이 곳에선 열쇠를 보관하는 집의 딸, 오이니가 안내를 한다.

열예닐곱살로 보이는데 슬리퍼를 신고 돌길, 자갈길을 잘도 걷는다. 등산화 신은 내 발이 무색하다.


오이니는 네팔 소녀같지 않게 굉장히 밝고 쾌활하다.

네팔 말을 하는 이사장님과 대화를 주고 받는데

"네팔 어때요?"

"좋아요."

"좋으면 여기 살러 오세요."

"다니러는 오겠는데 살러 오고 싶진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거침없다. 오이니가 먼저 묻고 깔깔 웃고,,,이러다가 혼자 잽싸게 앞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언덕을 걷다 다시 계곡으로 걷는다.

얼마 안 가면 누리곰빠란다. 양쪽 흙벽엔 간간히 동굴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 계곡을 생명삼아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살았음이 짐작된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물이 완전 맑은 물이다. 우리나라 계곡 물 같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물은 바로 마셔도 될 것 같다. 그래 이런 곳에서 살아야지,,,,

이런 생각에 젖다 돌에 미끄러져 물에 넘어졌다. 빛의 속도로 일어 났지만 완전히 오른쪽으로 쓰러져 짧게나마 카메라가 물 속에 폭 잠겼다.





내가 넘어진 건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카메라를 어찌할 지 몰라 안절부절,,,

다른 일행들은 누리곰빠 가기 전에 있는 동굴로 다시 올라 가신다.

겨우 한 사람 지나갈 길인데 아래서 올려다 보니 길도 사람도 불안해 보인다.

나는 카메라를 말려 보려 따뜻한 바위에 올리고 햇빛 쪽을 향하게 한다. 밧데리를 빼고 열 수 있는 구멍은 다 열어 본다. 그러다 사진을 찍어 보니 화면 색이 이상하다. 사진은 포기한다.

양말을 벗어 말리는데 산악가이더도 넘어졌다며 옷을 말린다. 옥남 언니도 동굴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하여 세 명은 계곡에 있는 바윗돌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산악가이더는 아주 짧은 한국말을 하는데 끝말은 모두 잘라 먹는다.

"예쁜 누나, 넘어졌어?"

"나도 넘어졌어."

"누나, 이 노래 알아?"

장윤정의 '초혼'이다. 따라 부르는데 노래를 무척 잘 한다.

무슨 뜻인지 아냐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노래란다.

초혼외에도 트롯풍의 여러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초혼이 제일 좋단다.

노래를 부르면 박수를 쳐 주고 흥을 돋우니 더 즐거운 시간이 된다.

한~~~참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올라가신 분들이 내려 왔는데 벽화가 있더란다.

기가 너무 좋더란다.





드디어 도착한 누리곰빠

여긴 보존할 가치가 있었는지 올라가는 길을 시멘트 계단으로 만들고 철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동굴을 파고 그 앞에 흙벽돌을 쌓아 집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구석구석 삭고 흙벽돌도 흘러 내렸다. 얼마나 유지될까? 보는 순간 걱정이고 안타까움이다.

동굴이니 1층에는 시사종처럼 작은 방들이 연결되어 있다.

본당에는 빠드마삼바바와 다른 불상 하나가 놓여져 있다.

자연 햇빛이 내리쬐는 2층으로 올라가 본다. 2층이라야 긴 나무에 홈을 파서 그걸 계단처럼 만들어 밟고 올라가면 된다. 조그만 문을 나오니 한 사람 앉을 공간이 나온다. 거기서 앞쪽의 모든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시원한 풍경이다.

본당에서 제를 올릴 모양이다. 향을 피우고 명상을 시작한다.

4시가 넘어 가니 바람이 불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옥남 언니랑 먼저 내려온다.

누리곰빠앞 평지에는 3개의 스투파와 담벼락만 남은 사각의 집이 있었는데 바람이 불지 않는 쪽 스투파에 붙어 서서 위에 계신 분들이 내려 오길 기다린다.






내가 찍은 사진은 흐릿한 누리곰빠가 마지막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날은 서서히 저문다. 저 멀리 산꼭대기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후레쉬도 안 가지고 왔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래에서 빨리 내려 오라고 고함을 지르지만 끄떡을 하지 않는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어두워져서야 내려 왔는데 다행히 이사장님과 산악가이더가 후레쉬를 가지고 있다.

길도 계곡길이 아니라 능선길이다.

깜깜함에 익숙해지니 길이 희뿌옇게 보인다.

오이니는 어두운데도 잘도 길을 찾아 간다.

얼마쯤 걸었을까? 하늘에 별이 영롱하다.

트레킹 후면 피곤해서 항상 곯아 떨어지는 바람에 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원망이 감사함으로 변했다.

더듬더듬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는데 불빛이 보이고 요리팀에서 후레쉬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드뎌 야라 도착, 원장님이 오이니에게 약간의 팁을 주고 오이니는 예의 그 명랑한 톤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제법 높은 2층 집으로 들어간다.


우리 숙소에서 그래도 새로 단장한 깔끔한 방을 배정받았다. 방에 화장실이 있는 특전도 누렸다.

다른 사람들은 공용화장실을 사용했다.

따로 앉을 공간이 없어 식사 후 각자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을 뉘었다.

동굴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이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음을 감사한다.